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전통의 서양 결혼 역사

이 글은 2006년 대한기독교서회에서 번역 출판된 존 위티 주니어(John Witte Jr.)의 저서 <성례에서 계약으로: 서양 혼인법의 역사와 신학>(From Sacrament to Contract: Marriage, Religion, and Law in the Western Tradition)에 대한 요약 및 서평에 가깝다. 특히 제3장의 “칼빈교 전통: 언약으로서의 결혼관”에 좀 더 상세하게 다루게 될 것이다.

서양의 기독교 결혼 역사를 신학적 차원에서 서술한 위티의 책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서구 기독교 사회가 결혼을 성례라고 이해하고 수용했던 것으로부터 차츰 그것을 계약으로 간주하는 역사적 변천 과정을 겪었다고 평가한다.

위티에 따르면 “서양 기독교회는 초기 사도시대로부터 결혼에 대한 네 가지 관점들을 제공”하는데, 그 네 가지란 “종교적 관점”(religious perspective), “사회적 관점”(social perspective), “계약적 관점”(contractual perspective), “자연적 관점”(naturalist perspective)을 말한다.

결혼이란 종교적 관점에서는 교회 공동체의 영적 혹은 성례적 연합으로, 사회적 관점에서는 지역 공동체의 사회적 지위로, 계약적 관점에서는 결혼 당사자 상호 간의 자발적 연합으로, 자연적 관점에서는 이성과 양심과 성경에 따른 자연 발생적 제도로 간주된다.

또한 위티는 신학적 관점에서 서양의 결혼 역사를 크게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데, 즉 로마가톨릭의 성례적 모델(sacramental model), 루터교의 사회적 모델(social model), 칼빈주의의 언약적 모델(covenantal model), 성공회의 연방제적 모델(commonwealth model), 계몽주의의 계약적 모델(contractarian model) 등이 그것이다.

로마가톨릭의 유형은 12세기 중반부터 13세기 중반에, 개신교의 세 가지 유형은 16세기부터 17세기 초에, 계몽주의 유형은 19세기 중반과 그 후에 각각 형성된 것으로 본다. 위티의 책은 이 다섯 가지 결혼 유형을 한 장씩 다루어 모두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로마가톨릭교회의 결혼은 에베소서 5장 32절 “이 비밀이 크도다!”라는 말씀의 “비밀”을 근거로 성례가 되었다. 왜냐하면 “비밀”이라는 단어가 라틴어성경 “불가타역본”에서 사크라멘툼(sacramentum)으로 번역되었는데, 이 단어가 바로 “비밀”이나 “신비” 뿐만 아니라, “성례”를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로마가톨릭의 결혼 유형인 성례적 모델은 결혼과 가정을 삼중적인 방식, 즉 자연적, 계약적, 성례적인 방식으로 다룬다. 자연적 방식이란 결혼과 가정을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성경말씀에 따른 자연적 연합으로 이해하고, 타락한 후에는 성욕에 대한 구제책으로도 이해하는 것이다. 계약적 방식이란 결혼을 결혼 당사자 상호간의 계약적 합일체로 보는 것이다. 성례전적 방식이란 결혼을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영원한 연합을 상징하는 것으로써 성례로 격상시킨 것이다.

먼저, 로마가톨릭의 성례 모델에 따르면 “결혼은 성례인 동시에 건전한 기독교인의 삶의 한 방식”이고 영적인 공로를 제공하는 은혜의 수단이라기보다는 성욕에 대한 “구제책”을 의미하는 것이다. 가톨릭교회에서 결혼생활을 통한 자녀 생산은 독신생활을 통한 명상의 삶보다 영적으로 수준 낮은 것이다. 그리고 결혼은 성례이기 때문에 시민법이 아닌 교회법에 종속된 제도로 간주된다. 이러한 로마가톨릭의 결혼 모델은 1563년 트렌트공회를 통해 공식화되고 체계화된 것이다.

둘째로, 루터교 전통에 따른 사회적 결혼 모델은 결혼생활이 영적으로 독신생활보다 하등한 것이라고 보는 수도원 중심의 중세 신학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모델은 로마가톨릭의 성례적 모델과 달리 결혼을 구원의 성격을 지닌 천국의 성스러운 것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지상왕국에 속한 세상의 사회적 제도로 간주한다. 따라서 결혼이란 물론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지만 “주로 인간의 목적들, 즉 개인과 사회의 삶”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므로 “모든 자격을 갖춘 남자와 여자”라면 “성직자와 일반 신자의 구별 없이 자유롭게” 결혼에 참여할 수 있다.

루터교의 사회적 모델에 따르면 결혼은 지상왕국의 일부이기 때문에 세상 국가나 정부에 속한 것이지 교회에 속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결혼을 규정하고 결혼생활을 규제하는 것은 교회법(canon law)이 아니라 시민법(civil law)이어야 한다. 즉 결혼이 하나님의 법에 속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법을 실제로 제정하고 집행하는 하나님의 지상 대리자는 교회의 직분자가 아닌, 세상의 통치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문이나 훈계 외에 “교회는 더 이상 결혼에 대한 법적 권한이 없다.”

셋째로, 제네바에서 탄생한 칼빈주의 전통의 언약적 결혼 모델은 루터교의 사회적 모델과 같이 독신생활을 결혼생활보다 더 거룩한 것으로 존중하지도 않고 장려하지도 않는다. 칼빈주의 전통에 따르면 결혼이란 창조 질서에 따라 하나님의 법으로 다스려지는 일종의 언약이다. 따라서 결혼은 성례적 제도가 아니라 언약적 연합이다.

결혼 언약을 규정하는 법은 두 종류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신앙과 무관한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세상적인 사회법이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 신자들에게만 적용되는 영적인 교회법이다. 사회법은 세상법정이, 교회법은 교회치리회가 주관하는 것이다.

언약적 모델에 따르면 결혼이 성례는 아니지만 에베소서의 가르침대로 여전히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강력한 유대를 상징하는 거룩한 연합과 교제이다. 언약적 결혼 모델은 두 왕국 이론에 근거한 루터교의 사회적 모델이 제시하는 결혼생활에서 소홀히 취급되는 결혼의 영적 의미를 간과하지 않음으로써 “두 왕국을 다스리는 교회와 국가에 상호 보완적인 결혼의 역할을 부여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언약적 결혼 모델에 의해 개신교 혼인법에 다양한 개선과 변화가 발생했다. “예를 들어, 결혼의 형성과 유지, 파기에 관한 법들은 오직 당사자들만이 결혼언약에 참여하게 했고, 가정을 바르게 돌보게 하며, 오직 무고한 배우자만이 결혼을 파기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교회치리회와 정부 및 교회공동체는 “모두 이 결혼언약의 올바른 기능에 책임”을 졌고, 또한 “결혼을 위한 하나님의 도덕법을 올바로 집행”하는 일에도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했다.

넷째로, 개신교의 마지막 유형인 영국 국교회 전통의 연방공화국적 모델에 따르면 “결혼은 하나님의 은총의 시스템인 동시에, 지상왕국의 사회적 단위, 그리고 배우자와의 준엄한 언약”이다. 하지만 “가정의 근본적인 원인, 조건, 요구가 되는 것은 가정이 부부와 자녀들, 교회와 국가의 공통된 선, 혹은 행복을 받들고 상징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결혼은 하나님이 정하신 ‘하나의 조그만 공화국’으로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간 서로의 사랑과 봉사, 안전을 육성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연방공화국적 모델이다.

마지막으로, 계몽주의의 계약적 결혼 모델에 따르면 “결혼의 본질은” 성례나 언약적 연합도, 공동체와 공화국에 대한 봉사도 아니며 다만 “친밀한 연합을 원하는 두 사람이 이루어 낸 임의적인 흥정”이다. “이 결혼 흥정의 내용은 하나님이나, 자연, 교회나 국가, 전통이나 공동체에 의해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 결혼하는 당사자들에 의해 시민사회의 계약 형성의 법칙들과 일반 규범에 맞게 정해진다는 것이다.”

계약적 모델은 결혼에 있어서 교회의 축복과 같은 모든 종교적 요소를 배제할 뿐만 아니라, 부모의 동의와 결혼의 증인들 같은 모든 사회적 제약들도 철폐하고 오직 결혼 당사자들만의 상호 의지 문제로 국한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결혼이란 순수하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제정된 사회-국가적 혼인법에 따라 완전히 평등한 권리를 가진 두 성인이 상호간의 계약에 의해 성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약 개념이 오늘날 결혼의 보편적 인식이다.

*이 글은 인터넷신문 "개혁정론"에 실린 필자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