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A. 놀, 『복음주의의 발흥』
서평: 김영석
복음주의의 역사를 말하기 전에 복음주의의 정의를 다루는 것이 먼저 순서일 것이다. 다양한 정의를 내릴 수 있겠지만, 본서에서는 데이비드 베빙턴의 정의를 따르고 있다. 베빙턴은 복음주의를 구분 짓는 핵심요소를 다음 네 가지로 말한다.
-확신, 삶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념
-성경, 모든 영적 진리가 그 안에서 발견된다는 믿음
-행동주의, 평신도를 포함하는 모든 신자가 특히 복음전도과 선교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삶으로의 헌신
-십자가 중심주의, 즉,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를 대속하는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라는 확신
복음주의라는 느슨한 구분은 교리적으로 너무 광범위하게 잡은 누를 범하게 된다. 그러나, 복음주의라는 주제를 다룸에 있어서 마틴 마티가 교리적인 복음주의를 너무 좁게 잡은 단점을 다소 보완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서의 저자인 마크 놀은 복음주의의 발흥을 미국과 영국에서 일어난 부흥과 연관되어 있음을 드러내는데, 특히 에드워즈, 휫필드, 웨슬리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본서의 구성은 복음주의가 일어나게 된 정치 사회 문화적인 배경을 먼저 설명하고, 그 변화에 따른 교회의 적응으로써 청교도, 경건주의, 고교회의 영성을 주장한다. 그 세 흐름의 합류점으로서 시작된 부흥 특히 조나단 에드워즈의 사역을 필두로, 조지 휫필드와 웨슬리를 중심으로 일어났음을 강조한다. 즉 소위 말하는 성령 운동의 결과로서 이뤄진 것이 복음주의임을 정리한다. 그렇게 형성되어 가는 복음주의가 어떻게 세계 속으로 확장되어 가고 분화되어 왔는지를 설명한다.
마크 놀은 복음주의 발흥과 번성의 원인을 규제없는 신앙 환경으로 이해한다. 복음주의가 일어나던 때의 사회적인 상황, 특히 영적인 상황을 놀은 “검은색”으로 표현할 만큼 영적인 생명력이 시들해져 있었다. 이 시기는, 일종의 거래를 통해 이뤄지긴 했지만, 영국 전역 곧 스코틀랜드와의 연합이 이뤄진 1907년부터 자유 이동 조항이 확보되었다. 또 인구의 급격한 팽창과 같은 상황에서 북미로 흘러 들어온 뉴잉글랜드에서는 그야말로 규제가 사라진 신앙환경이 주어진 것이다. 이런 시대적인 배경으로 청교도는 은혜중심의 개신교 사상을 만들었고, 독일의 위태로운 신앙적 상황에 대한 치유책으로 슈페너의 경건주의가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복음적 설교에 반응하는 이들이 국교회 안의 자원자 협회로 조직화되는 고교회파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을 복음주의 운동으로 변모 시킨 최초의 사건 중심에 선, 조나단 에드워즈가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게 된다. 그는 오직 믿음에 의한 칭의를 강조하는 두 편의 설교로 1734년 늦가을에 매사추세츠 노스앰턴에서 일어난 부흥은 경건주의나 고교회 일글랜드 국교회의 전례를 따랐다. 이 부흥의 열기는 순회 설교자 조지 휫필드와 같은 이들이 연이어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마크 놀은 각성을 정의하면서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부흥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불러 일으킨 흥분으로 묘사함으로써 자칫 에드워즈가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보다 찰스 피니의 말하는 부흥 운동으로 설명하는 누를 범하고 있는 듯하다.
계속해서 놀은 복음주의를 청교도 혁명과 왕정복고의 목격자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목격자로서 열광주의와 열광주의의 끔찍한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직접 목도한 이들이라고 설명한다. 복음주의 초기 인물들은 당대 가장 위대한 대중적 영사인 조지 휫필드, 한 시대를 가장 효과적인 조직자로 가장 오랫동안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존 웨슬리, 대중 조정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윌리엄 시어드, 가장 감동적인 대중 음유시인인 찰스 웨슬리, 가장 강력한 사상가인 조나단 에드워즈, 대중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중요 선각자인 존 루이스와 토마스 프린스, 윌리엄 맥클로흐, 그리고, 신학자, 찬송작가 등이 이끌었음을 부연하고 있다.
이는 놀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복음주의 운동의 언제나 거의 다른 지역의 복음주의 운동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이다.
복음주의는 1770년 9월 30일 조지 휫필드의 소천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기가 도래된다. 이 즈음부터 알미니안 감리교인과 칼빈주의 감리교인이 선명하게 규정된 조직화 작업이 추진된다. 웨슬리파 감리교는 잉글랜드 국교회 내부에서 점점 두드러진 복음주의 모임이 되어 갔다. 잉글랜드 국교회 내에서 이렇게 분화되고 있는 사이에 비국교회에서도 속도는 다소 느리지만 복음주의 운동을 지향하게 된다. 이에는 체험적인 신앙보다 엄격한 교의주의 형식으로 드러난 갱신 운동의 특징도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보면, 국교회든 비국교회든, 잉글랜드이든지, 그 외 웨일즈, 스코틀랜드, 북미 등지에서 발전되고 분화되는 과정을 겪게 된 것이다. 이는 회심과 성결한 삶에 대한 강조, 그리고 교회 형식이나 유서깊은 종교적 전통에 대한 유연성을 특징으로 하는 휫필드의 사역에서 있어서의 특징이 복음주의 운동의 특징으로 지속되는 것으로 놀은 이해한다.
본서는 복음주의 초기의 정황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는 것으로, 1730년대부터 1790년대에 이르기까지 복음주의 역사를 배경과 발흥인 부흥의 시기, 발전되고 분화 통합되고, 다시 발전적으로 분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본서를 읽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주의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서에서 이해하는 ‘복음주의’라는 용어를 이해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함을 주지하는 바이다. 본서에서 규정하는 복음주의는 다음과 같다.
- 구원에 이르는 길로서 인간의 공로에 대한 신뢰 대신, 믿음에 의한 칭의를 상징한다.
- 교회를 통한 인간적 중보(종종 부패한) 대신,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유일하신 충족성을 옹호한다.
- 카톨릭 미사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이 반복된다고 보는 대신, 십자가 도상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단번에 모든 것이 이루어진(once-for-all) 승리를 바라본다.
- 카톨릭 교회가 성경의 의미를 결정하는 대신, 일반 성도들이 읽는 성경 속에서 최종 권위가 발견된다.
- 교회가 안수한 사제 집단에 대한 부적절한 의존 대신, 모든 기독교 신자들이 제사장임을 수용한다.
마크 놀은 복음주의라는 용어를 위와 같이 규정함으로써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갈라선 로마카톨릭까지도 복음주의라는 테두리 안에서 고려하는 누를 범하고 있다. 그러나, 복음주의 역사를 18세기 부흥에 뿌리를 두고, 확장되고 분화되어 다양해진 계보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730년대부터 1790년대에 이르는 복음주의의 기원과 발전, 분열, 통합, 분화를 설명한다. 그리고 초창기 복음주의 인물에 대한 전기로 어느 정도 상세히 설명한다. 특히 복음주의에 있어서 이정표를 세운 조나단 에드워즈, 존 웨슬리, 찰스 웨슬리, 조지 휫필드, 셀리나 등이 활동하던 영국을 위시한 유럽과 북미 그리고 세계와의 관련성을 설명한다.
청교도의 영향을 받은 복음주의는 주관적인 경험인 회심과 성경을 교리와 삶의 표준으로 여기는 신념, 행동주의,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을 강조한다. 이는 교리의 부재와 그로인한 이단들의 발달, 기성교회에 대한 불신이 도를 넘어선 사회 속의 한국교회가 어떤 신앙이 한국으로 들어왔는지 그 근본을 다시 한번 보게 한다. 복음주의는 언제나 확신을 통해 이루어진다.
복음주의 역사를 기술함에 있어서 역사적인 사실을 나열만 함으로써 비교 분석하며 연구하기에는 용이하다. 하지만, 상호 관련성이 모호하기에 논지에 접근이 어렵다. 물론 복음주의 발흥을 설명하는데 한 두 가지만의 이론으로 접근할 수 없음을 안다. 또한 그 시대가 안고 있는 지리, 민족감정, 국제 정치 등에 관한 관련 지식 또한 방대하다. 또 복음주의 발흥은 부흥과 뗄 수 없는 관련이 있는데 부흥은 성령의 사역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기에 더욱 모호한 글이 된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휫필드의 다음 구절이 더욱 절실한 것은 한국교회의 장자교단을 외치며, 부흥 이전의 암흑을 보여주는 듯한 교단에 소속되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나는 침례교인 중에서, 장로교인 중에서, 독립파 중에서, 잉글랜드 국교회 중에서도 중생한 영혼들을 보았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양한 예배 형식을 통해 다시 태어났습니다. 과연 어떤 사람이 자기 교파야말로 제일 복음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