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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값 비싼 기독교”존 맥아더 지음, 이용중 옮김, 부흥과 개혁사, 2009년

 

                                                                                                                                 서평 / 이운연 / 충일교회(여수) 목사

 

 

  한국의 기독교 인구가 얼마나 될까? 이런 저런 통계들이 있지만 받아들이기가 힘든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분명 기독교인의 수는 엄청나다. 그런데 그 많은 기독교인 중에 진정한 기독교인은 얼마나 될까?

이런 질문을 두고 과격하다느니, 교만하다느니 말들을 한다. 『값비싼 기독교』의 저자 존 맥아더 박사는 뭐라 말할까? 저자는 서문에서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당신은 당신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심판과 영원한 형벌에서 해방되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천국의 한없는 기쁨 가운데 기적과 놀라운 경험을 맛보며 영원히 넘치도록 풍성한 삶을 살고 싶은가? … ‘예’라고 대답했다면 분명히 알아 두기 바란다. 이 질문에 재빨리 ‘예’라고 대답하는 많은 사람, 너무너무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을 결코 받지 못할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Hard to Believe

 

   이 책의 원제목은 『Hard to Believe』이다. 기독교가 결코 쉽게 믿을 수 있는 종교가 아님을 강조한다. 기독교 신앙을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천박한 사고를 저자는 통렬히 비판한다.

저자는 미국 매스터 대학 및 신학대학원 총장( The Master's College & The Master's Seminary)이며 그레이스 커뮤너티(침례교회)의 목사이다. 방송 설교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다작(多作)으로도 명성이 있다. 국내에도 그의 책이 50 여권이나 나와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른바 소비자 중심의 교회를 비판한다. 소비자가 원하면 햄버거의 크기와 맛을 바꿀 수 있듯이 오늘날 교회가 교인들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바꾸는 행태를 비판한다(1장). 예배가 길면 줄이고 사람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설교도 뜯어 고친다. 교회 밴드의 음악으로 사람을 즐겁게 한다. 소비자 친화적인 교회(User-friendly Church), 사람들의 요구에 민감해지는 교회가 되어 간다. 이를 저자는 Seeker-sensitive church라고 부른다. 이를 구도자 중심적인 교회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좀 거슬린다. ‘구도자’란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아 보인다.

   이렇게 사람의 요구에 맞추려고 복음을 뜯어 고치기 시작할 때, 복음은 이미 복음이 아니다(167쪽). 바울은 이 복음을 가감없이 전하다가 인간 쓰레기로 취급받는다(3장). 예수님 역시 타협 없이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에게 배척받으셨다(4장).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가볍게 전도해서 쉽게 구원에 이르게 하려 든다. 어림도 없는 일일뿐더러, 예수님도, 사도 바울도 따르지 않는 별종의 기독교가 되었다

복음을 왜곡시키고 희석시켜서 전해도 어차피 사람들은 용인하지 않는다. 복음의 가시를 제거하고 받아들이기 쉬운 메시지를 계발해도(38쪽)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태세가 된 사람들은 어차피 만족하지 못한다. 금욕주의적이었던 세례 요한을 거부한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는 잘 먹는다고 시비를 걸었다. 진리를 듣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변명거리 밖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9장). 복음이 바르게 선포되면 교회 안에 있으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은 거부감을 보인다. 그들은 땅의 것만을 추구한다. 한국 교회에서 잘 쓰는 말로 하자면 ‘축복’만을 원하다. 물론 영적인 복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으며 하나님과의 사랑에 빠져들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참된 예배에 대한 갈망도 없다. 이렇게 복음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는 이들을 달래기 위해서 복음을 왜곡, 희석시켜온 결과 오늘날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고 저자는 확신한다(142쪽).

  이런 사람들을 붙잡아 두려고 온갖 노력을 다해도 성공할 수 없다. 오직 십자가만이 우리의 희망이라는 사실을 목소리를 낮춰서 말하고, 인간은 죄인인 고로 스스로에게는 가망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도 소용이 없다. 아무리 잘 달래도 그들이 결코 그리스도께 접붙여지지 않는다.

십자가의 복음이 인기 있을 리가 없다. 참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 인기는 물 건너 간다(29쪽). 좁은 문, 험한 길을 가자고 하는 설교가 인기 있을 리가 만무하다.

 

희망은 없는가?

 

  하지만 이 복음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 복음이 바르게 선포되지 않으면 교회 안에 있으면서 구원받은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시험해 보려하지 않을 것이다(고후 13:5). “설교의 목표 - 복음 제시의 목표, 교회의 목표 - 는 단지 모든 사람을 빨아들여 그들이 편한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것이 아니라 가짜에서 진짜를 구별해 낼 수 있도록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진리를 전하는 것이다.”

오직 구원의 복음을 있는 그대로, 타협하거나 왜곡시키지 않고 전하는 것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복음일지라도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수고를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부르신다(12장).

 

장단점

 

   맥아더는 언제나 성경 본문을 풀어간다. 현상을 보고 질타하지만 성경을 근거로 해서 말한다. 그의 책을 주목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글이 쉽고 핵심은 간명하다. 그래서 그의 책이 인기가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뛰어난 안목에도 불구하고 흠이 보인다. 그는 세대주의자이다. 그래서 곳곳에서 종말론에 대한 오류가 두드러지고 있다. 하지만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별 무리는 없어 보인다.

 

생각할 문제

 

  이 책을 읽으면서 의문이 하나 남는다. 십자가의 복음이 인기가 없다고 저자가 말하고 있는데 저자의 인기는 왜 이리 상당한 걸까? 그보다 더한 의문이 있다. 한국에서는 왜 이렇게 저자의 인기가 높은 걸까? 그의 글을 한국 교회에 적용시킨다면 교회다운 교회, 신자다운 신자는 별로 남을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 저자의 책을 출판사들이 경쟁적으로 번역해 낸다. 복음만을 전하는 저자를 좋아할 만큼 한국 교회는 철저하게 복음적이고 성경적이어서일까? 멀리, 기독교 국가로 보이는 미국의 한 유명한 목회자요 신학자이자만 우리 눈앞에서 책망하지 않기 때문일까? 막상 우리 앞에 서면 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