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애를 어떻게 살 것인가?

                                                                                이환봉 교수(고신대)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한 생애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출생과 죽음 사이의 주어진 한 생애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생애에 있어 우리의 출생과 죽음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의 출생은 온 가족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줍니다. 그리고 우리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슬픔을 안겨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두 순간이 결코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바로 그 두 순간의 사이를 어떻게 살 것인가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출생과 죽음 사이의 주어진 한 생애, 그 한정된 세월과 시간을 어떻게 사느냐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내 생애의 남아있는 그 한정된 시간의 양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내일의 긴 세월의 양을 내세워 게으름 속에 오늘의 시간들을 낭비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얼마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짧은 세월의 양을 탓하면서 방종 속에 오늘의 시간들을 아무렇게나 포기해 버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생애에 있어 항상 중요한 것은 오늘의 시간이며, 우리의 한 생애에 대한 공정한 평가는 우리가 사는 시간의 양에 대해서가 아니라 시간의 질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사실 유한 한 우리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양적 시간을 사는 존재로 부름을 받았다기보다는 질적 시간을 살아야 하는 존재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바로 이러한 두 종류의 시간 즉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로 구분하여 말합니다. “크로노스”는 단순히 흘러가는 자연적 시간으로써 분량에 따라 규정되는 양적 시간을 말하며, “카이로스”는 목적이 이끄는 의식적 시간으로써 내용에 따라 규정되는 질적 시간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시간 사용과 관련하여 에베소서 5장 16절에서 “세월을 아끼라”고 하였을 때에 그 “세월”을 바로 목적이 이끄는 질적 시간 즉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끼라”(엑사고라조)는 말은 “값을 주고 사라”(redeem) 또는 “최상의 것으로 만들라”(make the most)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풀이하여 말하면,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주어진 세월과 시간을 값을 주고 사서 최상의 것으로 만들어 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그처럼 세월을 아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한 생애, 그 시간과 기회를 그처럼 최상의 질적 가치를 가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까?  

  첫째, “자세히 주의하라”(15절)고 합니다.

  한글 성경에 “자세히 주의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아크리보스”라는 단어에서 영어의 “acrobat” 즉 “곡예사”라는 말이 파생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세히 주의하라”는 말은 곡예사가 공중에 높이 달려있는 외줄을 타면서 두 팔을 벌리고 아슬아슬하게 몸의 균형을 조절해 가며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그처럼 자세히 주의하여할 그 이유로 16절에 “때가 악하니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세월을 아끼기 위해서는 먼저 오늘 우리 삶의 균형을 깨뜨리고 혼란 속에 몰아넣으며, 우리를 넘어지게 하고 지배하려는 이 시대의 악한 것들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악한 것들이 때로는 지극히 선한 모습으로, 화려한 모습으로, 너무도 매력적인 모습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게 즐거운 모습으로 다가와서는 마침내 우리의 삶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습니다. 결국은 우리를 무절제 속에 빠뜨립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너무 많이 자고, 너무 많이 놀고,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보고, 너무 많이 말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혜 있는 자들로서 그 모든 것들을 조심스럽게 점검하고 평가하여서 자를 것은 자르고, 버릴 것은 버리고, 거절할 것은 거절하면서 자세히 주의하여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참으로 세월을 아낄 수 있게 됩니다.

 

  둘째,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17절)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시간 사용에 대해 말하면서 “그러므로...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한 것은 세월을 아끼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야한다는 것을 말씀해줍니다. 그러면 여기서 바울이 이해하라고 한 주의 뜻은 무엇입니까? 사실 그가 에베소 교회를 향해 그토록 강조하려고 하였던 주의 뜻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의 뜻을 이해하라고 말하면서 계속 사랑하라고 거듭 당부합니다. 빌립보서 1장에서도 지상에서의 바울 자신의 남은 생애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타인을 위한 사랑의 봉사(21-26절)에서 찾았습니다. 그처럼 사랑으로 섬기는 삶이 바울의 생애와 시간들을 항상 최상의 것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 우리의 모든 세월과 시간을 목적이 이끄는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사랑입니다. 청소년 여러분들이 땀과 눈물의 값을 지불하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그 시간을 최상의 질적 가치를 가진 시간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것도 사랑입니다. 사실 학생들은 하나님의 뜻 곧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그토록 세월을 아껴 힘써 공부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의 한 생애, 그 모든 세월과 시간을 참되고 아름다운 것으로 그리고 영원한 가치를 가진 최상의 것으로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사랑만이 우리의 고통스러운 상처를 치유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으며, 새로운 소망 중에 항상 은혜의 새날을 열어갈 수 있게 합니다. 사랑만이 우리의 죽음을 극복하고, 우리의 생애를 완성하며, 우리의 영원한 승리와 영광을 참으로 보장해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의 사랑의 뜻을 이해하고 따르는 자가 진정 세월을 아낄 수 있는 자입니다.

 

  셋째,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18절)고 합니다.

  주의 사랑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아무리 자세히 주의하여 행할지라도 내 힘만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합니다. 성령의 충만은 성령 하나님의 전적인 지배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날마다, 때마다, 일마다, 항상 내 안에 거하시는 영화로우신 주 성령께서 나를 친히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며 나를 통해 일하시도록 내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성령님께서 내 안에, 내가 성령님 안에 살아가는 그 비밀스러운 능력을 덧입어 참으로 사랑하며 섬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덧입지 않고는 참으로 사랑할 수 없으며, 참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온전히 섬길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그 섬기는 것이 곧 피곤하고 고통스러워지기 때문입니다. 한 생애 동안 우리도 그처럼 주안에서 오직 사랑으로 섬기는 것만으로 항상 기뻐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마침내 그 어느 날에는 이 땅위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한 생애가 마감될 때가 올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은 우리에게 주신 그 세월, 그 은혜의 순간과 기회를 무엇을 위해 사용하였는가를 질문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무엇보다도 우리에게서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닌 카이로스의 시간을 찾으실 것입니다. 때마다 주시는 그 은혜의 시간을 우리의 땀과 눈물로 값을 주고 사서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였는지를 질문하실 것입니다.

  정해진 나의 한 생애 동안 이 사랑 이루기에 너무도 짧아 너무도 소중한 이 시간들을 영원한 질적 가치를 가진 최상의 시간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이 악한 시대에 물들지 않도록 항상 자세히 주의하여 모든 일에 절제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열심히 사랑함으로 배우고 준비하며, 힘써 사랑함으로 자신을 드리며 온전히 섬길 수 있어야합니다. 마지막으로 오직 성령의 충만함으로 항상 능력 가운데 역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