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 신학이란 무엇인가?

작성자: 황대우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로 분류되는 ‘고신’(혹은 고려파)은 그 역사가 60년이 넘었다. 목사를 양성하는 신학대학원과 기독교 인재를 양성하는 고신대학교를 교육기관으로 가지고 있다. 또한 고신대는 신학과를 중심으로 <고신신학>이라는 저널을 출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신신학이 무엇인지 교단적인 차원에서 공인된 내용은 구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 고신신학이나 정신이라고 하면 알 만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개혁주의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꼽는다. 하지만 이 용어에 나타난 “개혁주의 신앙의 정통”이 언제 교단 차원에서 공적으로 정의된 적이 있는가? 아직까지 그런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도 총회의 신학위원회는 신대원 교수들의 사상을 점검해야 한다며 목청을 높였고, 근자에는 신임교수 한 명이 신학적 자유주의를 넘어 ‘신학적 이단’으로 공격을 받자 결국 자진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공적으로 고신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 실체가 없는데 고신신학과 정신에 위배된다고 판단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고 합당한가?

과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교리문답이 고신신학의 내용인가? 물론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가 고신의 ‘신조’로 수용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오늘날 고신의 신학과 목회의 표준 역할을 하고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고신의 목회자들 가운데 몇 퍼센트나 그 내용을 알까? 안다고 한들 그것이 목회 현장에서 최소한의 관심거리라도 될까? 고신의 신학자들과 목회자 대부분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실정에도 불구하고 교단 내에서 정치적 분쟁이나 신학적 소요가 발생하면 그것은 표준문서로서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곤 한다. 고신신학과 고신헌법이라는 ‘고매’한 이름으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엄밀하고 공정한 잣대로 삼아 고신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을 정죄하고 자른다면 남아 있을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어떤 사안에 대한 판단기준의 엄밀성과 공정성을 과연 기대할 수나 있는 현실인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공공연한 현실임을 부인하기 어려운 것처럼 고신교단의 정치적 패악이 오늘날 극에 달하여 ‘유권무죄 무권유죄’의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자는 이런 현상이 다른 교단보다는 조금 덜한 것이 다행이란다. 하지만 그 차이란 오십보백보가 아닐까 싶다. 힘없는 사람은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유죄’가 되고 힘 있는 사람은 나쁜 행동을 해도 ‘무죄’가 되는 것이 지금 우리 고신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건전한 신학은 부재하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정치만 존재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최대의 불행이요, 하나님의 저주이리라. 지금 우리 고신의 영적 현주소가 이러한 불행과 저주와는 무관하다고 누가 호언장담할 수 있겠는가?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개혁주의 신학을 받았다.”(이근삼 전집 2, 402) 이것는 평양신학교에 대한 신학적 평가다. 고신뿐만 아니라 다른 장로교단들도 역시 같은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개혁주의”는 구프린스톤 신학을 의미하는데 이 신학의 맥을 고신에 전수한 것은 고신 초기에 잠시 머물다 간 프린스톤 출신의 박형용 박사가 아니라 미국 웨스트민스터와 네덜란드 자유대학에서 공부한 박윤선 목사다. 박윤선 목사의 신학은 흔히 “개혁주의 신학”, 혹은 “칼빈주의 신학”이라 불린다. 그렇다면 고신은 박윤선 목사의 신학을 공적인 고신신학으로 간주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반응은 찬성과 반대로 양분될 것 같다.

“고신의 신학과 신앙노선”이라는 글에서 변종길 교수는 고신신학을 개혁주의 신학 노선의 것으로 규정하고 그 구체적인 내용을 주제별로 다루는데, 박윤선 목사가 그 신학의 초석을 놓았으며 이근삼, 오병세, 홍반식 세 박사와 허순길 박사가 그 신학을 유지하고 발전시켰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고신에서 “개혁주의 신학의 구체적 내용”이 “박윤선 박사 이후에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오늘날 고신신학은 내용상 박윤선 목사의 신학과 별다를 바 없다고 결론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먼저 ‘고신에서 쫓겨난 박윤선 목사의 신학을 고신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부터 풀지 않고서는 “박윤선 신학 = 고신신학”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 없다.

유해무 교수는 자신의 논문 “고신신학과 신학교”에서 고신신학을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고려신학교와 초기 고신교회가 공식적으로 표방한 신학적 입장은 “칼빈주의 또는 개혁신학”인데, 이것은 박윤선 목사의 신학이기도 하다. 이와는 구별되게 고려신학교의 설립자들이 지닌 신학은 현장의 신학이었고, 그것은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신학적 입장이라고 볼 수 있는 “성경중심적 보수주의”이다. 이 두 입장이 고신교회의 신학과 정체성의 뿌리라 할 수 있다. 그 이후 고신교회 안에서 이 두 입장을 계승하면서 발전시킨 신학적 입장이 있으니, 그것을 “문화적 개혁신학”이라 부를 수 있으며, 이근삼 교수가 대표적 인물이다.

이 글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고신신학은 크게 세 종류로 분류되는데, 그것은 초기 두 종류의 칼빈주의 또는 개혁신학과 성경 중심적 보수주의, 그리고 후기의 문화적 개혁신학이다. 하지만 후기의 문화적 개혁신학이란 초기 박윤선의 칼빈주의적 개혁신학을 이근삼 박사가 계승한 것이라는 점에서 고신신학은 크게 두 종류, 즉 성경중심적 보수주의와 칼빈주의적 개혁신학으로 대별 된다.

그런데 유해무 교수의 평가에 따르면 “고신교회는 성경중심적 보수주의 영성과 칼빈주의적인 문화적 개혁신학을 아직도 융화시키지 못했다.” 그는 이런 융화가 왜 일어나지 않았는지 묻지 않으며, 누가 이 일에 책임이 있는지도 논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고신교회 안에 칼빈주의적 개혁신학에 입각한 건강한 목회가 정착하여 교인을 양육하여 성숙하게 하며, 교회 안팎에서 순결한 삶으로 회개와 개혁에 착념하는 교인들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킬 때, 고신교회는 역사적인 개혁신학의 흐름에 편승할 뿐만 아니라 이런 목회와 삶을 반성하면 진정한 고신교회의 개혁신학이 출현할 것이다. 회개와 개혁은 프로그램이 아니다. 순박한 ‘성경주의’를 따라 기도하면서 순결한 삶을 살아갈 때 회개와 개혁은 수반될 것이요 고신교회는 참된 개혁교회로 거듭날 것이다. 이런 개혁교회가 없는 한, 회개로 이루어지는 순결한 생활도 기대할 수 없고, 개혁주의는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좋은 말이요, 감동적인 말임에도 불구하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그런가? 이 글을 요약하면 “진정한 고신교회의 개혁신학”은 성경에 절대 복종하는 순결한 삶의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것이다. 기독교 신학을 기독교적인 삶과 분리해서 생각하기는 어렵다. 이것이 개혁신학의 기본 입장이다. 하지만 성경에 따라 건전한 삶을 산다고 해서 저절로 건전한 신학이 형성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고신교회가 “참된 개혁교회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역사적 개혁신학의 내용을 알고 가르쳐야 할뿐만 아니라, 동시에 성경에 따른 순결한 삶도 실천하며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작금의 고신교회는 개혁신학을 알지도 못하고, 순결한 삶을 살지도 못한다.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고신교회의 문제는 개혁신학을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순결한 삶을 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고신교회의 유일한 열정은 양적 성장에만 있다. 그래서 꿩 잡는 매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부흥시킬 수 있는 능력의 종만 찾고 있다.

양적 성장 자체가 문제이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삶의 목적과 목표가 머리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교회의 양적 성장이 될 때 영적 질서가 허물어지고 성경의 건전한 가르침이 희생 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종교개혁은 영적 질서의 회복운동이다. 왜냐하면 로마교가 인간의 권위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위에 올려놓은 것을 뒤집어 다시 말씀 아래로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또한 선행을 앞세워 믿음과 은혜를 견인한다는 인간의 공로사상을 배격하고, 공로란 오직 그리스도께만 속한 것이요, 인간의 선행은 단지 구원의 선물인 믿음과 은혜를 뒤따르는 결과일 뿐이라는 이신칭의 교리를 성경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원리, “오직 믿음으로만”(sola fide) 혹은 “오직 은혜로만(sola gratia)의 원리라고 부른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성경 중심주의는 개신교를 여러 갈래로 분열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개신교 신학의 다양성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렇게 다양한 개신교 신학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개혁주의 신학이다. 역사적으로 개혁주의 신학은 개신교 신학 가운데 특별히 루터파 신학과 재세례파 신학에 대립적이다. 또한 개혁주의 신학 내에서도 다양한 견해들이 존재하면 그것들은 종종 심각하게 상반되고 상충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성경 중심주의 내지는 성경주의라는 용어만으로는 결코 개혁신학을 규정할 수 없다. 즉 성경 중심주의 내지는 성경주의가 개혁신학이라고 서술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이 ‘어떤’ 성경 중심주의 내지는 ‘어떤’ 성경주의인지 설명되어야 한다. 바로 그 ‘어떤’에 해당하는 것이 역사적 개혁신학의 가르침이다. 개혁신학은 종교개혁 이후의 역사적 산물이다. 물론 원천적으로야 성경의 산물이겠지만 성경만으로 역사적 개혁신학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과 더불어 역사를 배워야 한다. 순결한 삶은 전적으로 실천의 문제이지만 개혁신학은 우선 앎의 문제이다. 개혁신학이 무엇인지 배우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성경과 일치하는 신학이 곧 개혁신학’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고, ‘개혁신학보다 우선하는 성경’이라는 이들도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앎에 우선하는 삶’을 강조하기도 한다. 모두 일리 있는 주장들이다. 하지만 이런 일갈로 다른 주장의 목소리 자체를 음소거해 버리려고 한다면 그것은 무지의 절벽에서 동반자살을 시도하는 꼴과 다름없다.

신앙과 지식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엡 4:13)은 동전의 양면과 같기 때문이다. 성경은 무지의 신앙을 가르치지 않는다. 물론 먼저 배워서 알기만 하면 믿음이 절로 뒤따른다고 가르치지도 않는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은 분명 상보적이다. 그리고 이런 상보적 원리는 개혁주의 신학의 대표주자들인 16세기의 칼빈(Calvin)과 17세기의 푸티우스(Voetius)에게서도 배울 수 있다. 둘 모두 ‘경건과 학문’ 사이의 긴밀한 불가분의 관계를 역설했다.

이런 점에서 고려신학교의 설립 취지에서 발견되는 고신정신인 개혁주의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이라는 두 원리는 참으로 고귀한 유산이다. 이미 이 고신을 설립한 신앙의 선배들은 생활의 순결이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주었다. 즉 그들은 몸소 순결한 삶을 살았다. 이런 삶을 계승하지 못한 것은 고신의 크나큰 영적 손실이다.

고신의 대선배들은 순결한 삶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었지만 개혁주의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개혁주의가 무엇인지 배우고 알고 가르치는 과제는 후배들의 몫이 되었다. 하지만 고신교회와 신학교는 60년 역사가 흐르는 동안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개인적인 순결한 삶의 문제와 영욕에 뒤얽힌 교회정치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느라 지금까지 그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아직 고신신학이라고 할 만한 구체적인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고신교단, 특히 고려신학대학원과 고신대학교에 몸담고 있는 여러 신학자들의 다양한 신학이 혼재할 뿐이다. 대표적인 예로 종말론을 들 수 있는데, 고신 안에서는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이 혼재한다. 죽어보지도 않았는데 ‘종말론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 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이 종말론에 따라 성경에 대한 해석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최근 고신대 모 신임교수의 신학에 제기된 신학적 이단 시비도 결정적으로 바로 이 종말론의 문제였음을 알아야 한다.

총회에서 성경(표준)주석을 발간하기로 결의하고 추진하는 일이 ‘무익한 교회정치’를 ‘유익한 교회정치’로 만들어가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한 가지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이런 주석 발간과 더불어, 아니 오히려 그 일에 앞서서 이루어져야 할 고신신학의 정립이라는 중차대한 문제가 간과 되었다는 사실이다. 2017년이면 종교개혁 발생 500주년이 된다.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기 전에 고신신학이 먼저 정립되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정립을 시도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이 글은 2013년에 "코람데오닷컴"에 실린 "고신에는 신학이 있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