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코람데오 닷컴(www.kscoramdeo.com)에 2010년 2월에 실린 글이다.


 
 

고신의 성령론
 

 

이신열 (고신대 신학과)

 

고신의 성령론을 규명하기에 앞서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증거를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토대로 우리가 추구하는 성령론이 성경의 증거에 얼마나 충실한가를 점검할 수 있을 것이다.

 

구약성경

구약은 신약과는 달리 '성령'이란 단어보다는 '영'이라는 단어를 더욱 선호한다. 이 단어의 원래 뜻은 바람, 호흡을 가리키는데 확대된 의미로서 능력과 활동을 뜻한다. 이는 먼저 인간을 포함한 우주세계에 신비롭게 임재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구약은 성령을 어떤 비인격적인 능력이나 활동만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구약성경은 이렇게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함에 있어서 그가 인격적인 존재로서 만물을 새롭게 하고 생명을 주시는 영, 즉 생명의 영(the Spirit of life)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그의 능력으로 가득한 임재를 통하여 인간은 생명을 부여받고 새롭게 되며 죽음에서 살아나며 하나님을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으로 알게 되며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정립됨을 밝힌다. 그러나 성령께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설정하심을 묘사함에 있어서 구약은 이를 하나님과 인간을 동일시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관계 설정을 통해서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더욱 강조한다. 성령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이루어주고 연합을 이루어준다. ...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의 효과를 가져다주며 동시에 양자가 구분될 수 있게 해준다."(Th. C. 프리젠, 『구약신학개요』, 272). 성령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고 체험할 수 있게 임재하시지만 그는 결코 인간에 의해 소유될 수 없는 분이시다. 왜냐하면 성령은 하나님의 권위이요 신비성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구약에 나타난 성령의 사역은 다음의 몇 가지 영역으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 창조의 사역이다. 하나님의 영은 창조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존재하셨고 만물은 그의 영에 의해 이루어졌다 (시 33:6). 만물은 그에 의해 형성되었고 생명을 부여받았다. 둘째, 섭리의 사역이다. 성령은 만물에 생명을 부여하실 뿐 아니라 이를 보존하시고 친히 다스리신다. 성령은 만물을 아름답게 단장하시고 질서를 부여하신다 (사 32:15). 이러한 보존에는 그의 통치가 뒤따르는데 구약은 이를 특히 바람을 통해서 묘사한다 (시 104:3). 셋째, 예언의 사역이다. 성령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자신의 말씀과 계시를 허락하신다 (겔 2:2). 구약은 특히 영과 말씀의 병행관계에 주목한다 (시 33:9; 시 147:18; 삼하 23:2; 사 59:21) (E. 슈바이처, 『성령』, 39). 넷째, 과제 수행을 위한 능력 부여의 사역이다. 성령은 이스라엘 장로들과 유사들 70명에게 임하셔서 백성들을 돌아보는 모세의 짐을 덜어주도록 하셨다 (민 11:16-17). 지도자에게 맡겨진 임무 수행에 필요한 지도력을 제공하신다 (신 34:9; 삼상 16:13). 성령은 과제를 맡은 자들에게 임하시고 이들을 강력하게 만드신다 (삿 6:34; 삿 14:6). 다섯째, 의와 화평의 사역이다. 성령이 부어지게 되면 공평과 의와 화평이 임한다 (사 11:16-20). 여섯째, 변화와 구원의 사역이다. 성령을 통해서 범죄 타락한 인간이 회복되고 새로운 마음이 주어져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깨닫고 이에 참여하게 된다 (겔 36:26-28). 이는 성령의 위로와 힘주심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사 42:1; 사 61:1) (이근삼, 『개혁주의 조직신학개요 2』. 123). 일곱째, 종말의 소망에 관한 사역이다. 새로운 종말론적 소망은 성령에 의해 완성된다 (슥 4:6) (유해무, 『개혁 교의학: 송영으로서의 신학』, 387). 만민에게 하나님의 영이 부어지게 될 것이라는 예언 (욜 2:28-29)의 궁극적 성취를 통해 하나님과의 연합이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새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신약성경

신약이 구약의 성취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때 구약에 나타난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가르침이 신약에 의해 더욱 분명하고 확실하게 제시된다. 구약과 마찬가지로 신약도 성령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언급한다. 성령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과 동일시되며 (눅 1:35) (밀라드 에릭슨,『복음주의 조직신학 하』, 40) 바울에 의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언급된다 (고전 2:4 이하). 성령 하나님이 예수의 영으로서 살려주시고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시는 능력으로서 뿐만 아니라 또한 인격체로 묘사되고 있다.(요 16:13; 고전 3:16-17; 고전 2:10-11). 구약과는 달리 신약은 성령을 은사 자체로 묘사한다. 그렇다면 그는 인격이시며 동시에 은사이시다 (Paul Althaus, Die christliche Wahrheit, 497).

구약에 나타난 성령 사역의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완성될 수 없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속 사역의 완성자로 지목된 메시야이시기 때문이다 (눅 4:18-21). 이런 차원에서 신약에 나타난 성령은 하나님의 영임과 동시에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영(the Spirit of Jesus Christ)이다. 그리스도는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셨고(눅 1:15) 성령의 역사로 세례를 받으신(마 1:13-17; 막 1:9-11; 눅 3:21-22) 후에 공적 사역을 시작하셨다. 그는 성령에게 이끌리어 시험을 받으시고 (마 4:1; 막 1:12; 눅 4:1)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셨다 (마 12:28). 또한 성령의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롬 1:4; 벧전 3:18).

성령은 이제 예수의 영으로서 그가 획득한 구원의 열매들을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적용시켜 중생하게 하시고 (요 3:5-6; 딛 3:5) 세례를 주셔서 (마 3:11; 막 1:8; 눅 3:16; 요 1:33; 행 1:5; 행 11:16; 롬 6:1-4; 고전 12:13; 갈 3:27; 골 2:12) 영생을 얻게 하시는 제 3위 하나님이심을 말하고 있다.

신약에 나타난 성령의 사역, 특히 그리스도인의 삶에 나타나는 사역을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내주의 사역이다. 보혜사 성령은 그리스도와 달리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분이시다. 그리스도는 부활 후에 더 이상 그의 육체로는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으시지만 성령은 우리 속에 내주하신다(요 14:18). 우리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바울의 가르침도 성령의 내주 사역에 근거한 가르침이다(고전 6:18-19). 또한 성령의 내주는 모든 신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 구원의 보증이기도 하다 (고후 1:22; 고후 5:5; 엡 1:13-14) (이근삼, 『개혁주의 조직신학개요 2』, 178-79). 둘째, 조명의 사역이다. 성령은 신자 안에 거하시며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그 뜻을 깨닫도록 조명하신다 (요 14:26; 요 16:13-14). 이 사역은 구체적으로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깨닫도록 하시는 것을 가리킨다 (요 15:26). 즉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그리스도를 드러내시는 것이 성령의 사역인데 이는 '투광조명 사역' (Flood ministry)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제임스 패커,『성령을 아는 지식』, 91-93). 셋째, 중보의 사역이다. 성령은 우리 속에 내주하시면서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고 이를 위해 기도로 간구하시는 분이시다 (롬 8:26-27). 그는 자신의 중보를 통해 우리를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영역으로 이끄시는 분이시다 (J. P. Versteeg, De Heilige Geest en gebed, 22). 넷째, 인도의 사역이다. 베드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성령께서 시키는 대로 말했다(막 13:11). 모든 신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그를 따라 행해야한다 (갈 5:16). 성령을 좇아 행할 때 성령이 허락하시는 열매들이 결과로서 나타난다 (변종길,『우리 안에 계신 성령』, 110). 다섯째, 은사주시는 사역이다. 성령께서는 '보편적 수여'(universal donation)의 원리를 따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은사를 허락하신다 (리차드 개핀, 『성령 은사론』, 51-52). 이는 고린도전서 12:13의 가르침에 근거한 것으로서 은사가 개인의 영적 유익이나 경건을 함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 봉사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과 결합되어 모든 성도들이 받은 은사를 따라 봉사해야 함을 뜻한다.

 

고신 성령론의 특징

이런 성경적 성령론이 고신 교회에 어떻게 적용되어졌는가? 고신 교회는 개혁주의적 전통을 물러받아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나가는 교회이다. 이는 성령론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칼빈은 성령의 가장 중요한 사역을 사람의 마음속에 신앙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이해했다 (존 칼빈, 기독교 강요, 3.1.4.). 고신의 성령론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신앙론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언급된 신약에 나타난 다섯 가지 성령의 사역 또한 신앙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고신 성령론의 특징을 신앙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사역의 관점에서 몇 가지로 나누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성령의 사역은 말씀 중심의 신앙을 제공한다. 신앙의 기초가 하나님의 말씀이며 말씀을 떠나서는 신앙이 잠시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성령이 허락하시는 선물로서의 신앙은 말씀에 의해 시작되고 말씀에 의해 종결된다. 이는 철저한 계시 신앙에 해당된다.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 하더라도 말씀으로 돌아가고 말씀 속에서 참된 하나님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참된 신앙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것이 고신의 신앙이다.

둘째, 성령의 사역은 교회를 어머니로 섬기는 신앙을 제공한다. 칼빈은 키프리아누스(Cyprianus)를 따라 교회를 모든 성도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아무리 훌륭하고 탁월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교회를 떠나서는 가진 바 신앙이 올바르게 유지되고 자라지 아니한다. 오히려 혼자 힘으로는 있는 신앙도 잃어버리게 될 가능성이 많다. 칼빈이 주장한 바와 같이 성령께서는 자기 백성을 교회라는 학교로 불러 모으시고 거기에서 이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베푸시고 말씀으로 먹이시고 양육시키신다. 이는 전적으로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셋째, 성령의 사역은 신앙의 순결을 요구한다. 고신은 일제 치하에서 신사참배에 반대하여서 평양에 감금되었다가 출옥한 성도들이 그 뿌리를 이루었다. 신앙의 순결은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담대함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러한 담대함은 성령께서 허락하시는 것이다 (막 13:11; 엡 3:12). 왜냐하면 성령께서 신실하신 진리의 영이시므로 (요 14:17; 15:26; 16:13; 요일 4:6; 5:7) 자기 백성에게 불의에 대항할 수 있는 담대함을 주신다. 신앙의 확신은 성령의 선물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coram Deo)의 정신이 발생하게 된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확실한 신앙은 세상의 모든 환난과 시험을 이기도록 만드는 금보다 귀한 순결한 신앙이 아닐 수 없다 (벧전 1:7).

넷째, 성령의 사역은 신앙의 현세의 가시적 측면보다 구원의 미래적 측면에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한 때 고신교회에 오순절주의자들이나 은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가시적 은사를 신봉하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는 성령 세례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령세례는 중생과 사실상 동의어로서 방언이나 이적 체험을 비롯한 가시적 체험과 관계된 것이 아니다. 참된 신앙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주 앞에 점도 없고 흠도 없이 나타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벧후 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