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곳으로도 가야한다


아프카니스탄에서 인질로 잡혀 있는 젊은 청년들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들은 왜 그곳으로 갔을까? 위험한 곳이라고 자제를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로 가야할 이유가 있었을까? 누가 그리로 가라했는가? 그들이 무엇을 기구(祈求)했기에 기구(崎嶇)한 운명 앞에 서게 되었을까?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불안한 하루를 보내는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우리의 질문은 깊어진다. 장마가 지난 한 여름의 더위가 우리에게는 짜증나게 하는 지리한 시간이지만 언제 닥칠지도 모르는 죽음 앞에 무력하게 묶여있는 우리의 젊은이에게는 순간순간이 긴장일 것이다. 이들을 향해 “누가 사지(死地)에 가라고 시켰느냐?”며 매정하게 돌을 던지며, “여행 자제 경고도 무시한 이들을 자업자득”이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이 보다 더 매몰차게 가슴을 찌르는 이들도 없지 않는 모양이다. “신중치 못했다”는 훈수는 점잖은 충고에 속한다.

  자기 보위만 생각한다면 이런 비난은 정당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보위만이 최선은 아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그리고 나의 희생이 요구되는 곳이라면 기꺼이 그 길을 선택하는 젊은이들이 있어야 우리 사회는 희망이 있다. 설사 상당한 위험이 있어도 도와 달라는 애절한 호소를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다움이다. 따지고 보면 이타주의(利他主義)라는 지난(至難)한 여정의 자기희생이 오늘의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었다는 점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다면 사지로 향하는 신중치 못함도 필요하다. 그 신중치 못함이 자업자득이라면 기꺼이 받아드릴 수밖에 없다. 자기 보위만이 최고의 가치라면 나의 구명(救命)의 외침도 들려지지 않는 삭막한 사회가 될 것이다. 서로 기대고 사는 것이 인간이며 그것이 인(人)의 문자적 연원이라 하지 않던가! 이번에 아프칸에 간 의료봉사단은 자신의 생활비를 아껴 모우고 휴가를 반납하며 인류애를 실현하고자 했던 이들이었다. 거리에 흩어진 전화(戰禍)의 흔적들, 곧 한쪽 팔을 잃는 6살 난 소녀, 두 다리를 잃은 4살짜리 소년의 애절한 눈빛이 젊은이들을 유혹했던 위험한 곳으로의 여행이었다고 한다. 그러했기에 그들은 아프칸으로도 가기를 기구했던 것이다.

  초기 기독교회에서는 ‘파라볼라노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있었다. ‘위험을 무릎 쓰는 자들’ 이라는 의미의 이 희랍어는 위험한 곳으로 가는 신중치 못한 이들에 대한 칭호였다. 로마사회에서 전염병에 걸리면 부모가 자식을 버리던, 자식이 부모를 버리던 문제시되지 않았다. 특히 병든 노예들은 그냥 버려졌다. 아무도 그들을 돌봐 주려하지 않았으나 일단의 기독교 신자들은 상당한 위험이 따랐으나 이들에게 접근하고 음식을 공급해 주며, 치유를 기구했다. 그들은 자기 보위의 벽을 스스로 파괴했다. 그들의 보편적 사랑을 기독교를 비판했던 이교도 셀수스(Celsus)마저도 인정했다. 이들이 파라볼라노이라고 불렸다. 우리 시대에도 이런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