그리스도와의 연합(2)

 

 

신자와 그리스도 사이의 신비로운 연합의 끈은 성령이시다. 기독교 강요에서 칼빈은 "따라서 이 연결의 끈은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그와 더불어 우리는 통일성을 지니게 되며 그는 마치 그리스도 자신의 모든 것과 그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주어지는 통로와 같다."

칼빈의 사고에 있어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약속은 성례가 주로 나타내고 상징하도록 요구되는 복음의 한 측면에 해당된다. 월레스(Wallace)는 칼빈이 주장하는 이 연합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첫째,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삶과 특히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의 인성을 사용하여, 즉 그의 인간적 몸을 사용하여 인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행하셨다는 것을 신실하게 가르친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그의 인간적 몸과 인성을 사용하고 이를 통하여 우리 구원을 완성하셨으므로, 우리 스스로가 그의 인성과, 특히 우리 구원을 위한 모든 사역이 행해진 그의 육체와의 어떤 교제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의 사역의 혜택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다시 사신데서 비롯되는 축복에 참여하는 것은 그의 인격과의 교제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칼빈은 이 연합이 단지 그리스도의 '육체'와의 연합을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이 연합을 통해서 칼빈이 '놀라운 교환'이라고 부르는 일이 발생한다. 이 교환은 하나님의 무한한 선하심에 의해 가능하게 되었으며 이에 의해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속한 것을 취하시고 자신의 소유를 우리에게 전달해 주신다."

두 성례가 각각 신자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관련된 것이라고 칼빈은 이해한다. 세례는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연합의 시작과 관련된다. 성찬은 이 연합에 있어서 지속과 관련된다. 게리쉬(B. A. Gerrish)는 칼빈의 사고에 있어서 성찬과 신비로운 연합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적절한 설명을 제공한다:

 

칼빈에 의해서 교회의 삶에 있어서 성찬의 역할은 다음의 사실로 설명된다. 즉 우리의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처음부터 온전하고 완전한 것이 아니라 성장, 우여곡절, 방해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상징주의의 성격 자체는 칼빈에게 성찬이 양식 공급, 지속, 그리고 말씀과 세례를 통해 시작된 그리스도와의 교제의 증대의 문제라고 제시한다.

 

 

우리가 처음에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으며 이 연합 안에서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자라게 된다.

칼빈에게 그리스도는 신자의 삶의 근원이자 영적 양식이다. 요한복음 6:51 주석에서 칼빈은 어떻게 그리스도가 신자에게 신적 생명의 중재자로 행동하시는가를 설명한다:

 

 

비록 영혼을 소생시키는 이 능력이 육체와는 다른 근원에서 비롯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것이 왜 이 지칭이 그리스도의 육체에 정확하게 적용되지 못하는가에 대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은 생명의 근원(1:4)이기 때문이다. 통로로서 그의 육체는 그 안에 원래 내재하는, 즉 그의 신성 안에 내재하는 생명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육체는 생명을 주는 육체인데 이는 다른 곳에서 우리를 위해 빌려 온 생명을 우리에게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칼빈은 이 개념을 기독교 강요에서 더 자세히 설명한다:

 

 

그러나 생명의 근원되시는 분께서 우리 육체 속에 거하시기 시작하면, 그는 더 이상 우리에게서 멀리 숨어 계시지 않고, 우리가 그에게 참여하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신다. 그러나 그 분은 또한 그가 거하시는 우리 육체 자체를 살리기도 하신다. , 그에게 참여함으로써 그를 먹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다.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6:48, 51). 이 말씀을 통해서 그는 자신이 하늘에서 우리에게 내려온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시므로 곧 생명이라는 사실을 가르치시며, 동시에 그가 내려오실 때에 취하신 그 육체에 그가 생명의 능력을 부으셔서 그로 말미암아 생명에 참여하는 역사가 우리에게 흘러넘치도록 하셨다는 사실을 가르치신다.

이 사실에 또한 다음과 같은 것들이 뒤따른다. 즉 그의 살이 참된 양식이요 그의 피가 참된 음료이며(6:55), 또한 이 양식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이 영양분을 공급받아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육체 그 자체에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그 엄청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육체도 애초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고, 비록 지금은 영생을 부여받은 상태에 있으나 그 자체로서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인성에도 충만한 생명이 거하며,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의 살과 피에 참여하는 자는 동시에 생명 속에 참여함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육체는 마치 우리에게 생명을 부어주는 풍성하고 다함이 없는 샘과도 같아서 하나님으로부터 그 속으로 흘러들어가는 생명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대한 교제가 하늘의 생명을 사모하는 모든 자들에게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신적 생명을 중재하시기 위해서 스스로 인간의 육체를 취하셔야 했기 때문에 칼빈에게 성육신은 결정적인 것이었다. 칼빈에게 그리스도의 육체는 "통로" 또는 "전선관(conduit)" 같은 역할을 지니는데 이를 통해서 신적 생명이 그 분과 연합한 자들에게 부어지게 된다. 그는 참된 포도나무이며 우리는 그 가지이다.

 

번역: 이신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