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 돌을 옮겼는가?


나는 ‘부활’이라는 말이 좋다. 한번의 실수로 사경을 헤매던 우리 팀이 제기하게 된 것도 패자 부활전 덕분이었고, 미천한 기생의 몸에서 난 서얼이라는 이유로 멸시 당했던 손곡(蓀谷) 이달(李達)이 천재시인의 반열에 오른 것도 허균의『성수시화』(惺叟詩話)에 의해 부활했기 때문이 아니던가? 겨우 돐 지난 나를 두고 전화(戰禍)에 휩쓸러 떠나시던 아버지도 부활의 날을 기약했다니 나는 부활이라는 말이 좋다.

  내가 부활을 믿게 된 것은 아마 이런 소망에도 연유하는 바가 없지 않을 것이다. 죽은자의 부활이 있을법한 일인가라는 회의는 기독교역사만큼이나 긴 설전의 과정이 있었다. 옥스토드대학 사학과의 토마스 아놀드(Thomas Anold)가 일생동안 씨름한 후 부활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일이나, 영국의 젊은 변호사 프랭크 모리슨이 예수 부활의 허구성을 파헤치겠다며 1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숙고한 결론은 부활에 대한 부정할 수 없는 인정이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의 책,『누가 그 돌을 옮겼는가?』(Who Movd the Stone?)는 부활의 확실성을 말하는 변증서로 서점가를 석권했다.

  이런 저런 논의보다 더 분명한 증거는 제자들의 삶일 것이다. 키케로마저 저주스럽다고 했던 십자가의 죽음을 보고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 절망을 안고 낙향의 길을 갔던 그들이지만 예수의 빈 무덤, 그리고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의 삶은 놀랍게 달라졌다. 그 변화는 불과 3일 후였다. 두려움 많던 그들은 용기 있는 부활의 증인이 되었고,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 순교의 길을 선택했다. 누가 꾸며낸 거짓을 위해 죽음까지 받아드린다는 말인가? 부활에 대한 확신 때문에 초기 신자들은 로마의 공동묘지 카타콤을 ‘잠자는 곳’(a sleeping place)이라고 불렀고, 부활에 대한 증거는 곧 순교였다. 이런 사실 때문에 ‘증인’을 뜻하는 그리스어의 ‘마르투스’라는 말은 ‘증인’인 동시에 ‘순교자’를 칭하는 어의 변화를 가져 온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부활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예수의 부활은 죄와 사망의 정복을 의미했다. 무덤이 인생의 종착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 준 것이다. 그 누구도 넘지 못했던 죽음의 정복은 예수의 부활이 주는 최대의 복음이며 최선의 희망이다. 무엇보다도 예수의 부활은 진리의 영원한 승리를 보증해 준다. 당시 유대 지도자들이 불의한 권력과 결탁하여 예수를 체포하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사망을 확인한 후 당시의 장법에 따라 돌무덤에 인봉했다. 그것도 모자라 약1톤에 달하는 큰 돌로 무덤을 가로막고, 파수병까지 세웠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그러나 예수를 영원토록 감금할 수는 없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므로 그는 죽음에서 일어났다. 말하자면 부활은 온갖 불의에 대한 진리의 승리를 보여준다. 그러기에 불의한 현실에서도 의로운 삶은 우리가 지켜가야 할 소중한 가치인 것이다. 그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 눈앞에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