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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영 목사

 

    “칼빈의 교회관”의 저자인 오토 베버 교수는 “칼빈 연구가의 한 사람으로 괴팅겐 대학의 신학 교수로 있으면서 개혁주의 교회와 신학에 공헌을 한 신학자”였으며 “이론 신학보다 교회사와 실제의 교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신학자”였다. 이 책은 오토 베버 교수의 사후에 그의 제자들이 편집 출판한 오토 베버 교수의 논문집 중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인간 존재의 계속”(Die Treue Gottes und die Konitinuitat der Menschlichen Existenz)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제 II권을 김영재 교수가 번역한 것이다. 책의 제목을 원제목과 달리 “칼빈의 교회관”으로 한 것에 대해 김영재 교수는 “칼빈의 교회관”이라는 제목이 오토 베버가 쓴 글들의 내용을 잘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바른 교회를 추구하는 한국교회의 현실적인 필요와 욕구에 더 부합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토 베버 교수의 칼빈의 교회론의 특징이 “칼빈의 실제 목회와 역사적인 상황을 감안하여 역사적 배경과 상관관계를 밝히면서” 이해하려고 했다는 역자의 지적은 이 책을 읽을 때 언제나 마음에 두고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네 개의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1장 “교회의 형성자 요한 칼빈”(프랑크푸르트의 칼빈 기념일의 강연). 2장 “칼빈의 교회관”(1966년 2월 프린스턴 신학교의 워필드 강좌 때 강연, 이 책의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교회의 기초, 참된 교회의 징표, 교회의 직분, 신정국, 하나의 교회, 성례, 신자의 나라 등을 다루고 있다). 3장 “교회의 하나님에 관한 칼빈의 견해”(1959년 Calvin-studien에 발표한 논문). 4장 “1561년 교회 헌법에 명시된 교회와 국가의 권한”(1964년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칼빈 연구회의 강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네 개의 논문들이 각각 다른 장소에서 발표한 별개의 논문들이기에 내용상 중복되는 부분들이 있다. 이 책의 네 개의 논문을 다 읽기에 시간이 부족하다면, 2장 “칼빈의 교회관”을 숙독하면 다른 논문들도 함께 이해하는 유익이 있을 것이다.

 

        오토 베버 교수가 설명한 칼빈의 교회관의 특징들을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다음의 몇 가지 특징들에 주목하여 살펴보겠다.

       첫째로 올바른 교회관 정립에 있어서 성경의 중요성이다. 종교개혁에 있어서 성경의 중요성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참 교회는 어떤 교회이며, 참 교회의 표지들은 무엇이며, 참 교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과 교회를 사랑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중요한 질문이다. 성경은 참 교회를 위한 샘물과 같은 보고이며 구체적 지침들로 가득 차 있는데나타나야 하는가론에서도 동일하다. 한 가지 예로, 종교개혁자들이 종교개혁을 통해 로마 카톨릭 교회와 분리했을 때 로마 카톨릭 교회는 “교회의 하나됨과 보편성”을 분리하는 자들이라고 비판하였다. 나야은 종교개혁자들의 분리가 교회의 하나됨과 보편성으로부터 분리가 아니라, 오히려 순수하고 참된 교회의 회복임을 성경의 권위와 가르침을 근거로 변론하였다: “그것을 어떻게 교회를 분리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병사들이 자기 위치를 이탈했을 경우에, 어느 누가 군기를 높이 쳐들고 각자는 자기 위치로 되돌아오라고 소리친다면 그것을 분리 운동이라고 하겠습니까? ... 내가 주님의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하여 애를 쓰지만(교회를) 하나로 묶는 띠는 오직 주님의 진리임을 잘 압니다.” 올바른 교회, 참 교회의 근거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전통이나 권위가 아니라 “주님의 진리”인 성경에 기초해야 한다. 성경에 기초하지 않은 교회는 올바른 교회가 아니며 오직 성경의 진리에 부합되릔 쓰지만이 참 교회임을 주장한다. 하나로 있어서 성경의 중요성과 권위릔 단순히 교회의 본질에 관한 이해 뿐 아니라, 참 교회의 징표들, 교회의 직분자들의 임즅표들직분자들의 구체적인 임무와 활동나타세례와 성찬의 올바른 집행, 교회 권징에 대한 시정부와 당회의 역할표들책임 등의 구체적인 사안들에 의 서도 구체적이며 권위 있는 표준표들원리를 제공한다는 것이 칼빈의 주장이다. 칼빈의 교회관을 통해 오토 베버는 성경적 가르침의 권위가 칼빈의 모든 교회에 대한 이해의 근저에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로 교회가 처한 역사적인 상황과 현실에 근거한 교회관의 정립이다. 오토 베버는 칼빈이 제네바에서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부터 완전한 교회관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오히려 칼빈의 교회관은 목회를 하면서, 16세기의 역사적 상황과 제네바라는 구체적인 현실적 환경 속에서 정립하여 갔음을 지적한다. 먼저 오토 베버는 칼빈이 처음 제네바에서 목회를 시작할 때, 그리고 최소한 1541년 교회 헌법을 내기 전에는 목사(pastores), 교사(doctores), 장로(presbyteri), 집사(diaconi)의 네 직분에 대한 분명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칼빈이 네 직분에 대한 개념을 갖게 된 것은 처음 제네바에서 추방되어 스트라스부르에 있을 때였으며, 1538년 마틴 부처가 출판한 “진정한 목회”를 통해 배웠을 것이라 주장한다. 또한 네 직분의 역할과 사역에 대해서도 16세기의 역사적 상황과 제네바 시라는 독특한 현실 안에서 정립해 나갔다. 예를 들어 권징의 경우, 권징은 교회의 권위에 속하는 것이지만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서는 시의회의 권한에 속한 문제였다. 교회의 치리가 시의회로부터 침해를 받아서도 안되지만, 로마 카톨릭의 막강한 교권 하에서 고통을 받은 시의회로서는 권징을 목사들과 당회에 넘기기에는 많은 우려와 반발이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과 구체적 현실 속에서 칼빈은 교회의 일과 시의회의 일을 엄격하게 분리하여 교회의 권징을 확보하기 보다는, 교회와 정부의 영역이 서로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히 얽혀 있는 사실을 인정하고 시정부와 교회가 함께 신정(神政)을 이루어가는 방향을 취했다.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현실에서는 출교권이 교회에 있지 않고 영주에게 넘어가는 경우도 더러 있었는데 칼빈은 이런 부분들에 대해 역사적 상황과 현실의 기반 위에서 교회를 세워나갔다. 현실적 상황과 형편을 무시한 교회론을 억지로 밀어붙이는 것은 개혁이기 보다 혁명이며, 목회적이기 보다 이데올로기적이다.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상황과 현실적 한계들을 인식하면서도 참 교회의 모습을 부단히 추구했다는 점이다.

    셋째로 양 극단을 지양하는 중립의 태도다. 오토 베버는 칼빈의 교회관을 설명하면서 양 극단을 피하는 중립의 길을 걷는 것을 칼빈의 특징으로 언급하는데, 성찬논쟁과 교회의 치리권에 대한 칼빈의 태도를 지적한다: (성찬논쟁에 있어서) “이 시점에서 칼빈은 츠빙글리의 신령주의(Spiritualism)와 루터교의 본체론 사이에서 중재자로 역활한 것처럼 보인다.”(교회의 치리권 문제에서) “첫째로 치리권을 순전히 성직자의 손에 맡김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치리의 신성화(Sakralisierung)를 반대하는 한편, 둘째로는 치리권을 시 당국에 맡켰을 경우 생겨나게 마련인 치리의 세속화(Sakularisierung)에 반대했다. 칼빈은 이미 얘기한 대로 중간노선을 택했다. 치리권은 성찬에 초대를 받은 교회에 있고 장로들의 손에 있논쟁과 교다.” 칼빈이 중간노선을 택하고 중립의 입장에서 중재를 하려고 첈논쟁과 은 자칫 잘못하면 오의(S소지가 있논한 칼빈의 중간노선 혹은 중립의 입장을 취했다쟁과 은 절충의 길 혹은 타협의 길, 곧 이것도 저것도 아쟌과어정쩡한 타협의 길을 걸었다쟁과뜻이 아니다. 오토 베버가 지적하는 중간노선 혹은 중립의 입장을 취했다쟁과 은 에 있어서) 에서 극단적으로 나간 양 극단을 지양하고, 성 있어서) 에 충실한 길을 찾고자 첈논쟁과의미에서 중간노선 혹은 중립의 입장을 취했다쟁과에 극단을즉 성 있어서) 과 무관한, 무조건 양 극단의 중간에 선논쟁과의미의 중간노선, 중립의 태도를 취했다쟁과 이 아니다. 서로 반대되쟁과두 가지 입장의 중간에 선논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진리가 아쟌과두 개를 절충한다고 해서 진리가 되지쟁과않는다. 성찬이나 교회의 치리권에 대해 칼빈이 취한 중간노선과 중립의 입장은 성경적 진리에 근거한 입장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중간노선이며 중립의 입장이다. 중간노선에서도 성경의 중요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역자인 김영재 교수는 서문에서 1980년대 한국교회의 양극단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지나치게 의식하여 한국적인 교회로 탈바꿈을 지향하고 토착화를 인위적으로 서두르는 신학자들이나, 이를 반대하고 순수한 복음과 정통 교리를 고수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교회의 자연적인 한국화를 의식하지 못하고 목회적인 차원이란 명분으로 신자의 종교심에 영합함으로써 무의식중에 교회의 변질을 재촉하는 목회자들이나, 양자가 다 교회의 역사성과 전통에 대하여서는 무관심한 것 같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양 극단에 해당되는 모습은 옷을 바꾸어 입을 뿐 동일한 문제로 나타난다. 우리 시대에도 옷을 바꾸어 입었을 뿐이지 양극단에 해당되는 주장들과 흐름이 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진리와 성경적 가르침에 충실한 교회로 서는 것인데, 성경적 가르침에 충실한 교회로 서는 것이 칼빈이 추구한 중간노선, 중간 입장에 서는 것이다.

   사족 같은 이야기지만, 성찬논쟁에서 칼빈이 양극단 중의 하나로 언급한 쯔빙글리의 성찬에 관한 오토 베버의 이해는 문제가 있다. 쯔빙글리의 성찬에 대한 이해를 단순한 “기념설”(Memorialism)로 이해하는 것은 합당한 이해가 아니다. 쯔빙글리의 신학적 사상은 계속해서 발전하는데, 성찬에 관한 쯔빙글리의 이해 역시 신학적 발전과정을 거친다. 쯔빙글리의 초기 성찬에 관한 이해는 분명히 기념설적인 이해였지만, 후기로 갈수록 쯔빙글리의 성찬의 이해는 영적 임재설로 발전하여 칼빈의 견해와 거의 동일한 입장을 견지하게 된다. 칼빈신학대학원에서 유학 중 종교개혁사를 가르쳤던 리차드 멀러(Richard Muller)나 리차드 갬블(Richard Gamble) 교수 등은 쯔빙글리의 성찬론이 단순한 기념설로 생각하지 않는다. 쯔빙글리의 성찬에 관한 이해는 그의 원서들을 통해 다시 규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칼빈의 교회론의 가장 핵심이 되는 성경과 개혁교회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해 가는 교회(Ecclesia reformata est semper reformanda) 라는 말이 있다. 개혁의 중심에는 성경이 있다. 성경을 적당히 알고 적당한 수준에서 배우고 적용하는 것으로는 언제나 개혁해가는 교회가 될 수 없다. 언제나 개혁해 가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성경을 적당히 알고 적당히 적용하고 순종해서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한 교회는 결코 언제나 개혁하는 교회가 될 수 없다. 언제나 개혁해 가는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묵상하는 목회자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칼빈의 교회론을 읽다보면 개혁교회의 비전과 열쇠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단순한 진리에 있음을 새삼 발견한다.

   짧은 분량으로 오토 베버 교수의 칼빈의 교회론을 충분히 소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비록 네 편의 적은 논문이지만, 이 논문들에는 여기서 언급하지 못한 종교개혁에 관한 많은 지식과 정보와 함께 칼빈의 인격과 그의 교회관에 관한 수많은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칼빈의 교회관에 관심을 가진 사람 뿐 아니라 우리 시대에 바른 교회를 세우기 원하는 열심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열린 마음과 비판적인 안목을 가지고 일독을 권하고 싶다. 칼빈의 교회론을 이해하는 가장 좋고 바람직한 방법은 칼빈과 종교개혁자들의 저서들을 직접 읽는 것이다. 그러나 칼빈의 원서들을 더욱 풍성하게 읽기 위한 길잡이와 자극제로서 오토 베버의 칼빈의 교회관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아직 접해보지 못한 모든 분들에게 다시금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