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이라는 굴레


이념(理念)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 말하면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관념,” 혹은 “모든 경험을 통제하는 최고의 정신적, 절대적 실재”이다. 그렇다면 이념은 개인이나 사회집단의 행동양식을 결정하는 최고의 혹은 절대적 가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이데올로기’라고 불리는 이념이 우리에게 만큼 치열하고 처절했던 나라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 놈의 이념이란 문제 때문에 우리가 목도한 참학과 학살이 어떻했던가? 해방 정국에서 제기된 좌우대립과 6. 25 동란, 그리고 그 이후 오늘까지 이념이 뿌린 선혈(鮮血)과 폭력은 우리의 암울한 역사였다. 그것이 공산주의의 탈을 쓰고 있건 사회주의로 포장되었건 이념은 종교적 확신, 그 이상이었다. 멀쩡한 자식들의 머리를 뒤흔들어 같은 핏줄을 원수지간으로 만들었고, 가족의 연대성을 무너뜨리고 인륜(人倫)의 천도(天道)마저 파괴했다. 그것이 동토의 아픈 역사였다.

  이념이란 이름으로 나눠진 채 모질게 압살했던 그 독단의 역사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경시하는 배리(背理)였다. ‘절대적’이란 이념에는 차선의 공간이 없다. 그것을 위해서는 폭력이 정당화되고 광신성은 덕목에 속한다. 이런 점에서 니체가 “모든 절대적인 것은 병적이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 실체가 우리가 경험했던 좌,우익의 대립이었다. 이념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편견과 아집, 독선과 독제, 분열과 대립, 파괴와 살상, 특히 반인윤적 인권경시는 세월의 격리감에도 불구하고 지을 수 없는 아픔으로 남아 있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처음 한 말은 “국민은 이념을 버리고 실용을 선택했다”는 말이라고 한다. 선거결과를 좌파적 이념에 식상한 국민의 탈 이념적 선택으로 해석한 것이다.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보는 이의 시각도 이와 동일하다. 어떤 이는 이념이 없으면 허수아비다 라고 말한다지만, 그 ‘이념’이 어떤 이념인가에 대해 만심할 수 없을 것이다.

  설 다음 날인 지난 8일 아침 북한 주민 22명이 무동력선을 타고 서해 연평도 부근으로 넘어 왔다가 ‘자신들의 의사에 따라’ 당일 북으로 돌려보내졌다고 한다. 정부 당국은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은 북으로 귀환한 직후 전원 비공개 처형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22명 중에는 여성과 아린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러 측면에서 여러 측면에서 귀순일 가능성을 말하기도 한다. 사실 관계는 언젠가 분명히 밝혀질 것이다. ‘자신의 의사에 따랐다’는 점을 진실로 받아드릴 경우, 도대체 이념이란 것이 무엇이기에 반나절의 남조선 구경도 마다하고 총총히 북으로 돌아갔단 말인가? 그렇지 않았다면 죽음의 문턱을 오가며 결행한 가족들을 다시 사지로 내 몬단 말인가? 이렇든 저렇든 이념이란 이름의 굴레가 우리의 아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