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제에게 한시적으로 낙태를 사죄할 수 있는

권한 부여에 대하여 (프란치스코 교황)



                                                                                                    이신열(고신대,  신학과)

 

     지난 1일 로마 가톨릭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서를 통해 ‘자비의 희년’ (Jubilee of Mercy)
기간에 한시적으로 낙태 여성의 죄를 모든 사제들이 사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는 “낙태를 한 여성이 진심 어린 속죄와 함께 용서를 구한다면, 모든 사제들이 이 낙태의 죄
를 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원래 25년에 한 번씩 시행되는
희년과는 별도로 교황의 특별 선포로 시행되는 자비의 희년은 원죄 없이 잉태된 동정녀 마리
아 대축일인 오는 12월 8일부터 시작되어 '왕이신 그리스도의 대축일'에 해당하는 내년 11월
20일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로마 가톨릭의 공식적 교리는 낙태를 중죄로 명시하고 있으며 낙
태 여성이나 시술자는 교회의 파문 대상이다. 이 중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은 가톨릭 교구
에서 최고 권위를 지닌 고해신부에게만 주어져 있다. 그러나 교황에 의해 선포되는 이번 자비
의 희년 기간 동안에는 사제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제가 사죄의 권한을 갖게 된다는
파격적인 결정으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교황의 이러한 파격적 행보는 소외받고 힘없는 계
층을 향한 끝없는 '자비의 실천'이라고 평가되기도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 주장은 로마 가톨릭
의 근본적 교리에 위배된다는 우려 섞인 반응을 내놓기도 하였다. 이에 교황청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번 결정에 대해서 지나친 확대해석을 금지시겼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페떼리코 롬
바르디 교황청 대변인은 "(이번 교서 내용은) 낙태의 죄가 지닌 무게를 축소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며, 자비를 베풀 가능성을 좀 더 넓히는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치로 베네데티니 부대변
인도 "(이 사안은) 현재로서는 희년에 한해 적용되는 조치일 뿐"이라고 발표함으로서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하였다. 그렇다면 교황의 이런 전격적인 발표가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왜 교
황은 모든 사제에게 한정된 기간 동안에 낙태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위를 부여한다고 선언
했는가? 이것이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해설한 바와 같이 단지 “희년 기간 동안 이러한
권한(주교가 지닌 낙태를 용서할 권한)을 통해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속죄의 기회를 주고
싶은 것”에 불과한 것인가? 개신교도로서 우리는 이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13년 7월 즉위 이후에 동성애자와 이혼자와 낙태 여
성에게 자비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포용적인 입장을 지속적으로 피력해왔다. 이러한 그의 파격
적 행보를 염두에 두면서 이번에 화제가 된 그의 전향적 발언의 실질적 내용에 해당하는 ‘죄
용서’라는 주제를 다음의 두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한다: 죄 용서의 근원, 죄 용서에 있
어서 믿음의 역할.


첫째, 로마 가톨릭의 죄 용서에 대한 교리에는 죄 용서의 ‘근원’에 대한 성경적 인식이 결여되
어 있다. 죄 용서는 성경이 제시하는 구원과 이에서 비롯되는 안식과 관련된다. 죄 용서는 어
디에서 비롯되는가? 이는 하나님의 무한한 선하심에서 출발한다. 존 오웬은 하나님의 무한한
선하심과 은혜를 용서가 자라는 토양에 비유했다. 출 34:6,7은 죄 용서가 하나님의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오래 참으시고 인자가 많으신 그의 본성에서 비롯된다고 증거
한다. 죄 용서는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서 근거를 두고 있으므로 그 시행에 있어서 어떤 제
한도 인간에 의해서 임의적으로 설정될 수 없으며 단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제한될 따름
이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비의 희년이라는 기간 동안에 ‘한시적으로’ 낙태에 대한 용
서가 모든 ‘사제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선포한 것은 사실상 죄 용서를 통해 표현되는 하나님
의 무한한 선하심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교황이 모든 사제에게 죄용서의 권한이 주어진다고
선포한 것은 용서의 권한을 최고 고해 신부에게만 국한시킨다는 패쇄적 이미지를 불식시키려
는 의사를 천명했다는 점에 있어서 어느 정도 긍정적 반응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죄 용서가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선하심에 근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한시적으로’
제한되어야 하고 비록 모든 사제라고 밝혔지만 이 권한이 여전히 사제의 고유의 권한인 것임
에는 사실상 아무런 변화가 없다. 따라서 이는 죄 용서가 오직 주님께 놓여 있다는 성경적 가
르침에 위배되는 주장이다. 또한 로마 가톨릭의 개방성을 알리겠다는 의도와 더불어 죄 용서
의 시행에 있어서 유효기간을 설정하였는데 이는 개방적 태도를 표명하여 대중에게 호소하였
지만 궁극적 차원에서는 로마 가톨릭의 중죄의 하나인 낙태죄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이중적 태
도를 견지한 셈이다. 따라서 이 선언의 문제점은 죄용서의 근원인 하나님의 무한한 선하심을
축소 왜곡한 것이며 이를 통해서 로마 가톨릭의 교리적 폐쇄성이 마치 유연성과 수용성을 지
닌 것으로 인식되도록 의도하였다는 사실을 통해서 입증된다.


둘째, 로마 가톨릭의 죄용서에 대한 교리에는 죄 용서에 있어서 ‘믿음의 역할과 그 중요성’에
대한 성경적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앞서 다루었던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인한 죄용서가
죄인에게 적용되는 것이 사실이라면, ‘타임’지의 분석대로 죄인에게 최대한 더 많은 속죄의 기
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반응은 상식적 차원에서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대목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롬 1:17에서 사도 바울이 밝힌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의’는 복음을
통해서 나타난 의로서 죄인의 불의를 용서하시는 의를 가리키는데 이는 믿음을 떠나서는 논의
될 수 없는 것이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믿음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인간의 죄를 용
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관련된다. 죄 용서는 믿음이 아니고는 우리에게 주어질 수 없는 것
이다. 교황이 특별 선포한 희년의 해에 한시적으로 낙태 여성과 시술자의 죄를 용서한다는 선
언보다 더 우선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죄 용서의 문제 있어서 개인의 믿음의
역할과 그 중요성에 대한 분명한 입장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로마 가톨릭은 죄 용서를 하나님
의 무한한 선하심에 의해 개별적 죄인에게 제공되는 선물로 인정하기 보다는 이를 교회의 권
위에 의해 사제에게 위임될 수 있는 실천적 행위의 한 범주로서 ‘오해’한 것이다. 이 ‘오해’로
인해 죄 용서에 있어서 개인의 믿음의 역할과 그 중요성은 실질적으로 사제나 교회의 권한에
의해 간과되어 버린 셈이다. 죄 용서에 있어서 한 개인이 지녀야 할 믿음의 역할과 중요성은
성경이 증거하는 구원 도리의 핵심 내용에 해당며 종교개혁에서 출발한 개혁주의적 신앙의 토
대로 작용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자비의 희년에 한하여 낙태에 대한 용서를 선언한 프란치스
코 교황의 파격적 행보의 밑바닥에는 믿음의 역할과 그 중요성에 대한 로마 가톨릭의 ‘오해’
가 자리잡고 있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