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지옥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계 20:14~15)

 

 

성경은 최후의 심판에서 무죄가 선고된 자와 정죄된 자 사이에 구분이 있으리라고 가르친다(단 12:2, 마13:39~43, 요 5:28~29).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영원한 형벌에 처한 자들이 가는 곳(마 25:41~46, 계20:11~15)을 성경은 ‘지옥’(게한나; 마 5:22, 18:9)이라고 하며, 이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매우 명료하고 무서우리만큼 엄숙하다. 지옥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은 대부분 예수그리스도의 입으로부터 직접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현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지옥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꺼리거나 애써 그 실제적 의미를 축소시키려 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교훈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셈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그의 가르침의 한 중요한 강조점을 외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신약 성경은 지옥을 영원한 불과 흑암의 장소(유 7, 13), 울며 이를 갊이 있는 곳(마 8:12, 13:42, 50, 22:13, 24:51, 25:30), 멸망의 형벌을 받는 곳(살후 1:7~9, 벧후 3:7, 살전 5:3), 그리고 고통의 장소(계 20:10, 눅 16:23) 등으로 표현하여 말로 다할 수 없는 총체적인 고통과 비참의 장소임을 말해주고 있다. 물론 여기 지옥을 묘사하는 일부 단어들은 상징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징이 결코 우리가 그 묘사된 내용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 지옥의 형벌에 대한 그 영상적인 표현들이 상징이라고 한다면, 실제는 그 상징이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울 것이 틀림없다. 일반적으로 상징의 기능은 상징 그 자체가 함유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높고 강렬한 어떤 실제의 상태를 지적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지옥을 묘사하기 위해 그 당시에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상징들을 사용하셨다는 사실은 지옥의 고통을 단순한 상징으로만 보려고 하는 자들에게 전혀 위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지옥에 대한 신약의 가르침은 생각할수록 우리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그 무서운 공포로 인하여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천국이 우리가 꿈꿀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곳인 것처럼, 지옥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비참한 곳임을 알 수 있다.

 

만일 지옥의 한 가지 기본적인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천국의 특징과 대조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부재(不在) 또는 그의 임재로부터의 추방이다. 그것은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경험으로서, 육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통 혹은 둘 다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한 버림받은 자들이 처할 비참한 상황의 또 다른 국면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고독감 즉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이심을 깨달았으나 자신은 그 분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와 있다는 의식이다. 그리고 그러한 분리가 영원한 것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사람의 도덕성, 영적 상태도 영구적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 사람의 상태가 무엇이었든지 그것은 영원토록 계속될 것이다. 보다 나은 상태로 변화하리라는 기대를 가질만한 근거는 전혀 없다. 따라서 지옥에 있는 모든 사람은 어떠한 소망도 없이 그대로 영원히 살게 된다.

우리는 최후의 심판을 우리 손에 쥐고 사람들을 지옥이나 천국에 임의로 배치하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한다. 성경에는 심판 날에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구절들이 있다(마 7:21~23, 25:37~46). 그 날에 하나님의 자비가 최대한 미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진정 신뢰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들에 관해서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우리는 단지 죄인의 유일한 희망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사명에 매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