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성애를 반대한다! 하지만...

 

황대우 교수

(고신대 개혁주의 학술원)

 

 

최근 동성애를 언급한 어느 교회 부목사의 설교가 시험대에 올라 화제다. 이미 정치화 된 민감한 주제를 용감하게 다루다가 빚어진 뜻밖의 참사였다. 왜냐하면 설교자의 의도는 완전히 사라지고 ‘동성애 반대자들에 대한 비난’하는 내용으로 호도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유명한 유튜버 강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보수주의자일 수밖에 없다’는 논지로 그 부목사의 설교 내용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이것은 오늘날 대중매체와 SNS가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인 동시에, 씁쓸하게도 그것이 얼마나 엉뚱한 곳으로 불똥을 옮기고 때론 의도와 내용을 왜곡하는지도 실감케 하는 사건이었다. 아직도 그와 관련한 갑론을박은 계속되고 있다. 물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전통적 보수 신앙인이라면 동성애를 기본적으로 반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문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해서 ‘고민 없이 덮어 놓고’ 반대할 수 있다거나 반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즉 동성애 문제를 과연 성경은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기독교 전통은 무엇을 근거로 왜 반대 입장을 정립하게 되었는지 성경적이고도 역사적인 검토가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지금 대한민국은 기독교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입장이 정확히 무엇인지, 왜 그런 입장인지 최소한 세상 사람들에게 납득이 가도록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수용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것은 그 다음 단계의 문제다. 기독교는 항상 행동 보다는 가르침이 우선이다. 그래서 근거 없는 행동, 이유 없는 행동은 결과가 선해도 선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을 선하신 분으로 믿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하나님은 단순히 그냥 ‘유일신’이 아니시다.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배우지 않고는 그분을 알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알지 못하는 유일신을 믿거나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을 창조주와 구속주로 계시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이다. 그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분이 누구신지 모르거나 그분과 교제하지 않는 신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성경을 통해 배울 수 있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가르쳐 준다. 하지만 성경은 모든 삶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세세한 규정들을 제시한 윤리 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에 항상 삶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한다. 동성애의 다양한 형태들에 대한 어떤 진지한 일말의 고민도 없이 ‘무조건 반대’는 옳다 해도 결코 지혜로운 대처로 보이지는 않는다.

   목사와 신학자로서 나는 기본적으로 동성애를 반대한다. 하지만 덮어 놓고 무조건 반대, 절대 반대, 과격한 반대를 반대한다. 지금 한국교회는 수많은 비리와 부패의 온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비상식적이다. 비상식은 이제 더 이상 ‘믿음’과 ‘은혜’라는 단어로 변명하거나 은폐(?)하기에는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 비정상이다. 이것은 결코 신앙이 상식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신앙은 정상이어야 한다.

   신앙이 정상이려면 이성과 논리와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 인간이 감정의 동물인지라 감정은 절로 따라오기 때문에 여기서 굳이 감정을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기독교 신앙은 이성의 합리적 논리로 이해하기란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이성과 논리와 이해 자체를 도외시하지는 않는다. 기독교 신앙은 이해력을 존중한다. 성경은 오감을 가진 인간의 수준에 맞추어진 신적 계시의 말씀이다.

   이성과 논리로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과 인간과 세상에 관한 계시의 말씀을 이성적인 인간에게 주셨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과 인간과 세상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제대로 설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몫이다. 복음이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라고 해서 인간적인 지혜와 총명을 몽땅 폐기처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이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지도 않는다.

   성령 하나님께서도 그리스도의 사역을 제자들에게 기억나게 하심으로 그들을 가르치시고 인도하셨으며 지금도 우리를 동일한 방식으로 가르치시고 인도하신다. 성경과 기독교 교리는 믿음으로 받지만 이해도 요구한다. 성경은 세상의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백과사전이 아니다. 생명과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는 계시의 책이다.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신앙적인 고민을 해야만 한다.

   가능하다면 성경의 원리로 이해한 세상의 일들을 세상 사람들에게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성경이 그 일들에 대해 무엇이라 가르치는지 살피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성경은 과연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동성애 문제와 관련된 성경 구절들을 기독교 교리의 원리에 비추어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 연구와 토론이 필요하다. 문제에 대한 이성적 합리적 접근은 비신앙적인가?

   그리스도인은 왜 동성애를 반대할 수밖에 없고 반대해야 하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동성애는 자연의 순리를 역리로 바꾸는 것이므로 정상적인 사랑이라 보기 어렵지 않을까? 모든 자발적 사랑이 유효하다면 부모와 자녀, 형제와 자매 사이에도 성적 사랑이 허용되어야 하는 것일까? 동성애가 합법이어야 한다면 왜 근친상간은 불법이어야 하는가? 동성애와 근친상간은 완전히 다른 문제인가? 다른 문제라면 얼마나 어떻게 다른가?

   성경은 결코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 왜 지지하지 않고 정죄하는가? 이 문제를 기독교 신앙으로 풀어내고 세상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은 지상교회가 감당해야할 몫이다. 기독교 신앙은 광신이 아니다. 이해하기 위해 믿는 것, 이것이 정통 기독교의 신앙이다. 불완전하지만 믿음으로 하나님과 인간과 세상을 좀 더 바르게 이해하려는 것, 이것이 기독교다. 왜 지금 한국교회는 유독 ‘동성애’ 문제에만 목을 매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 다른 문제는 없어서?

   지금 기독교가 나서서 세상에 외쳐야 할 문제가 과연 ‘동성애’뿐일까? 왜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걸까? 왜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교회 자체의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할까?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교회, 불법과 탈법을 자행하는 교회에 대해서는, 교회 세습 문제에 대해서는 왜 목에 핏대를 올리지 않는 걸까? 자성할 줄 모르고 스스로 개혁할 수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개신교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위 글은 인터넷신문 "개혁정론"의 기고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