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에게 종말론이 있는가?(칼빈의 종말론, 우리의 종말론)

[기독교보 2009-06-09 23:21:32]조회 : 54

 

칼빈출생 500주년 신학포럼 지상중계 (5)

 

한국의 종말론에서 과거에는 전천년설적인 해석이 우세하였지만 근래에 이르러서는 무천년설이 강력하게 대두됨으로써 신학도들이 매우 혼란스러워 한다. 이때에 칼빈의 종말사상을 통하여 우리의 종말론이 어떠해야할지를 가름해 보기로 하자.

 

칼빈은 계시록 주석을 쓰지 않았으며, 기독교 강요에서 종말론을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다른 종말적 구절들에서 어떻게 해석하였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그의 종말론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한정건 교수 / 구약학

 

1. 천년왕국에 대한 개요(계 20장)

 

요한계시록 20장에 나타나는 천년왕국 구절은 용이 잡혀 천년동안 무저갱에 감금당하며, 그 기간동안 죽은 성도가 살아서(이것을 첫째 부활이라고 함)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한다. 천년 후에는 그 용이 놓여 세상을 미혹하여 곡과 마곡의 전쟁을 일으킨다. 백보좌에 앉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심판할 때에 죽은 자들이 모두 살아나 함께 영원한 불 못에 던지운다(이를 둘째 사망이라 부름).

 

무천년기설은 이 천년기간은 상징적인 숫자이며,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전기간동안에 있는 상황으로 본다. 후천년설(천년왕국 후에 재림)은 교회시대 어느 시점에 땅위에 평화가 건설된다고 본다. 전천년설(천년왕국 전에 재림)은 재림 후에 이 세상에 천년왕국이 있을 것으로 본다. 그 왕국에 참여하는 사람은 첫째, 부활한 성도(왕으로 통치함)이며, 둘째 세상 나라(통치받는 사람 그리고 나중에 사탄의 미혹으로 배반하는 사람이 있어야 함)이다. 오늘날 후천년설을 지지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따라서 전천년설과 무천년설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성경적이며, 칼빈은 어느 것을 지지하는지 살펴보자.

 

 

2. 천년왕국에 연관된 구약의 구절들

 

⑴ 사 2:1-5: 메시아의 통치권이 전 세계에 미치며, 열방이 시온에 순례오고, 나라 사이는 전쟁이 없는 평화가 이루어지며, 풍족한 소산을 누린다(미가 4:5을 근거로 하여). 무천년설은 예수님 초림적인 사건, 전천년설은 재림 이후의 천년왕국 모습으로 본다. 칼빈은 이것은 우리시대(교회)로 볼 수 없으며, 예수님의 재림 때에 완전한 통치와 평화가 있을 것으로 주장한다.

 

⑵ 사 11:6-9: 짐승과 짐승 사이, 그리고 짐승과 사람 사이의 평화가 깃들고, 거기는 해됨과 상함이 없고,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할 것이다. 무천년설은 대체로 교회시대에 영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며, 전천년설은 재림 후 만물의 회복(천년왕국적 모습)으로 본다. 칼빈은 재림이후의 자연의 완전한 회복으로 본다.

 

⑶ 사 60장: ‘너’라고 불리는 시온 성에 각 나라 왕들이 자기의 특산품들을 가지고 와서 섬긴다. 그 도성은 해와 달이 필요 없으니 하나님이 친히 빛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슬픔과 고통도 없다(60:19-20; 계 21:23과 같은 묘사임). 무천년설은 현재 교회의 모습으로, 전천년설 재림 이후의 새예루살렘, 특히 천년왕국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칼빈은 현 교회로는 볼 수 없으며, 미래의 회복된 교회의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문제의 핵심은 과연 미래의 회복된 새예루살렘에 세속적인 왕들이 존재할 수 있느냐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21장의 그 새예루살렘에도 왕들이 보물들을 가지고 성으로 몰려오는 모습이 꼭 같이 그려져 있다(계 21:24-26).

 

⑷ 사 65:16-25: 세상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하고, 모든 환란이 없으며, 온 세상엔 하나님 종교밖에 없다. 전쟁이 없는 평화와 풍족한 소산이 있으며, 짐승의 세계까지 평화가 깃든다. 그런데 그곳에 사람이 오래 산다(100살에 죽은 자가 어린아이로 간주됨). 무천년설은 교회의 모습으로 보며, 전천년설은 재림 이후의 천년왕국으로 본다(계 20장의 천년왕국 동안에 죽음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음, 계 21:5). 칼빈은 현 교회의 모습일 수 없으며, 미래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회복될 세상이라고 주장한다.

 

이상의 모든 구절에서 칼빈은 무천년설 쪽을 한 곳에서도 지지하지 않는다. 모두 재림 이후의 모습으로 보며, 따라서 전천년설의 주장과 거의 일치한다.

 

3. 다니엘서의 전쟁과 성도의 환란에 관한 구절들

 

무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니엘서와 그 외에 유사한 종말적 전쟁의 구절들을 세상 마지막 때에 있을 대전쟁과 적그리스도에 의한 성도들의 환란으로 보지 않고 교회시대 전반에 있을 전쟁, 혹은 교회가 영적으로 사탄과 싸우는 투쟁으로 본다. 그러나 칼빈은 다니엘서 구절들을 지나칠 정도로 문자적-역사적으로 해석한다. 다니엘 2장의 신상이 파괴되는 것을 로마 나라의 멸망과 세상 마지막 때에 있을 세상의 심판으로 본다(무천년설은 예수님의 초림적 사건으로 해석함).

 

다니엘 7장에서 넷째 짐승은 로마제국이며, 열 뿔은 로마 제국의 원로회, 그리고 작은 뿔은 시저와 그 뒤를 잇는 황제들로 본다(기독교강요에서는 다니엘 7장 25절의 적그리스도를 로마 교황으로 단정함). 다니엘 11장 41절-12장 13절의 구절도 ‘그 왕’을 로마 원로원(집단 지도체제)으로 해석하고, 로마에 의해 성도들에게 환란이 있을 것으로 해석한다(단지 같은 묘사가 있는 다니엘 9장 27절은 예수님 초림으로 봄. 이와 관련이 있는 마 24장 15절 이하의 구절도 로마 재림 직전에 있을 적그리스도에 의한 성도들의 대환란으로 본다.

 

이상의 그의 성경해석원리를 볼 때에 칼빈이 계시록을 주석했으면 분명히 당시 혹은 세상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의 역할과 성도들의 환란으로 해석했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의 해석은 무천년설과 거리가 멀다.

 

무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계시록 전체에 있는 전쟁과 성도들의 환란을 교회 전기간 동안 있는 일반적인 전쟁 혹은 교회와 사탄의 영적인 투쟁으로 본다(어떤 사람은 주전 70년 사건으로 한정짓기도 함). 이것은 천년왕국과 더불어 계시록과 그와 연관이 있는 다른 모든 성경 구절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원리를 취한 것이다. 반면 전천년설은 철저하게 역사적으로 해석하여, 실제 그런 전쟁과 환란이 마지막 때에 있을 것으로 본다.

 

칼빈은 성경을 철저하게 문자적-역사적(literal- historical interpretation)으로 해석하였다. 그는 선지서들의 예언을 영해하는 것을 극히 경계했다. 그러한 그의 해석원리는 무천년설과 거기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종말론도 이런 해석원리위에 세워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