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적 칼빈 연구, 그 자체가 감동
[특별기고 / ‘제10회 아시아 칼빈학회’를 참석하고 나서]
2007년 08월 28일 (화) 10:39:41 글=안인섭 교수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역사신학·한국칼빈학회 총무

아시아 교회 정체성 확인한 중요한 학술대회…88명 참석, 8개 논문 발표

타이완·인도네시아 등 참여 확대 기대…2009년 대회는 한국서 개최

   
  ▲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칼빈학회에서 빔 얀서 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2년마다 아시아의 주요 국가들이 돌아가면서 개최하는 아시아 칼빈학회는 아시아 최고의 칼빈 연구를 대변하는 국제적인 학술 대회이다. 필자는 이번에 2007년 8월 21일부터 23일까지, 일본 도쿄 요요기 국립 올림픽기념 청소년 센터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 칼빈학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 이번 대회는 한국에서 25명, 일본에서 59명(한국에서 파송한 일본인 선교사 2명을 포함하여), 그리고 타이완에서 3명이 참가했고, 주강사로 초청된 네덜란드의 1명까지 합하면 대략 88명이 참석한 것으로 최종 집계되었다.

필자는 지난 2005년 1월 24일부터 26일까지 타이완에서 열린 제9회 아시아 칼빈학회에도 참석한 바가 있다. 그때는 타이완 선교 140주년을 축하하면서 약73명의 아시아 회원들이 참석했던 기억이 나는데, 거기에 비하면 이번 제10회 아시아 칼빈학회는 참가자가 15명 늘었고, 발표 논문에 있어서도 한 단계 성장한 학회라고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타이완에서의 참가가 저조한 것은 중국과 타이완의 외교적인 긴장감이 고조되어 있는데다가, 타이완 내부에서 독립과 정치적인 문제와 관련된 국가의 탄압과 혼란이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석한 타이완 대표의 요청으로 타이완의 자유를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번 학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8개의 논문이 발표됐다. △빔 얀서(Wim Janse, 네달란드 자유대학/레이든 대학), 칼빈의 성찬 교리(Calvin's Doctrine of the Holy Supper) △안인섭 (총신대학교), 칼빈의 하나님 나라 사상(Calvin's Thoughts on Civitas Dei) △황대우 (고신대학교), 칼빈의 이중 교회론은 플라톤적 이원론에 근거했는가?(Was Calvin's twofold ecclesiology rooted in the platonic dualism?) △박경수(장로회신학대학), 칼빈의 주의 만찬 교리에 나타난 교회 연합적 노력(Calvin's Ecumenical Efforts in His Doctrine of the Lord's Supper) △배경식(한일장신대), 칼빈의 예정론과 윤리적 경영(The Predestination of J. Calvin and Ethical Management) △유태주(한일장신대), 칼빈과 웨슬리의 산 믿음의 신학(Theology of the Living Faith of John Calvin and John Wesley) △타카시 요시다 (Takashi Yoshida), 칼빈의 영혼불면론에 나타난 행복에 대한 비전: 서론적 고찰(Calvin on the Beatific Vision in Psychopannychia: An Introduction) △미마코 사이토(Mimako Saito), 천상의 존재가 아닌 개인적 존재(Not Heavenly Presence, But Personal Presence).

주목할 만한 것은 서양 학자로서는 유일하게 주 강사로 초청된 빔 얀서 교수이다. 네덜란드의 자유대학교와 레이든대학교의 교수로 있는 그는, 작년 세계칼빈대회에 이어서 참가자들에게 큰 통찰력을 주었으며, 모든 발표된 논문들에 대해서 매우 유익한 조언들을 제공해 주었다.

왜 아시아인들이 칼빈을 연구하는가?

그러면 왜 이처럼 열정적으로 칼빈을 연구하는가? 개혁주의자들은 가톨릭주의자들과는 달리 칼빈을 한명의 성인(Saint)으로 숭배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신학이 깊이 있게 연구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칼빈은 한편으로는 영적으로 암울하고 또 다른 편으로는 앞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역동적이었던 16세기 맥락 속에서, 성경을 가장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바로 그 성경 위에 신학적 체계를 세운 사람이었다. 그의 신학은 경건한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이며, 그들은 또한 어떻게 해야 건강한 사회의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성경적으로 명확하게 제시해 주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세상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매우 유익한 것이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칼빈은 우리와 똑같은 연약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면서 주님의 길을 따라갔던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의 신학과 삶의 교훈들은 여전히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칼빈은 1509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며, 1564년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주로 활동했던 지역은 스위스의 제네바이다. 그리고 그의 영향력은 프랑스의 위그노와 스위스의 개혁주의자들, 독일의 개신교인들, 네덜란드의 칼빈주의자들, 잉글랜드의 청교도들, 스코틀랜드의 장로교인들, 헝가리와 폴란드의 종교개혁자들, 이탈리아 북부의 신앙 공동체 등 전 유럽에 걸쳐있다. 그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가장 국제적인 종교개혁자였다.

이처럼 서양을 이해하는 창문으로도 지칭되는 칼빈을 아시아에서 이처럼 정열적으로 연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답은 아시아의 선교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아시아의 개신교는 로마가톨릭에서 분리된 교회 운동이 아니라, 서양의 선교사들에 의해서 기독교 그 자체로서 전래되었다. 즉 서양의 장로교회 또는 개혁교회 선교사들에서 의해서 아시아의 개신교가 세워졌기 때문에 칼빈의 신학은 교회의 한 분파라기보다는 기독교의 복음으로 이해되어 왔던 것이다.

일본의 경우 1859년에 나가사키와 카나가와에 칼빈주의를 믿고 따르는 네덜란드개혁교회 출신의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서 복음을 전해 받았다. 따라서 일본은 비록 숫자적으로 매우 미약하지만, 칼빈 연구에 있어서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1885년에 언더우드(H. Underwood)에 의해서 공식적인 선교가 시작되었는데, 영국 태생의 미국인인 그는 본래 네덜란드개혁교회 출신으로서 미국 북장로교회 파송을 받은 선교사다. 또한 최초로 세워진(1907년) 한국 독교회는 칼빈주의를 철저하게 따르는 12신조를 채택했으며, 이런 칼빈주의적인 신앙이 한국 교회의 모태가 된 것이다. 따라서 아시아에서 칼빈은 연구하는 것은 결국 아시아의 기독교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형성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열정과 감동의 대회

이번 아시아 칼빈학회는 여러 가지 점에서 인상 깊고 귀감이 될 학술대회였다.

무엇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열정적인 칼빈 연구의 분위기다. 이번 제10회 아시아 칼빈학회의 오프닝에서 대회준비위원장인 신 노무라 교수는 연설 도중 애써 눈물을 삼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감정 조절이 뛰어난 일본인으로서는 예외적인 측면이었다. 세속주의와 신도주의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본이라는 상황 속에서 극소수의 무리들로 살아가면서도 열정적으로 개혁신학과 칼빈을 연구하는 그들의 깊은 속내를 읽을 수 있어서 함께 가슴이 뭉클해 졌다. 특히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받는 불이익과 고난 속에서도 칼빈의 작품을 번역하고 칼빈 신학과 관련된 책을 고집스럽게 출판하는 그들의 칼빈 연구는, 개혁주의 신학자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에 대해서 좋은 가르침을 주었다. 일본학자들은 비록 숫자는 적지만, 그 학문적인 질과 열정에 있어서는 최고의 점수를 줄 수 있는 분들이다.

특히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아흔을 넘긴 노구의 와따나베 노부오 교수 내외였다. 학회 시작부터 끝까지 맨 앞자리를 지키면서 논문 발표를 들으셨는데, 사모님이 식당에서 넘어지셨는데도 머리에 붕대를 한 채로 끝까지 참석하여 경청함으로 진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특히 필자가 칼빈의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발표했을 때, 일어나서 일본의 과거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자신은 일본의 정부에 항상 대항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고백하는 모습에서는 대나무 같은 칼빈의 정기를 느낄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이번 학회를 보고 언급하고 싶은 것은 참석하는 학자들의 전공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양 교회사와 조직신학 뿐 아니라, 한국 교회사, 신약학, 구약학, 설교학, 교육학, 경제학, 윤리학 등 다양한 전공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이 참석하였으며, 특히 일본에서 사역하고 있는 일본인 선교사들의 참석도 눈에 띄었다.

뿐만 아니라 참석하는 회원들의 학교들도 확장되었다. 총신신대원을 비롯해서, 고신대학교, 장로회 신학교신대원, 고려대학교, 한일장신대학교, 숭실대학교, 평택대학교 등에서 연구하는 교수들이 대거 참석한 것이다. 즉 국제적인 칼빈 연구는 칼빈 마니아들의 잔치가 아니라 다양한 학교와 전공을 망라하여 확산되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시아 칼빈 대회에 참석하는 국가의 수가 너무나 제한적이었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에 편중되고 있다.

무엇보다 타이완과 인도네시아가 속히 국내의 정치적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표단을 파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인도네시아 같은 경우는 네덜란드개혁교회로부터 오래 전부터 영향을 받은 바가 있기 때문에 적지 않은 칼빈 학자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지난 제7회 일본 대회 같은 경우는 16명이 참석한 바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어려운 국가적 경제적 여건으로 인해서 참석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빔 얀서 교수의 권면

끝으로 국제 칼빈 학계를 이끌어 가고 있는 세계적인 석학인 빔 얀서(Wim Janse) 교수와의 대화 가운데 한국의 개혁주의자들을 위한 조언을 요청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은 의미 있는 말을 남겨 주었다.

첫째로 그는 개혁주의 정체성에 충실해 달라고 권면했다. 둘째는 자신의 신학적 특성은 지켜 나가되, 국제적인 연대 속에서 활동하라는 격려가 있었다. 그래서 셋째로는 서로에게서 배우라는 조언이 따랐다. 아직 개신교 역사가 짧은 아시아와 한국의 개혁주의 교회는 500년의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서양의 개신교로부터 겸손하게 배워야 할 것이다.

또한 서양의 기독교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피 선교 국가임에도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아시아, 특히 한국 교회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호 배움이라는 관계 속에서 세계의 개혁주의 교회들은 더욱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전통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측면에서 역시 대가다운 뜻 깊은 권면이었다.

다음 제11회 아시아 칼빈학회는 2009년에 한국에서 개최된다. 이 해는 특히 칼빈 출생 500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이며, 그의 출생일을 기념하여 7월 중에 열리게 될 계획이다. 앞으로 한국과 아시아의 많은 개혁주의 목회자와 신학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서 칼빈의 신학이 다시 한 번 세계 교회를 위해서 공헌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