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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확장』 서평

 

조규통

 

1. 개념정리

 

본서를 읽는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복음주의라는 용어의 의미와 시간적 한계에 대하여 먼저 개념부터 파악하라는 것이다. 이는, 세칭 복음주의의 확장으로 말이암아 교회의 분열이 일어나기도 했고, 또한 복음주의라는 기치 아래 교파들이 일치하기도 했던 양면성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몇몇 도서를 바탕으로 복음주의의 개념, 교회사적 발현, 그리고 복음주의를 탄생시킨 배경 등을 필자의 견지에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⑴ 복음주의의 개념

순수한 출발은 예수 그리스도와 신약의 저자들에게 있었던 것이며,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해 회복된 것으로써 이신득의와 오직성경, 그리고 삶의 근본적인 변화와 사명에 대한 성경의 메시지들을 총괄하는 개념이다. 이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신학, 교단, 인종과 문화차이를 관통하여 하나의 통일성을 유지한다고 볼 수 있겠다. 즉, 복음주의의 확신은 기독교의 근본 교리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그것을 가장 중요시하는 기독인들은 각자의 교단과는 별개로 복음주의자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⑵ 교회사적 발현

필자의 견지에서는 예수 따름에서 예수님의 공생애를 통해 이미 시작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러나 교회사에 있어서 복음주의라고 통칭되는 이 거룩한 일련의 역동성들을, 18세기 영국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수용한다.

⑶ 복음주의의 기저(基底)

복음주의가 발아를 하여 싹을 틔우고 자라 열매를 맺기까지 가장 중요한 자양분들이 종교개혁가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청교도 사상, 독일의 경건주의를 언급하는 데는 대부분의 사가들이 일치한다.

⑷ 복음주의의 양상

먼저 영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성경적 갱신과 회심, 그리고 회집에 있어서의 다양성들이 미국에서는 18세기 초중반을 통해 각성운동이라 명명되는 사건으로 옮겨간 것은 분명하다. 그것이 소위 ‘부흥운동’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2. 『복음주의 확장』

 

⑴ 시대 및 인물

본서가 다루는 시기는 1790년대부터 1840(혹은 1850년)에 이르는 기간인데 이 시대의 상황은 ①사회적으로는 대규모의 인구증가, 이민, 산업화 ②정치적으로는 노예무역 및 노예제도와 관련된 정치, 종교계의 치열한 공방이 있었으며 국가와 교회간 관계를 규정하는 대규모 논쟁과 분열이 야기되었던 시기였다. ③종교적으로는 국교제도의 쇠퇴와 종말, 비국교도 신자의 급증, 무엇보다 부흥운동의 확산으로 말미암은 예배와 신앙형식의 극심한 변화, 교단과 교회의 분열, 새로운 대중교단의 등장과 급성장 및 그 여파, 여성의 교회 내 역할에 있어서의 변화, 교회 내 수많은 자발적 단체들의 신생과 그들로 인한 교회의 출판문화와 선교적 열망과 실천 등에 변화가 나타났던 시기였다.

중요한 것은 저자 존 울프(John Wolffe)는 1846년 “복음주의 연맹”의 설립을 1790-1840년대 있어서 복음주의 확장 시기의 정점이자 분기점으로 규정하면서 이 시기 복음주의가 지리적, 사회적, 시대적, 문화적으로 지극히 다양하면서 그 다양성을 아우르는 일관된 정신과 태도의 통일성을 내재한 운동이었음을 견지한다(『복음주의 확장』, 9-10, 이하 본서)  

그 중 주요 인물인 윌리엄 월버포스(William Wilberforce, 1759-1833)와 한나 모어(Hannah More, 1745-1833), 토마스 찰머스(Thomas Chalmers, 1780–1847), 찰스 그랜디슨 피니(Charles Grandison Finny, 1792–1875)를 중심으로 다룬다.(본서, 9) 이 네 명의 인물들이 본서에서 대표적으로 다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복음주의의 영향력이 교회 내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변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했음을 명백히 드러낼만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즉, 복음주의의 사회참여, 여성활동, 교회와 사회관계, 신앙부흥운동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지리적으로도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미국을 대표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⑵ 전개

저자는 먼저 1장에서 복음주의의 범위와 정의를 논한 후 복음주의의 확장 시기와 맞물린 시기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배경을 지리적으로 혹은 큰 1차 사료와 지도를 통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사회적으로는 급속한 인구증가와 대도시의 급증, 경제적 번영과 교통망의 발전을 들었으며 이는 문화적 경제적 부산물들 곧 정보, 책, 사상적 흐름이 복음주의 시대 부흥의 도구가 되었음을 시사한다.(본서, 39) 정치적으로는 세 가지 사건, 곧 ①1789년 4월 30일, 미합중국의 첫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대통령 취임 선서 ②5월 4일, 베르사이유에 모인 프랑스 의회 ③5월 12일, 웨스트민스터 하원에서 있었던 윌리엄 윌버포스의 노예무역 폐지 제안 연설이다.

2장에서는 부흥과 부흥주의를 다룬다. 저자가 부흥과 부흥주의라는 용어를 각각 사용한 이유는 미묘한 차이를 부각시키기 위함인 듯하다. ‘부흥’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타나고 일어난 것을 뜻하는데 “사람들이 복음 설교에 특별하게 반응하여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하는 특별한 노력을 보이는 강력한 시기”, 이를 다시 19세기 신학적 표현으로 하면 “같은 시기에 같은 종교 지도자 하에서 많은 사람 위에 임하심으로 죄에 대한 깊은 인식과 회심이 동반되는 성령의 부어주심”으로 정의한다.(본서, 60-61) ‘부흥주의’는 성령의 역사와 다수의 강력한 회심을 위해 기도하며 기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하간 교회 대중에게 나타났던 현상들이 어떠하든 윌리엄 블랙(William Black, 1760–1834)이 보게 된 뉴펀들랜드(Newfoundland)에서의 부흥으로 말미암은 지속적인 부흥의 시기(1790-1840년대)를 세 시기로 나누어서 기술한다. 첫째 시기는 1790년대이며 둘째 시기는 1800-1820년까지, 그리고 셋째 시기는 3장에서 다루는데, 1820년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새로운 방법의 부흥에 대해서다. 기억할 만한 것 두 가지는 첫 부흥시기의 첫째와 둘째 시기를 거치면서 캠프집회가 대형부흥의 중요 요소로 자리 잡았다는 것과 그 결과로 노예 및 흑인 여성까지도 소수집단에서 이제 교회 내 종교적 영향력을 끼치는 세력으로 변모되어갔다는 것이다. 영적 부흥을 재점화시켰던 캠프집회에 대해 저자는 그 연원부터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결코 의도하지 않았지만 17세기 스코틀랜드에서 발전해서 미국 장로교로 유입된 ‘성찬의 계절(Communion season)’이라는 전통을 진행하는 중 맥그래디(James McGready, c. 1758-1817) 목사의 회중에게 1798, 1799년에 각각 회심의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1800년 6월 레드강 가에 위치한 교회에서 시작된 수백여 명의 독특한 체험 이후 7월에는 개스퍼 강에서도 성찬식이 열릴 때 부흥을 체험하기 위한 이들이 야영지를 만들면서 캠프집회는 시작되었다.

3장에서는 1820-1850년 시기에 부각된 ‘새로운 방법의 부흥’을 논한다. 물론 찰스 피니가 그 선두주자가 된다. 특징은 대중적, 자발적인 이 부흥이 세밀하게 조직화되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운동으로 변모해갔다는 것이며 부흥회 기간 내에 피니에 의한 ‘열망의 좌석’과 캠프집회의 ‘애통자의 자리’가 있어서 부흥운동에 사용된 기록이 있다. 계속된 캠프집회, 그리고 부흥을 위한 기도회도 있었지만 다소 익숙하지 않았던 방법들 곧 화려하고 담대하고 눈에 띠며 감정을 발산하는 형식이 피니 집회의 특징이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국교회와, 아일랜드 천주교인들의 회심, 개신교로는 1826-1827년 캐번 주(County Cavan)의 하넘 경(Lord Harnham)의 영지를 중심으로 대규모는 아니었으나 부흥들이 일어났다. 다만, 이 시기 영국 지역에서의 부흥운동은 미국과는 다소 차이를 나타내었는데 천년왕국와 관계하여 미국 부흥사들은 일어나고 있는 부흥에 대해, 그리고 자신들의 역할을 후천년주의적 입장에서 주의 재림을 위해 노력으로 하는 것으로 이해했다는 것이고, 영국에서는 이같은 부흥의 발현들이 전천년주의적 재림의 징조로 여겼다는 것이다.(본서, 106) 또한 이 시기부터는 부흥과 교회의 활동에 있어서 소책자 출간이 활발해지고 여러 종류의 자발적인 협회들이 설립되므로 현대 교인들의 인식 속에 있는 ‘문화적 도구를 통한 전도와 사명 감당’이라는 틀이 준비되었던 시기였다. 저자는 ‘부흥과 상황’이라는 소주제를 가지고 ①부흥은 영적 진공상태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사전에 진행되고 있었던 몇 가지 예비요인이 있었다. ②외부세계의 상황과 사건이 중요한 촉매가 되기도 했다. ③부흥은 원래 시간에 제한 받는 주기적인 현상이었다는 것을 상황적 특징으로 피력했다.(본서, 115-116) 저자는 “많은 복음주의 교회의 성장은 부흥과 연결된 집단회심을 통해서가 아니라 느리고 지속적인 개인 전도를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말하므로 교회가 교회됨의 자리를 굳게하는 것은 결코 일시적인 분위기에서 조성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즉, 회심 자체가(사실 그것이 진심인지 아닌지, 혹은 성령에 의한 것인지 감정에 의한 것인지조차 구분하기 힘든) 교회 내에 헌신자로 남아있는 보장은 아님을 견지하는 입장이 중요할 것이다.

4장은 ‘영성과 예배’에 대하여 복음주의의 확장에 큰 역할이 되었던 일련의 부흥이 단순한 센세이션만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실제 성도들의 삶과 생활에 그리고 예배에 있어서 얼마나 깊은 곳까지 영향으로 남았는지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교회 내 문화의 틀을 새롭게 형성하게 되었다. 특히 복음주의 영성을 심도 있게 논의하기 위해, ‘세 가지 사례 연구’라는 제목을 할애하여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세 인물, 곧 ①뉴잉글랜드 회중교회 목사 라이먼 비처(Lyman Beecher, 1775-1863)의 첫 번째 아내 록산나(Loxana, d. 1816)와 그 딸 헤리엇(Harret, 1811-1896) ②선구적인 흑인 감리교 전도자 질파 엘로(Zilpha Elaw, c. 1790 - c. 1850) ③잉글랜드의 자선가이자 사회 개혁가였던 앤소니 에쉴리-쿠퍼(Anthony Ashley-Cooper, 1801-1885)의 신앙과 삶을 각각 세밀하게 다룬다.(본서, 134-145) 예배에 대한 인식도 다소 차이가 있어서 미국과 스코틀랜드 장로교 내에서는 갈등이 발생하므로 1837년에는 특히 미국 장로교가 구학파와 신학파로 분열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구학파가 제한과 분별이라는 전통적 예배의식과 분위기를 고수하려했다면 신학파는 열정적인 설교와 회중찬송을 통한 전도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에 치중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시기에 예배, 특히 찬송집의 출판에 대해서도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5장은 복음주의의 실천적 현장 중 여성, 남성, 그리고 가정이 복음주의와 가지는 상관성을 역사적 자료들을 통해 세밀하고 방대하게 기술했다. 사역 및 설교자로서의 여성, 여성 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교회 구성원에 있어서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늘어갔다는 통계를 봐도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여성들 중 하나님의 부름과 사용에 대하여 남녀의 차이가 없음을 인식한 이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여성들은 설교자로, 작가로 복음주의의 영향력을 확대했으며 또한 여성으로서 가정과 가족 내에서의 훌륭한 역할을 감당했던 인물들이 있었다. 저자는, 복음주의의 확장 시기에 있어서 결혼과 가족이라는 사회적 구조를, 복음주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조망한다. ①복음주의의 확장과 성공에 여성의 지원이 활력이 되었다. ②‘남성과 여성으로 분리된 영역’을 복음주의는 교정하는 기능을 했다. ③복음주의자의 시각에 따르면 가정 및 가족에 대한 책임은 여성 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크게 지워져 있었다. ④복음주의적 남성 이해는 신사다움, 남성다움, 명예, 소명, 덕 등의 전통적이고 가부장적 지배권을 표현하는 가정에서 서로 사랑하는 영적 공동체로서의 가족을 강조하는 새로운 경향의 도전을 받았다.

6-7장을 통해 선교를 목적으로 이루어진 활동 및 복음주의자들이 전도의 수단으로 지원한 주일학교에 대하여, 그 결과로 나타나게 된 도덕 및 사회적 개혁에 대하여 기술한다. 무엇보다 복음주의는 분명한 사회적 변화와 회개, 그리고 사회 각층의 다양한 대상들을 위한 조직을 설립하므로 보다 복음증거와 부흥에 용이한 사업을 추진했으며 결과 다양한 기관들이 설립 운영되었음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이같은 복음주의의 활동은 복음과 교회가 가지는 그 활동이 교회 내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복음전도의 대상이 되는 다양한 사회, 문화, 인종과 민족, 신분, 그리고 거기에 적합하고 용의주도한 사역을 위한 전문적 기관들을 설립 운영하므로 복음주의의 영향이 회심과 교회부흥에만 그친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아울러, 실제적으로 도덕적 개혁과 사회적 선한 변화들을 주도, 내지 영향력을 행사하여 사회와 정치, 그리고 나아가서는 국가와 세계 봉사에 대한 의지가 복음주의 내에 분명히 있을 뿐 아니라 그 열매 역시 - 두드러지거나 크지 않다 하더라도 - 나타났음을 영국과 북미를 중심으로 다룬다. 그리고 이 기관들에 의해 복음주의의 사역의 대상이 노예, 빈민, 공장근로자, 인디언과 원주민, 오지(奧地), 재소자들에게 이르기까지 전도와 선교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복음주의의 사회 및 정치에 곧 국가에 대한 역할에 있어 가장 괄목할만한 것은 대서양 노예무역의 폐지와(1807년) 노예해방령(1833년),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해 계속되었던 노예해방 캠페인(1823-1840년)에 있다. 미국에 있어서 노예에 대한 신학적, 교회적 입장은 남부와 북부가 큰 격차가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나 그 해소를 위해 겪은 교회의 분열과 논쟁, 그리고 복음주의자들의 정치적 노력들은 세속사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비록 미국에서 반노예제 세력의 연대에 있어 복음주의가 어느 정도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헌은 부분적이었음을 인정해야할 것이다. 국가와 교회간의 관계 설정을 놓고 사실 중세는 천년 이상을 그렇게 고민하거나 국교회 자체를 거슬리거나 전복시키려했던 시도는 없었다. 그러나 1790년 이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국교회를 개혁하고 특권을 제한하려는 압박들은 비국교들에 의해 집요하게 주장되었다. 이같은 교회와 국가에 대한 관계를 두고 첨예한 대립과 논쟁은 결과적으로 19세기 초반 근본적인 국가의 정치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를 했다. 복음주의는 세속 정치 내에서 도덕적, 영적 영역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내려 했으며 자신들의 한계를 넘어서야 했을 때는 정치 당파들에 에너지를 불어넣었고 대중의 광범위한 정치 참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3. 후기

 

존 울프의 저서,『복음주의 확장』의 원서는 2007년에 출간되었고, 마크 놀의 『복음주의 발흥』은 2004년에 출간되었다. 반대로 한국어 번역에 있어서는 존 울프의 글이 마크 놀의 것보다 2년 앞선다. 즉, 국내 독자들은 복음주의 시리즈의 기획된 의도와 용어의 정의, 의미, 그리고 복음주의가 제한하는 역사적, 지리적 한계 등에 대해 선지식이 없이 본서를 대할 가능성이 많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이것은 필자가 전술한 것처럼, 복음주의에 대하여 선이해가 없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난해한 책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교회사를 전공했다 하더라도 종교개혁 이후를 전공하지 않았거나 혹은 근현대사를 통틀어 지난 3세기 동안 유럽과 미국, 그리고 식민지 개척에 대하여 깊이 있게 연구하지 않은 학도들에게 상당히 이해하기 까다로운 면이 없지 않았다. 가장 큰 걸림은 바로 영국과 미국 식민주들과의 관계 이해, 그리고 미국의 역사, 지리적 지식의 부족, 교회사적 일들이 일어났지만 동시간대에 일어난 세계사적 사건들과의 연관성 부족, 무엇보다 다양한 인물들의 나열은 사실 독자들로 하여금 처음 글을 대하기에는 족히 당황하게 한다.

한 가지 더 언급할 수 있는 것은 본서의 전개와는 무관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역자의 작은 실수로 보인다. 역자서문에 의하면, 네 명의 주요인물을 본서를 전재할 것으로 기대하게 하는데, 실제 원저자는 한나 모어(Hannah More)와 토마스 찰머스(Thomas Chalmers)에 대한 부분은 윌리엄 월버포스(William Wilberforce)나 찰스 그랜디슨 피니(Charles Grandison Finny)에 비해 깊이 다루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 네 편의 논문과 두 편의 학술지, 그리고 세권 정도의 단편을 읽어야 했다. 그리고 필자 나름대로 복음주의의 개념에 대하여 정리한 후 다시 이 글을 읽으면서 새롭게 보게 되는 역사가의 진중하고 깊이 있는 진술들을 대한다.

먼저, 복음주의라는 것이 단순한 부흥운동과 연관된 것으로 인식되어 온 협소한 연관성을 극복하는 것에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 보통은 1, 2차 대각성 운동이라는 것이 있었고 그것은 복음주의였다는 식으로 치부했던 복음주의에 대한 인식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수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결코 동떨어질 수 없었던 관계들을 통해 지역별, 나라별, 교단별, 사회계층별로 확장되어간 복음주의의 영향력이 명백한 근거를 제시해줌으로 사실이었음을 확인하게 한다.

둘째, 등장하는 인물들의 상관성이다. 복음주의와 관계된 부흥운동이, 전혀 아무 상관없는 또는 어떤 연결고리도 없는 각자의 자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사자들이 의도하지 않아도, 혹은 간절히 기대하고 바랐으므로 ‘허락된 부흥’이었다면 그들의 순회사역과 각자가 가진 특성들이 보다 세밀하고 심도 있게 복음을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영국과 미국, 캐나다 및 기타 식민지역들을 순회하면서 또는 그 결과 자신들의 자리에서 고유한 기능들을 가지고 모든 사회대상과 민족대상들을 복음의 대상으로 여기고 구령을 준비하고 실천했던 사료들을 기술한 저자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고 또한 수고에 찬사를 보낸다. 복음주의, 혹은 부흥과 관계된 사실들을 대서양을 오가면서 기록하고, 또 인물별로 지명별로 정치적 사건별 상관성을 설명하는 것이 사실 부담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인데 꾸준히 그리고 빠짐없이 작업에 임한 학자적 노력과 수고, 그리고 성실함에 또한 격려를 보낸다.

셋째, 현대교회 구성원들이 부흥에 대하여 가지는 다소 막연하고 너무 쉽게 인위적으로 의도하는 부분들이 사실 복음주의의 왜곡된 산물에 가깝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한국 교회가 가지는 부흥에 대한 소망과 바람만큼 기다림과 준비가 있는가 하는 문제를 성찰해야 한다. 즉, 인본주의적이거나 의도적인 왜곡된 부흥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면 - ‘옥성호’가 말한 엔터테인먼트, 심리학, 마케팅, 신비주의의 방법 - 한국교회는 기다림과 조아림이 필요한 시대라는 것이다. 저자의 글을 통해서라면 분명히 부흥은 그 예비 작업이 있었다. 비록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따분하거나 지루할 수 있는 말씀과 기도, 그리고 예배로 모이는 그 일상에 하나님의 일하심이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음을 인하여 두려움으로 또 간절함으로 준비하는 것이 보다 더욱 교회된, 성도된 자세라 할 것이다. 더구나 부흥과 부흥주의의 간격을 두지 않으려는 현대 교회의 부흥강박증에 대해서는 심히 깊은 우려를 가지고 있다. 필자는 이 부분을 표현하기에 상당히 어렵고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부흥과 같은 일련의 현상? 혹은 발현?을 모든 기독교인들은 일평생 기대하고 갈급해해야만 마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위적, 의도적으로 이와 같은 일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강한 확신과 주장과 실제 나타나버리는 일련의 현상들을 보면서 ‘인본적(人本的)’이고 ‘가공적(架空的)’인 느낌을 항상 받아왔기 때문이다. 즉, 성령에 의해 자연스럽고 당연히 나타나야하는 하나님의 영광과 회심의 역사를, 설득과 강요로 말미암아 억지로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갖는다는 얘기다. 하나님을 위한 영광,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은혜의 혜택의 결과로 사람에게 주어지는 참된 평안과 열매를 맺어가는 것이 바른 순서일 것이다. 그런데 모여 있는 우리(교회)가 좋으면 그것이 영광이고 은혜고 응답이라는 등식이 은연중 성립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4. 부흥을 바라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위한 제언

 

합 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여기서 하박국 선지자가 갈망하며 기도했던 제목은 “수년 안에 주의 일을 부흥케 하소서”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주의 일을 부흥케 하소서”는 히브리어로 ‘하예이투, WhyYEj'’ 로서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주의 그 일을 소생하게 하소서’가 된다. 즉, 부흥이라 번역된 단어는 hy:j;인데, 이는 살다, 소생하다, 생명이 있다, 회복하다는 뜻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결코 수와 재정의 증가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면 구약에서 부흥과 관계될 만한 다른 단어는 없는걸까? 숱하게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번성’ 혹은 ‘편만’으로 번역된 ‘라바 hb;r;’와 ‘샤라츠 $r'v’이다. 개체, 물질에 관계없이 증가하고 확대되고 늘어가고 번성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에는 이 단어의 쓰임이 일백여회 이상 사용된다. 그렇다면 이 구약의 번성과 편만이란 말이 오늘날 교회의 부흥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인가? 그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yes or no'이다.

①yes인 이유 -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텅 빈 세상에 뭔가를 채우기 원하셨다. 그래서 빛과 궁창, 물, 땅과 대기층,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기식하고 생존해나갈 수 있는 수많은 생물들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명령하신 첫 번째 명령이 바로 “생육, 번성”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인간’에게도 똑같이 명령하셨는데 유독하게 인간에게 만큼은 “정복, 다스림”이란 명령이 더 붙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인간은 단순히 생육과 번성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계획하신 것이 아니라, 이 피조세계를 다스려서 영광받으신다는 것이다.

여기에 굉장히 중요한 것은 그 부흥, 곧 번성과 편만은 이미 주시고 시작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번성과 편만은 그냥 되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마치,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게끔 되어있는 원리와도 같다. 즉, 원리와 공식으로서 주어진 축복이 바로 부흥이라는 것이며 풍성과 번성, 편만이라는 얘기다. (이 부분이 일반적인 종교와 기독신앙과의 본질적인 차이다. 기독인은 꼭지만 틀면 - 바른 예배,말씀,기도 곧 성령충만과 인도 - 번성과 편만의 약속은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본질적인 내용은 잊어버리고 혹은 무시하고 인간 스스로가 번성과 편만을 쟁취하려 한다는 것이다.)

②no인 이유 - 번성과 편만, 혹은 증가 자체가 목적인 경우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바른 혹은 정확한 복음이 아닌 것으로 교인을 무지가운데로 끌고가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는 논리가 있다. 목회자 개인의 소신과 철학이 성경으로 대체되어서 교인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따라서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단이 되고 목사의 뜻을 거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자로 여겨진다. 무엇보다 그같은 사람들이 후에 만나는 고난을 하나님의 징계로 해석하는 것은 오늘날 교회가 가지는 미신이다.

신약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부흥과 관계된 말은 무엇일까? 사도행전을 통해 부흥과 관계된 단어로서는 ‘흥왕’으로 번역된 것이 있는데 사도행전 12장 24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고 기록되었고, 19장 20절에는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고 기록되었다. 여기 쓰여진‘ 흥왕의 헬라어는 ‘에욱싸넨'인데 기본형은 '아구싸노"이다. '자라다'는 뜻으로 누가복음 1, 2장에 예수님이 '자라갔다'고 기록했을 떄에도 이 단어가 쓰였고 고린도전서 3장 6절에 '자라게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라고 말할 떄 여기 쓰여서 신약에는 5번 정도 사용된 것 같다.(다른 변형은 참고하지 않음)

그렇다면 여기서도 수와 재정의 증가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의미와 뜻은 분명히 가지고 있지만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들과 목회자들은 말씀 앞에 분명하게 짚어야할 것이 있다. 목회의 성공을 수와 재정의 증가라고 가지고 있는 그 생각 자체는 상당히 성경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논리를 세울 때, 그 반대상황의 절대 다수의 교회는 무엇인가? 말장난 같지만, 저주받았는가? 아니면 목사나 그 교회의 믿음이 없는 결과인가?

 

신구약 성경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되는 ‘부흥’은 오늘날 우리 인식 속에 있는 것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바른 복음의 교회는 그 열매가 반드시 맺어지며 그 열매는 숫적 증가와 재정적 증대로 나타날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또 하나 염려스러운 것은 잘못하고 있으면서 이와같은 성경의 가르침을 위로로 삼지 않아야할 것이다. 즉, 영혼구원의 그 어떤 흔적도 나타나지 않으면서 성경이 수와 재정의 부흥을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도피적 혹은 합리적 위안으로 삼지 않아야 할 것이다. 복음이라는 속성은 그 역할에 있다. 바울의 고백대로 심는 일, 열심히 뿌리는 일까지만 우리의 역할이다. 그것을 자라고 열매 맺게하는 것은 어떤 인위적인 노력과 열심히 개입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