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성령의 신성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욥 33:4)

 

 

 

 교회의 예배의식을 통하여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축도를 행한다. 그리고 "성부 성자 성령께 찬송과 영광을 돌려보내세, 태초로 지금까지 또 영원 무궁토록 성 삼위께 영광 영광, 아멘" 이라고 찬송한다. 이것은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3위(三位)이신 성령께도 영원한 영광과 찬송을 돌림으로써 그의 신성을 고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은 수세기 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으나 인간의 형태를 취하신 적이 없는 성령의 신성은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그대로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성령의 인격성을 의심하는 이단들은 오늘도 성령의 하나님 되심을 믿지않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적으로 성령의 신성을 분명히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구약에서는 성령은 여호와의 신(삿 3:10)으로 또는 자주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주 하나님(욥 33:4, 시51:10 이하, 겔 37:14)으로 언급되고 있다. 신약에서는 베드로가 사도행전 5:3~4에서 아나니아에게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라고 말한 것은 성령을 분명히 하나님과 동일시한 것이다. 고린도전서 3:16에서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하였다.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소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성령"이 그 성전에 거하신다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성령을 바로 하나님 자신과 분명히 동일시하고 있다.

 

 성경은 또한 성령의 신적 속성을 증거해 주고 있다. 시편139:7~8에서 다윗이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라고 고백한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신적 편재성을 성령께 돌린 것이다.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신(영)의 임재를 동일시하고 있다. 따라서 다윗은 주의 신(성령)을 떠나 피할 수 있는 어떤 곳도 없기 때문에 다윗은 가는 곳보다 성령은 "거기계시며"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전 2:10~11에서 바울이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한 것은 성령의 신적 전지성을 고백한 것이다. 또한 이 말씀은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 자신을 통하여 온전히 계시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성령은 신성을 가진 존재이어야만 하는 것을 보여 준다(참고; 요일 5:7~9).

 

 예수 그리스도는 중생한 모든 사람을 새롭게 태어나게 한 행위는 성령의 사역에 의한 것임을 증거하셨고(요 3:5~7), 성령을 거스리는 죄는 인자를 대적하는 죄보다 더 큰 것으로 언급하기도 하셨으며(마 12:28~32), 또한 마지막 분부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마 28:19) 주라고 명령하심으로 친히 성령의 신성을 인정하셨다.

 그리고 사도들은 축도에서 성령을 성부와 성자와 나란히 연결시킴으로써 (고후 13:14, 계 1:4~6) 성령께서 동일한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였다. 마지막으로 삼위일체를 언급하는 많은 성경 구절이 성령께서 완전한 하나님이심을 명백하게 잘 증명해 주고 있다(요 14:15~24, 엡 1:13 이하, 2:18, 살후 2:13 이하, 벧전 1:2). 성령은 실로 아버지와 아들과 불가분적 신격(神格)의 연합 가운데서 우리 앞에 참 하나님으로 항상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