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n Luther's Theology of Beauty번역서 출판예정
*2024.5.7(화,2시)제15회 칼빈학술세미나(송용원)
제목:한국교회를 위한 칼빈의 공동선
*총서 종교개혁과 결혼과 가정 출판예정
고신대학교 개혁주의학술원
051-990-2267, 2268 kirs@kosin.ac.kr
갱신과 부흥 논문투고 https://kirs.jams.or.kr
투고기간: 12월1일~1월31일, 6월1일~7월31일
칼빈의 생애와 사역 그리고 그의 신학과 사상 전반에 관한 연구논문들을 수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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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뉴스 조셉 파이파 교수가 본 ‘칼빈의 신학과 목회’①
[레벨:9]하늘소망
19254   2009-07-08
조셉 파이파 교수가 본 ‘칼빈의 신학과 목회’① [기독교보 2009-02-25 14:37:08]조회 : 165 칼빈, 사람들의 영혼․구원에 큰 관심 “장로교회의 교회정치 원리 발전…성경적”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은 지난 2월 16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삼양교회당에서 ‘칼빈의 신학과 목회’란 주제로 제32기 정기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세미나에서 주제 강의를 한 조셉 파이파 교수(미국 그린빌 신학교 학장)의 강의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편집자 주- ■ 칼빈의 생애와 사역…1년에 200회 강의·설교 존 칼빈은 1509년 7월 10일, 프랑스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약 10km 떨어진 피카르디의 작은 마을 누아용에서 태어났다. 칼빈은 파리대학 안의 몬테뉴대학에서 초대 교부들에 대한 강도 높은 훈련을 받기도 했다. 이 대학은 극단적인 금욕주의로 알려져 있으며, 엄격한 훈련과 규율로 유명하다. 그 뒤 오를레앙 법학과에 받은 법학 훈련은 그의 신학적, 철학적 훈련과 함께 그가 완성된 개혁자로서 일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역할을 했다. 1529년 헬라어 학자이자 루터교도인 볼마르는 1529년 부르주 대학에서 칼빈에게 헬라어를 가르침으로써 신약성경을 헬라어로 읽고, 성경을 연구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조셉 파이파 교수 칼빈이 언제 어디서 회심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러한 어려움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으려 했던 칼빈의 ‘과묵함’에서 기인한다. 파이파 교수는 “칼빈이 언제 갑작스런 회심을 했는지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칼빈의 회심에 배경이 될 만한 몇몇 영향들을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칼빈은 조용한 학자로 살아가길 원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조용한 개인으로 살도록 나두지 않았다. 파이프 교수는 그의 사역의 첫 부분을 ‘방랑’이란 제목으로 다루고 있다(1533-1536). 칼빈은 신교도에 대한 박해가 점점 심해지자 프랑스를 떠나 독일어권 스위스 지역이었던 바젤로 여행했다. 거기서 1535년 기독교 강요 초판을 썼다. 기독교 강요의 원판은 프랑스 개신교도들의 신앙을 변호하기 위해 쓰였다. 1536년 9월 15일 제네바 시 의회는 칼빈을 고용해 종교 개혁자 윌리엄 파렐을 돕도록 했다. 이에 파렐은 칼빈에게 ‘신령한 책의 교수’라는 직함을 주었고, 칼빈은 바울서신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그는 즉시 성경의 원리들을 제네바 시민들의 생활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시민들의 생활에서 개인적인 거룩함을 촉구했고, 교회가 스스로를 관할하고 다스릴 수 있는 자율권과 출교를 행할 수 있는 자유를 요구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개혁자들과 개혁에 대해 점점 강하게 반대했다. 결국 1538년 4월 23일 칼빈과 파렐은 제네바에서 추방됐다. 이 때 칼빈은 스트라스부르그로 가서 마틴 부처와의 대화를 통해, 그리고 교회 정치와 예배에 대한 그의 원칙을 자유롭게 시행하면서 그의 교리와 실천을 보다 분명하게 발전시켰다. 1541년 칼빈이 제네바로 돌아온 직후, 제네바 시는 칼빈이 준비한 ‘교회법’을 받아들였다. 거기에서 칼빈은 장로교회의 교회정치 원리를 발전시켰다. 교회정치 영역은 칼빈이 종교개혁에 가장 독창적인 공헌을 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교회법’에서 그는 교회 권징에 있어서 교회의 자율권을 확립했다. 파아파 교수는 “제네바에서 가장 큰 갈등들 가운데 하나는 교회의 순수성과 출교권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549년 자유사상가들이 전권을 장악하면서 1553년 칼빈은 다시 제네바로 축출될 위기에 놓이게 됐다. 신학적인 갈등이 더 심각해지면서 자유사상가들은 거짓 교사들 편에 가담하곤 했다. 신학적인 논쟁의 두 가지 큰 주제는 칼빈의 예정설과 삼위일체 교리의 방어다. 1553년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이단자 세르베투스의 처형은 칼빈에게 정세 변화를 위한 촉매제가 됐다. 세르베투스 편에 선 자유사상가들의 평판은 땅에 떨어지고, 칼빈에 대한 새로운 지지층이 나타났다. 1555년 시의회는 교회에 출교권을 허용했다. 시의회가 개혁주의 법안을 지지하는 이들이 선출됨에 따라 같은 해 자유사상가들은 폭동을 일으켰으며, 도시에서 추방되어 귀환이 금지됐다. 이에 제네바는 종교개혁의 선두 도시가 된 것. 1559년 6월 5일 칼빈은 제네바 아카데미를 개교했으며, 이 아카데미는 뒤에 제네바 대학으로 승격됐다. 칼빈은 성년이 돼 건강이 나쁜 가운데에도 왕성한 서신 왕래, 1년에 200회 강의, 같은 수의 설교를 했다. 질병은 칼빈이 1564년 죽기까지 따라 다녔다. 파이파 교수는 “칼빈의 영향은 세계적인 동시에 포괄적”이라며 “그는 개혁주의 누룩이 퍼지는 모든 나라마다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목회 사역…목양 접근 ‘교회법’에 종합 “칼빈은 목회 사역으로 인해 늘 쫓기는 생활을 했지만, 그의 목회적 돌봄의 사역은 그 모든 것들을 유지시켜주고 붙들어주는 접착체와도 같은 것이었다.” 파이파 교수는 “칼빈의 가장 큰 관심은 그 무엇보다 사람들의 영혼과 그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목양을 위한 그의 접근은 ‘교회법’에 종합되어 잘 나타나 있다. 이것은 1537년 완성됐으나 1541년이 되기까지 시의회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이 문서는 성경적 교회 정치의 재발견의 초석이 됐다. 교회법에서 칼빈은 성경으로부터 4가지 직분 개념을 발전시켰다. 목사와 교사와 장로와 집사가 바로 그것. 목사는 설교와 교훈과 권면, 그리고 성례를 위해서 있으며, 교사는 신학을 강의하며, 교리의 순수성을 지키고, 목회자 후보생들을 훈련시키는 자들이다. 장로들은 교회의 치리자들이다. ‘형제적 권고’ 또는 ‘훈계’는 칼빈이 가장 좋아하는 표현이다. 교회 권징의 가장 상위 기관인 치리회는 12명의 장로들과 목회자들로 함께 구성돼 있다. 집사는 교회의 재산과 필요한 자들을 돌보기 위한 자들이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두 종류의 집사를 세웠다. 하나는 교회의 헌금을 비롯한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들이고, 또 하나는 병자와 가난한 자들을 섬기기 위한 집사들이다. 이 직분들과 역할을 통해서 제네바의 목회적 돌봄(목양)을 구성했다. 권징의 문제는 시의회와 치리회 양쪽에서 진지하게 여겨졌다. 파이파 교수는 “칼빈은 권징이 효과적이 될 수 있으려면 설교와 교훈이 함께 수반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칼빈은 마태복음 18장을 따라서 권징의 세 가지 단계를 가르쳤다. 사적 권면, 증인이나 교회 앞에서의 (공적) 권면, 그리고 출교의 단계다. 권징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명예를 위해 △몸(교회)의 보호를 위해 △범법자의 교화를 위해 등 3가지 목적을 갖고 있다. 책망을 받는 사람, 출교되는 사람들이 그들의 비열하고 타락한 행동을 부끄럽게 여겨 회개에 이를 수 있게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칼빈은 그의 목회 사역에서 영혼을 돌보는 일에 자신을 헌신했다. 그는 성화의 위대한 목표는 “영혼이, 인간이 상실한 내지는 희미하게 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나타내는 순종과 거룩함과 선함을 점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칼빈이 ‘기독교강요’를 저술한 또 하나의 주요한 목적은 ‘확신이 없고 괴로워하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교훈하기 위해서다. 영혼들에 대한 칼빈의 (목회적) 돌봄은 특히 그의 편지들에서 엿볼 수 있다. 맥닐은 베누아를 따라서 칼빈에게 ‘영혼의 감독’이라는 호칭을 주었다. 칼빈이 영혼을 지도하고 감독한 것은 성경에 의해서 잉태된 환경에서 글을 쓰며, 성경을 읽는 것과 묵상하는 것을 계속 촉구하고, 그의 성경적 신앙의 교리적 관점들에 대해 늘 강조했다는 점에서 성경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칼빈의 서신은 △개혁 촉진시키기 위함 △위로와 격려 △종교개혁 과정에서 방해로 고통 받거나 박해 당하는 사람들 격려 △양심상의 문제들에 대한 답과 조언 △믿음을 부인한 사람들을 견책 등 다섯 가지 항목으로 구분된다. 목회자 칼빈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파이파 목사는 “칼빈주의의 유산을 누리고 있는 우리들은 칼빈주의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즉 우리가 교회 정치에 있어서 장로교회인 이유는, 우리가 칼빈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는 그것이 성경적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며 “질서정연한 교회와 우리의 직분자들을 훈련시키는 일 또한 필요하다는 점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경적으로 기능하는 당회와 집사들이 없이는 참된 종교개혁을 성취할 수 없다. 파이파 목사는 설교만으로 종교개혁을 성취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교회 권징을 성경적으로 시행하는 데 더욱 힘쓰자.”며 “그리스도의 명예와 개교회의 건강과 죄인들의 교정은 권징은 얼마나 신실하게 시행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이국희 기자 cookie0228@hanmail.net  
170 뉴스 “게으른 성경 해석·설교 준비 안 된다”
[레벨:9]하늘소망
18241   2009-07-08
“게으른 성경 해석·설교 준비 안 된다” [기독교보 2009-03-18 13:24:27]조회 : 157 개혁신학회 학술 세미나…‘칼빈과 한국 교회’① 기동연 교수…‘칼빈의 성경 해석 방법론’ 5가지 제시 칼빈 탄생 500주년 기념 2009년 봄 개혁신학회(회장 김인환 교수, 총신대학교) 학술 세미나가 지난 3월 14일 서울시 사당동 총신대학교에서 ‘칼빈과 한국 교회’란 주제로 열렸다. 이 날 발표회에는 구약·신학·조직(1,2)·역사·실천 등 6개 분과로 나뉘어 17개의 강의가 진행됐다. 이에 본보는 분과별 강의를 일부 발췌하여 싣는다. -편집자 주- “칼빈의 성경 해석 방법은 당시 그가 대학 시절에 접한 인문주의자들의 고전 연구 방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구약신학분과에서 첫째 발제자로 나선 기동연 교수(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신학)는 ‘칼빈의 구약 성경 해석 방법’이란 주제의 논문을 통해 “칼빈을 비롯하여 인문주의자들의 고전 해석 방법에 영향을 받은 성경 해석가들은 종교개혁자들의 모토였던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방법론을 갖게 됐다.”며 “칼빈은 하나님은 성경을 기록할 때, 저자의 슬픔과 그로 인한 심리적 상태까지도 사용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해석하기 위해서 성경 저자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며, 이를 위해 성경 저자의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개인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동연 교수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기 교수는 또 칼빈의 구약 해석은 신약의 가이드를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칼빈이 요한복음 5장 39절 주석에서 강조한 것처럼 구약 해석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고, 이를 놓치면 진리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원칙과 율법을 해석할 때 예수님과 사도들이 구약 성경을 인용할 때 사용한 해석 방법론을 따르는 것이다. 즉 칼빈은 사도들의 예표론적 해석과 그리스도의 본질적 포괄적 해석을 따르고 있다. 기 교수는 “칼빈이 구약 성경 해석에서 신약의 가이드를 받았다고 해서 그가 무작정 신약의 관점에서 구약을 해석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칼빈의 구약 주석을 보면 그는 아주 분명한 해석 방법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기 교수에 따르면 칼빈의 주석 원칙은 간단 명료성이다. 칼빈의 간단 명료성은 저자의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내어 독자들에게 설명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하지만 칼빈은 간단 명료성의 필요성은 말하지만, 저자의 의도를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기 교수는 간단명료하게 저자의 의도를 드러내려고 하는 칼빈의 구약 해석 방법을 5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첫 세 가지 방법은 히브리어와 관련된 것으로 △칼빈의 주석이 히브리어 문법에 철저하다. △단어의 의미를 결정할 때 히브리어 단어의 어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칼빈은 히브리어에 정통한 유대인 주석가들의 해석을 중시한다. 칼빈에게 어원은 단어의 의미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네 번 째 칼빈의 구약 해석 방법은 문학적 배경, 즉 전후 문맥과 문학적인 표현 방법을 고려하는 것이다. 기 교수는 “칼빈은 한 단어의 의미를 구약 성경뿐만 아니라 신약 성경에 사용된 용례를 통해 정의하고 있다. 동일한 단어뿐만 아니라 반의어의 용례까지 살펴 한 단어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며 “칼빈은 문맥을 떠나 임의로 본문의 의미를 일반화하여 성도들에게 말씀을 억지로 강요하거나 그릇된 적용을 하는 것을 막으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본문이 갖고 있는 역사적 배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 가운데서 본문을 이해하는 것이다. 기 교수는 “칼빈은 역사를 주저리주저리 그 내용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고 고려하여 본문을 해석한다.”며 “선지자들의 예언과 관련하여 역사는 칼빈에게 또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칼빈은 과거 역사 속에 성취된 선지자의 예언을 알레고리나 모형론적으로 해석하여 신약 교회에 적용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말했다. 기 교수는 “칼빈의 성경 해석 방법론에 비추어 볼 때, 현대 구약 학자들이 독자들에게 너무 어려운 글을 쓰고 있다. 현대의 설교가들이 설교 준비에 너무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기 교수는 또 “성경 연구를 위한 도구들이 턱없이 빈약했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놀라운 주석과 설교를 했다. 반면에 우리는 너무 좋은 성경 해석 도구를 갖고 있으면서도 일과 시간에 쫓기고, 게으름에 쫓기느라 성경을 바르게 연구하고 설교하지 못하고 있다.”며 “칼빈만큼 주석하고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더라도 그를 본받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강조했다. 기 교수의 논문 발표에 대해 김성수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구약신학)는 논평을 통해 “기동연 교수의 논문은 칼빈의 성경 해석의 원리뿐만 아니라 방법들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고찰함으로써 현대의 성경 교사들의 성경 연구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며 기 교수가 제시한 칼빈의 성경 해석 방법을 ‘역사적-문법적 성경 해석’이라고 정의했다. 이와 함께 김 교수는 칼빈의 성경 해석 방법을 2가지 더 제시했다. 칼빈의 주석이 자주 보여주는 관련된 성경 구절 인용과 칼빈은 구약 성경을 해석할 때에 단순히 본문의 문법적 의미와 그 본문이 갖고 있는 역사적 배경 안에서 해석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러한 문법적-역사적 의미들을 반드시 자신의 교회와 미래의 교회에 적용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칼빈의 주석은 ‘교회의 교화’를 위한 것이었다. 항상 본문의 역사적-문법적 의미를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는 관점에서 해석, 적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주석은 교회의 성경 교사로서 칼빈이 교회를 위해서 행한 섬김의 행위였다.”고 평가했다. 이국희 기자 cookie0228@hanmail.net  
169 뉴스 “성경 본문에 더 충실해야 합니다”
[레벨:9]하늘소망
17366   2009-07-08
“성경 본문에 더 충실해야 합니다” [기독교보 2009-03-18 13:39:20]조회 : 137 유상섭 교수…‘칼빈의 설교에 비추어 본 한국 목회자들의 설교’ 평가 예장 합동 목회자 설교 19편 분석 및 발전 방향 제안 신약신학분과에서 발표한 유상섭 교수(총신대학교, 신약신학)는 ‘칼빈의 설교에 비추어 본 한국 목회자들의 설교’라는 주제의 논문을 통해 “16세기의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을 외쳤을 뿐만 아니라 성경의 본문에 충실한 강단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 백성의 마음속 깊게 심어준 설교 개혁의 시대였다.”고 평가했다. 유상섭 교수 총신대학교 유 교수가 비교와 분석을 위해 선정된 설교는 예장 합동측 목회자들의 설교 19편이다. 유 교수는 “종교개혁 당시 종교 개혁자들에게 설교가 엄청나게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을 회고해 볼 때, 칼빈의 성경 해석 방법과 한국 교회 목회자들의 설교를 비교 분석함으로 어떤 점에서 칼빈의 성경 해석 방법의 유산을 계승하고 있으며, 어떤 점에서 미흡한 점이 있는 지 점검하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고 말했다. 유 교수에 따르면 칼빈의 성경 해석의 핵심 원리는 간략함과 명료성 또는 분명하고 간결함이다.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하는 기독교 강요와 주석들은 칼빈의 이런 원리가 구체적으로 적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 교수는 또 “본문의 문맥적이고 문자적인 의미에 충실을 기하여 저자의 생각을 파악하고 설명하려는 성경 해석과 주해의 원리는 칼빈의 설교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다.”고 주장하면서 “칼빈은 성경 본문에 충실하기 위해 원어성경을 직접 사용하여 아무런 노트 없이 설교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유 교수는 칼빈의 주석(성경 해석)에 비추어 신약 설교 19편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면서 목회자들의 설교 분석에 근거해 발전 방향을 제안했다. 우선 긍정적인 측면으로 △선정된 설교들이 칼빈이 제시하고 실천한 대로 개혁주의 성경 해석의 대원칙에서 빗나가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설교를 통해 현 시대를 사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적절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설교자들이 본문의 메시지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 성경원어의 뜻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본문 해석에 있어서 칼빈의 통찰을 넘어서는 경우도 있었다. 등 4가지다. 이와 함께 유 교수는 “△각론적인 측면에서 아직도 미흡하다. 특히 본문의 역사적인 배경과 문맥적인 흐름을 충실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주제설교의 범주에 머물고 있어 진정한 의미의 주(강)해설교로 발전해야 한다. △저자의 의도와 본문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저자의 어법과 표현방식과 문맥에 주목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설교자들에게 미흡하다. △대부분의 설교가 선택된 본문의 진리를 각종 배경에 비추어 이해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데 부족하다. △일부 설교자들이 헬라어 단어나 동사를 취급함에 있어서 어떠한 증거로도 입증될 수 없는 과잉 해석 또는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성경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 있는 말씀이며, 성경은 성경에 의하여 해석돼야 한다는 원리는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버려서는 안 되는 소중한 전통과 자산이다.”며 “이 전통에 따라 한국 교회 목회자들의 설교는 세부적인 면에서 더욱더 이 원리에 충실하게 발전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장석조 교수(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는 논평을 통해 “유 교수의 논문은 성경해석학의 첫 기둥인 석의의 기준에 집중하면서 적용의 기준에 미흡한 점이 있다. 특히 칼빈의 적용과 설교자의 적용을 비교 분석하면서 석의와 적용이 보다 더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강해설교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국희 기자 cookie0228@hanmail.net  
168 뉴스 “칭의 바른 이해가 복음 능력 드러낸다”
[레벨:9]하늘소망
19230   2009-07-08
“칭의 바른 이해가 복음 능력 드러낸다” [기독교보 2009-03-24 23:15:31]조회 : 132 개혁신학회 학술 세미나…‘칼빈과 한국 교회’② 강웅산 교수…칼빈 칭의론 통한 한국교회 문제 해결 방법 제안 일반적으로 한국 교회는 칭의론은 잘 가르쳤는데, 성화는 안 가르쳤다고 말한다. 구원에 대한 확신은 강한 반면, 삶 속에서 구원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지 않는 괴리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강웅산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이에 대해 강웅산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는 ‘칼빈의 칭의론과 한국 교회’란 주제의 논문발표에서 “문제의 원인이 칭의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고 지적하면서 “칼빈은 칭의론을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틀’에서 설명하고 있다.”고 말한다. 칼빈에게 그리스도와의 연합 속에서 칭의와 성화가 구분은 되나 분리되지 않도록 설명하고 있으며, 이것의 실천적 의미는 구원은 받았으나(칭의) 구원의 삶을 보이지(성화) 않은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 이에 강 교수는 칼빈의 칭의론을 바로 이해하면 기독교인의 삶은 분명히 복음의 능력을 드러낼 것으로 보고 있다. 강 교수는 “칼빈이 연합의 구도를 통해 구원을 설명하는 방법은 전통적으로 구원 서정(ordo salutis)을 직선적인 개념으로 이해했던 것과는 다르게, 구원 체험에 대한 입체적이며, 총체적이고, 유기적인 이해를 가능케 한다. 그 증거가 칼빈이 말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이중 은혜다.”고 말한다. 강 교수에 따르면 이중 은혜는 하나는 연합 속에서 지속되는 생명의 교류와 결과인 변화의 효과, 즉 성화를 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연합의 관계로 인해 달라진 신분상의 법정적 효과, 즉 칭의다. 칼빈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단순히 구원 서정의 한 국면이 아니라, 구원 서정 전체를 묶는 하나의 틀 또는 방법론이다. 칼빈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설명하면서 ‘실제’ 또는 ‘본질’이란 용어를 종종 사용한다. 강 교수는 “칼빈이 강조하는 것은 믿음을 통해 이뤄지는 연합이 상징 또는 가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한 몸이 되는 일체됨에 그 의미가 있다는 강조로 이해해야 할 것”이라며, “그 연합은 성령을 통해 이뤄지는 영적 연합이면서 동시에 실제로 하나라는 사실적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한다. ▲‘칼빈의 칭의론과 한국 교회’란 주제로 발표하는 강웅산 교수(가운데), 논평 맡은 오창록 교수(왼쪽). 강 교수에 따르면 칼빈은 그리스도의 의(구속사적 의)가 연합을 통해서 나의 것이 됨을 강조한다. 이것은 칼빈의 신학의 틀이 되는 언약 사상에 의해 가능한 것으로써, 나와 구분되는 그리스도의 의가 연합을 통해 나의 것이 된다는 것이 칼빈의 칭의론 이해에 있어 중요한 특징이다.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그와 더불어 하나가 되게 하셨기 때문에 그의 의가 우리의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칭의’를 소극적인 측면에서 죄 사함과 적극적인 측면에서 의인됨을 동시에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부분이다. 강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가 육을 입으시고 중보자 되심의 의미에 대해 칼빈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의가 되셨다고 압축하고 있다. 칭의 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의는 바로 이 의다.”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의인’이라는 강조를 제대로 하지 못할 때, 교회는 대사회적 기능, 즉 빛과 소금의 역할을 상실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믿음이 우리를 칭의 시키는 것은 믿음이 갖고 있는 어떤 힘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 즉 그리스도 때문이라는 것이 칼빈의 강조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어 그 의로 말미암아 성부 앞에서 의롭다 여겨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믿음의 강조는 칼빈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의만이 칭의의 근거임에 대한 강조가 되는 것이며, 믿음의 도구성과 연결된다. 믿음의 도구성은 구속사적 완성이 구원 서정적 적용이 되는데 있어서 오직 그리스도만이 근거임을 강조하는 장치다. 칼빈에게 ‘오직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의 의’만이라는 말이다. 강 교수는 “믿음으로 칭의 된다는 것은 성화를 배제하고,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을 수 없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소유한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칭의와 성화 모두를 누리는 것”이라며 “칼빈은 칭의와 성화의 관계를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되는 이중 은혜라고 부르고 있다.”고 설명한다. 칭의는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단회적 선언인 반면, 성화는 하나님이 죄인을 지속적으로 거룩하게 변화시켜 나가는 일이다. 강 교수는 “칼빈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칭의론을 개진해 가는 큰 틀이며, 방법론이었음을 확인한다.”며 “칼빈의 방법론, 즉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충분히 숙지한다면 한국 교회는 교인들의 삶과 관련하여 오늘날 당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를 효과적으로 지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오창록 교수(개신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는 논평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연합과의 관련성 속에서 칭의론을 제대로 가르치고 이해시키기만 하면 신자들의 삶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주장은 바로 공감을 얻기가 어렵다.”며 “칭의론의 원리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적용되어 역동적 진리로 나타남과 관련해서는 좀 더 구체적인 대안들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국희 기자 cookie0228@hanmail.net  
167 뉴스 “교회 자선도 하나님을 향한 예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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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44   2009-07-08
“교회 자선도 하나님을 향한 예배다” [기독교보 2009-03-31 21:04:20]조회 : 120 개혁신학회 학술 세미나…‘칼빈과 한국 교회’③ 안인섭 교수…칼빈, 사회복지 문제 두 종류 집사제도로 해결 “개신교회의 신학을 종합했던 칼빈의 장점은 그의 신학을 실제로 적용했던 교회 현장이 있었다는 점이다.” 3월 14일 총신대학교에서 열린 개혁신학회 학술 세미나에서 역사신학분과에서 두 번째로 발표한 안인섭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역사신학)는 ‘칼빈의 목회관과 한국 교회의 과제: 사회복지의 목회적 의미를 중심으로’란 제목의 발표를 통해 “칼빈의 신학은 언제나 목회 현장과 분리되지 않았다.”며 칼빈이 실천했던 교회의 자선 활동을 중심으로 그의 목회 사역의 특징에 대해서 설명하고, 한국 교회의 과제에 대해서 설명했다. 안인섭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역사신학 칼빈은 1536년에서 1538년, 1541년에서 1564년 그의 임종 시까지 거의 전 생애를 제네바 시의 교회에서 활동했다. 1538년에서 1541년까지 3년간의 스트라스부르그 나그네 생활 가운데서도 칼빈은 한 번도 목회를 중지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 교수는 “칼빈의 목회 사역을 숙고할 때, 한국 교회의 자선 사업은 교회 현장에서 비교적 간과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16세기 칼빈이 목회를 할 때의 유럽 사회는 △백년전쟁(1337-1453)을 비롯한 각종 전쟁과 중세 봉건제도의 흔들림, 사회 변화에 따른 구걸 농민과 군인들, 부랑자들 숫자 증가로 인한 사회적 불안과 가난과 페스트 등 질병이 큰 문제로 대두됐다. 이것이 새로운 신학으로 무장하면서 등장하고 있었던 개신교회가 실제로 활동을 펼쳐야 하는 삶의 환경으로 다가왔다. 칼빈은 이런 제네바 상황 속에서 그 목회적 사역을 감당했다. “칼빈 당시 제네바의 사회 복지는 교회와 국가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로 발전하게 됐으며, 제네바에서 칼빈은 양과 질에서 큰 목회적 변화를 주도했다. 칼빈은 ‘오직 성경으로’라는 그의 신념에 따라 성경으로부터 통찰력을 얻어 구체적인 목회적 적용을 하게 됐다.” 칼빈의 목회 신학은 기독교강요 초판(1536년) 및 최종판(1559년)과 그의 성경 주석에 잘 나타나 있다. 안 교수에 따르면 1552년 출판된 칼빈의 사도행전 2장 주석에서 칼빈은 참된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사도들의 설교 말씀과 기도와 성찬과 자선이다. “이에 근거할 때, 이 네 가지가 균형 있게 실시되는 목회가 칼빈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목회였다.”는 게 안 교수의 주장이다. 칼빈은 이 본질적인 사회 복지적인 측면을 두 종류의 집사 제도를 통해서 목회적으로 풀어갔다. 그것은 재정적인 행정을 감당하는 복지 행정사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방문하여 위로, 격려하는 복지 도우미다. 그는 “칼빈은 교회에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직분으로 집사를 위치시켰다. 따라서 칼빈에게 있어서 집사는 구제 행정을 감당하는 자들과 실제로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찾아가서 구제금을 전달하고 위로하는 2중의 집사직 구조를 갖고 있었다.”며 “칼빈은 교회에서 집사의 직분을 통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제하며, 자선을 베푸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향한 교회의 자선 사역은 결국 하나님을 향하는 예배이며,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이라는 칼빈의 목회 신학을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칼빈은 두 종류의 집사 제도라는 신학적 이론을 갖고 실제로 그의 사역지였던 제네바에서 종합 구빈원과 프랑스 구호 기금 등을 통해서 목회의 장으로 펼쳐 나갔다. 안 교수는 이처럼 신학이 이론에만 머물지 않고 늘 교회의 현장으로 나간 것을 칼빈의 위대한 점으로 꼽고 있다. 안 교수는 칼빈의 사회복지 측면의 목회 사역에 비추어 한국 교회가 풀어가야 할 과제를 제시했다. 첫째, 칼빈이 교회의 예배와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자선 활동을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고, 자선을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 중의 하나로 본 것처럼 한국 교회도 신앙과 삶, 예배와 윤리가 일치하여 사회 속에서 그 영향력을 갖도록 통전적인 목회관을 가져야 한다. 둘째, 칼빈이 말하는 집사 직분은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을 위해서 행정적으로 구호 기금을 모으고, 또 실제로 방문하여 위로하는 것인 만큼 한국 교회의 집사 직책, 더 나아가 한국 교회의 직분론은 과연 칼빈의 신학 위에 서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칼빈의 집사직은 단순히 교회 안의 행정 및 회계 관리에 그치는 항존직이 아니다. 셋째, 칼빈이 그의 기독교 강요와 성경 주석에서 강조하듯이 교회의 목회적 활동은 말씀과 기도와 성찬, 그리고 자선(사회 복지)이라는 네 가지 요소가 잘 균형이 잡혀야만 한다. 안 교수는 “한국 교회가 세 가지 요소는 서양의 교회와 비교할 때, 나름대로 잘 감당하지만, 사회 복지 또는 가난한 자를 위한 디아코니아는 아직 성숙하게 설천하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 교회가 앞으로 이 부분을 더욱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같은 안 교수의 논문발표에 대해서 김종희 교수(백석대학교, 역사신학)는 논평을 통해 “△칼빈의 신학을, 목회를 위한 것으로 잘 제시함으로써 사변적인 것으로 오해 받는 점을 불식시키는 데 공헌했다. △자선을 교회의 본질적인 면에서 다룬 칼빈의 사상을 잘 소개했다. △칼빈의 목회관에 나타난 구제 행정을 담당하는 자들과 구제 금융을 담당하는 자들로 이뤄진 2중의 집사 제도는 한국 교회가 회복해야 할 점이라는 것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호평했다. 반면 그는 한국 교회가 처한 사회적 정황과 함께 한국 교회의 과제에 대해서 좀 더 제시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국희 기자 cookie0228@hanmail.net  
166 뉴스 칼빈의 성화론: “이미 그러나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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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06   2009-07-08
칼빈의 성화론: “이미 그러나 아직도” [기독교보 2009-05-13 16:21:36]조회 : 97 고려신학대학원이 칼빈 출생 500주년을 기념하여 전국 각 지역을 순회하며, 신학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이번 신학포럼은 신대원 교수들이 전공분야를 살려 다양한 주제로 칼빈 신학과 사상을 조명하고 있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본보는 고신교회 개혁신학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개최하는 이번 포럼의 내용을 요약하여 지상중계 한다.[편집자 주] 대구경북 지역 신학포럼 내용 (2009년 5월 4일 동일교회당) 칼빈의 성화론: “이미 그러나 아직도” 박영돈 교수(교의학) 간혹 종교개혁은 칭의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성화를 상대적으로 간과했다는 말을 듣는다.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는 종교개혁은 칭의론은 재발견했으나 성화론은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한 반쪽짜리 개혁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칼빈의 신학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칼빈은 “성화의 신학자”라고 불릴 정도로 성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칼빈에게 있어서, 비록 칭의가 종교개혁의 주요점이며 핵심교리이지만 그 자체가 신앙생활의 목표가 아니라 바탕이며 출발점이다. 칼빈의 실제적 관심은 하나님 앞에 성결한 삶이었다. 성결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와 열망이 그의 가르침과 삶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칼빈 성화론의 주요 특성은 로마 가톨릭과의 논쟁의 상황에서 형성되었다. 칼빈은 칭의와 성화를 분명히 구분함으로써 칭의를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성화에 의존케 함으로 구원의 확신을 심각하게 훼손한 로마 가톨릭의 오류에 적절하게 대응하였다. 동시에 이 둘은 긴밀하게 연합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개혁교회의 칭의론이 성화의 중요성을 약화시켜 윤리적 방종과 나태를 조장한다는 로마 가톨릭의 비난을 효과적으로 불식시켰다. 그와 함께 칭의론이 무율법주의적 혼란을 초래하는 교리로 남용되는 위험을 원천에서 봉쇄하였다. 이 같이 율법주의에 대응해서는 칭의와 성화의 구별성을, 무율법주의에 대해서는 그 연결성을 강조함으로써 양극단 오류를 효과적으로 극복하는 전략적인 논증이 칼빈의 구원론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칼빈은 성화를 철저히 기독론적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칼빈에 의하면, 성화의 전 과정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기초하였다. 성화의 패턴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본받아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부활하는 것이다. 그 성화의 원동력 또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흘러나온다. 성화의 궁극적인 목표도 역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것이다. 결국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성화의 근원이며 패턴이고, 우리 안에서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성화의 원동력이며, 영광중에 계신 그리스도가 성화의 목표이다. 곧 성화의 처음과 나중, 알파와 오메가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칼빈에 의하면, 성화는 두 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성화는 날마다 옛사람이 죽고(mortificatio) 새사람으로 소생(vivificatio)하는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성화의 두 측면은 단계적으로 이어지기 보다는 동시적으로 발생하며 동전의 양면과 같이 진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죽음(motificatio)의 두 측면이다. 칼빈은 자기부인을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으로 강조하였다. 자기부인 없이 새사람의 소생, 즉 성화의 진전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자기부인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그러나 자기부인이 없는 곳에는 온갖 죄가 지배한다. 자기 부인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칼빈 신학의 대명제와 하나로 맞물려 있다. 헛된 영광에 목말라하는 자아의 철저한 죽음 없이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슬로건을 외치는 것은 단순히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부인 없이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거룩한 구호까지도 자아의 부패한 욕망을 교묘히 위장하는 명분으로 이용된다. 그러므로 자아의 전적 죽음, 파괴만이 해결책이다. 이 땅위에서의 신자의 삶은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기보다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에 더 가깝다. 성화의 전 과정은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과 똑같은 패턴을 따르는 일종의 끊임없는 죽음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땅 위에서의 삶은 계속되는 죄와의 싸움과 시험과 고난이 있는 십자가의 삶이다. 아무리 성화가 진전될지라도 신자는 이 십자가를 넘어 성숙하지는 못한다. 이 사실을 망각할 때 온갖 교만과 완전주의적 망상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의 삶에는 ‘아직도’ 죄와 고난에서 완전히 자유하지 못한데서 오는 신음과 탄식과 절규가 존재한다. 이러한 탄식은 신자 안에 종말론적 구원에 대한 부르짖음과 소망을 심화시킨다. 이같이 성화의 ‘아직도’를 더 부각시킨 칼빈의 성화론은 현대교회가 ‘이미’쪽으로 편중되어 과도한 승리주의로 치우친데 대한 적절한 견제와 교정역할을 해준다. 지금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아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는 칼빈의 음성에 다시 귀를 기울일 때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기애의 시대에 가장 인기 없고 사람들이 질색하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라는 가르침이다. 우리 개혁교회에서도 가장 결여된 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칼빈의 신학을 이론적으로 따른다고 할지라도 우리 삶 속에 자기 부인이 없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칼빈을 따른다고 할 수 없다. 자기 부인이 없을 때 칼빈의 신학까지 은밀히 자기 영광을 위한 도구로 이용될 뿐이다. 자기 부인이 없는 곳에 자기 숭배라는 무서운 우상숭배의 죄가 창궐하게 된다. 자기 명예와 영광에 목말라하는 옛 자아의 죽음 없이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거룩한 구호까지도 자아의 부패한 욕망을 위해 이용된다. 그러므로 성화의 유일한 길과 비결은 죽음이다. 칼빈의 성화론은 이 점을 강조하는데 한 치의 양보도 타협도 없다. 오직 죽은 자 만이 산다. 자기를 온전히 비운 자만이 성령으로 충만해진다. 그런 자만이 교회를 살리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한다.  
165 뉴스 성령의 내적 증거 -- 칼빈의 정경관 --
[레벨:9]하늘소망
20068   2009-07-08
성령의 내적 증거 -- 칼빈의 정경관 -- [기독교보 2009-05-13 16:24:59]조회 : 87 고려신학대학원이 칼빈 출생 500주년을 기념하여 전국 각 지역을 순회하며, 신학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이번 신학포럼은 신대원 교수들이 전공분야를 살려 다양한 주제로 칼빈 신학과 사상을 조명하고 있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본보는 고신교회 개혁신학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개최하는 이번 포럼의 내용을 요약하여 지상중계 한다.[편집자 주] 대구경북 지역 신학포럼 내용 (2009년 5월 4일 동일교회당) 성령의 내적 증거 -- 칼빈의 정경관 -- 변종길 교수(신약학) 성경의 권위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해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 제1권 7-9장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먼저 ‘교회의 결정’을 생각할 수 있다. 교회가 이런 저런 책을 정경(正經)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신적 권위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가지는 것일까?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그렇다고 본다. 그러나 칼빈은 이것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교회의 동의에 의해 인정되는 한에 있어서만 성경이 중요하다(권위를 가진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한 오류이다.”(I,vii,1). 성경의 권위가 교회의 결정에 의존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칼빈은 에베소서 2:20을 든다. 곧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교회가 존재하기 전에 먼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이 존재했었다. 이것들이 없었다면 교회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성경’을 판단하는 권세가 ‘교회’에 있다는 주장, 곧 교회의 동의에 의해서만 성경의 확실성이 의존한다는 생각은 허구이며 매우 불합리한 생각이다. 교회가 성경을 받아들일 때에는 의심스럽거나 논란되는 것을 권위 있게 만든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진리라고 ‘인정(認定)’한 것에 불과하다(I,vii,2). 그러면 우리가 교회의 결정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성경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칼빈은 성경은 자기 스스로 그것의 진리됨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을 우리는 ‘성경의 자증(自證)’이라고 부른다. 성경은 자기 스스로 신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사람들이 정경으로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정경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사람들이 읽고 인정하기 이전에 이미 정경으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확신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사람의 판단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교회의 결정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의 증거’에 의한다(I,vii,4). 이것을 칼빈은 ‘성령의 내적 증거’ 또는 ‘내적 설득’이라고 불렀다. 그러면 ‘성령의 내적 증거’가 무엇인가? 이것은 음성이나 환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성령은 어느 책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성령의 내적 증거란 신자의 마음에 성령이 역사함으로 말미암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신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성령의 내적 증거는 인간의 판단이나 이성보다 훨씬 우월하다(I,vii,4-5). 우리가 성령의 내적 증거를 정경성의 요소로 인정하면 ‘주관주의’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이유로 정경성의 요소로 인정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 있다(Grosheide, Ridderbos 등). 특히 리덜보스는 성령의 내적 증거가 정경의 범위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경성의 기준으로 보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우리는 칼빈과 같이 성령의 내적 증거를 정경성의 원리로 인정해야만 한다(Du Toit). 성령의 내적 증거가 어떤 책이 정경임을 결정하는 객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정경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주관적인 인정 근거는 된다. 이런 점에서 1913년에 있었던 화란의 두 신학자 H. H. 카이퍼(아브라함 카이퍼의 아들)와 S. 흐레이다너스의 논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다. 이들은 정경의 ‘인정 근거’가 무엇인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흐레이다너스는 정경의 인정 근거는 ‘정경 자체’에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성경 바깥의 기준이나 잣대를 가지고 정경을 비판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러나 카이퍼는 이에 반대하여 우리 안에서의 ‘성령의 증거’가 정경 인정의 근거라고 주장했다. 우리의 성경 신앙의 근거는 ‘성경’도 아니고 성경에서 흘러나오는 ‘신성’도 아니며, 다만 우리가 성경에 대해 가지는 ‘지식’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흐레이다너스는 성령의 증거는 우리가 성경을 그렇게 인정하도록 인도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두 사람의 주장이 다 일리가 있다고 본다. ‘성경’과 ‘성령’은 대립 구도에서 볼 것이 아니다. ‘성령’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거 한다. 성령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느끼고 고백하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한다. 그러나 성령은 성경을 젖혀 두고서, 성경 바깥에서 역사하는 것은 아니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 ‘말씀과 함께’ 역사한다. 따라서 성령과 성경 사이에는 밀접한 협력 관계에 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 권위의 우열을 따질 수 없듯이, ‘성령’과 ‘성경’ 사이의 관계도 대립적으로 볼 수 없다. 칼빈은 이 둘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보지 아니하고 함께 사역하는 것으로 보았다. 즉, 한편으로는 ‘성경의 자증’을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성령의 내적 증거’가 결정적임을 계속 말하고 있다(I,vi-viii). 칼빈에게는 이 ‘두 원리’가 모순되지 않고 서로 배척하지 아니하면서 동시에 나타난다(I,ix). 이것은 올바른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의 두 축이다(헤르만 바빙크). 어느 한 편도 희생되거나 약화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칼빈에게서 ‘성경’과 ‘성령’ 사이에 가장 균형 잡힌 견해를 보게 된다. 이것은 개혁 교회와 개혁 신학의 귀중한 유산이며, 칼빈 출생 500주년이 되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소중한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말씀’과 ‘성령’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으며 둘 다 강조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말씀’과 함께 또한 ‘기도’를 강조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64 뉴스 칼빈의 구약 성경 해석 방법
[레벨:9]하늘소망
24697   2009-07-08
칼빈의 구약 성경 해석 방법 [기독교보 2009-05-20 16:42:10]조회 : 77 기동연 교수/구약학 가장 위대한 신학자들 중에 한 명인 칼빈의 신학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기독교 강요에 잘 표현되어 있다. 기독교 강요는 교회를 위한 신학 교과서로 역사 속에 길이 남을 것이다. 기독교 강요에 더하여 칼빈은 또 다른 중요한 신앙의 유물을 교회에 남겨 주었다. 바로 그의 신구약 주석 책들이다. 칼빈의 주석 책들은 그의 신학을 연구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성경을 해석하고 설교해야 하는 목회자들에게 바람직한 성경 해석 방법론을 제시해 준다. 1. 성경의 영감론과 인문주의 학자들의 영향 칼빈은 인간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있고 구원받는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을 통하여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의 성경 영감론은 결코 기계적 영감론이 아니고 유기적 영감론이다. 칼빈은 성령께서 성경을 기록할 때 성경 기록자의 지적인 능력과 개인적인 성격과 문화적 배경을 사용하였다고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 성경 기록자의 언어인 히브리어와 당대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입각하여 구약을 해석해야 된다. 칼빈의 성경 해석 방법은 그가 대학 시절에 접한 인문주의자들의 고전 연구 방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칼빈은 1528년 경에 오를레앙과 부르제에서 법학을 공부하게 된다. 칼빈 시대의 법학자들은 르네상스를 주도한 인문주의 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본문이 형성된 역사적 배경과 본문의 문학적 특징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칼빈도 이런 영향을 받았고, 이를 성경 해석에 적용하고 있다. 2. 신약의 가이드 칼빈은 구약의 메시지를 이해할 때에는 신약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칼빈은 예수님과 사도들이 구약 성경을 인용할 때 사용한 해석 방법론을 따른다. 즉 칼빈은 사도들의 예표론적 해석과 그리스도의 본질적 포괄적 해석을 따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칼빈에 의하면 구약 해석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고, 이를 놓치면 참된 진리에 도달하지 못한다. 칼빈이 그리스도를 찾는 구약 성경은 주로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과 사도들이 직접적으로 그리고 간접적으로 그리스도와 연결시켰던 본문들과 초대 교회 때부터 기독론의 관점에서 해석 했던 본문들이다. 하지만 칼빈은 이런 본문들을 주석가들이 메시아 본문으로 당연한 듯이 해석하는 안이한 태도를 비판한다. 3. 칼빈의 구약 성경 해석 칼빈의 주석 원칙은 간단 명료성이다. 칼빈은 멜랑크톤처럼 성경 본문의 특정한 이슈에 집중하면 전반적인 본문 이해를 어렵게 만들고, 부처처럼 박학다식한 사람들이 늘어놓은 장황한 설명은 지적인 능력이 떨어지거나 평범한 독자들이 본문의 핵심을 파악하기 힘들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칼빈은 많은 주석가들이 본문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해석상의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본문의 의미를 바르게 파악하기 위해 히브리어 어원, 문법, 유대인 주석가들의 견해, 문법적 배경, 그리고 역사적 배경을 고려 했다. 칼빈은 단어의 의미를 결정할 때 어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어원의 기원을 하나님께 돌렸다. 그리고 칼빈은 각 단어의 의미를 구문 속에서 이해하려고 하였고, 결과적으로 본문을 번역하고 해석할 때 히브리어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전통적인 해석이 히브리어 문법에 비추어 문제가 있는 경우 문법에 맞게 해석하거나 둘을 적절하게 조화한 해석을 제시하였다. 칼빈은 단어의 의미를 결정하기 어려울 때 종종 유대인 주석가들의 해석을 따른다. 그 이유는 유대인 랍비들을 히브리어의 대가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칼빈은 유대인 주석가들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합리적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해석을 배격했다. 특히 전통적으로 메시아 예언으로 여기는 본문에 대해 유대인 주석가들이 다른 해석을 제시하면, 칼빈은 이들의 주장을 특별히 강력하게 논박하곤 한다. 칼빈은 한 단어를 해석할 때 그 단어의 전후 문맥을 고려했을 뿐만 아니라, 그 단어의 용례를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에서 확인하여 의미를 확정하였다. 용례를 살필 때 칼빈은 동일한 단어뿐만 아니라 그 단어의 반의어의 용례까지 살펴 그 의미를 밝히려 하였다. 이 같은 칼빈의 해석 방식을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개혁주의자들의 전형적인 성경 해석 원리라고 볼 수 있다. 칼빈이 문맥을 강조한 이유는 문맥을 떠나 임의로 본문의 의미를 일반화하여 성도들에게 말씀을 억지로 강요하거나 그릇된 적용을 하는 것을 막는데 있었다. 칼빈은 본문이 처음 기록된 시대적 배경과 오리지널 청중을 고려하며 해석하였다. 그는 스가랴 1:11 주석에서 세가지를 유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a) 선지자의 의도에 주목할 것, b) 그 시대의 상황을 고려할 것, 그리고 c) 사인과 사인의 의도 사이의 유사성을 살필 것. ‘그 시대의 상황’이란 바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칼빈은 과거 역사 속에 성취된 선지자의 예언을 알레고리나 모형론적으로 해석하여 신약 교회에 적용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역사적 배경과 관련하여 칼빈은 과거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옛 백성들에게 일어난 것을 진실되게 교회의 성도들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했다. 그 이상으로 해석하여 교회에서 가르치는 자를 칼빈은 베드로전서 2:1의 거짓 선생과 구약의 거짓 선지자들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글을 맺으면서 칼빈의 성경 해석 방법론을 살피면서 현대의 설교가들이 설교 준비를 너무 소홀하게 한다는 점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성경 연구를 위한 도구들이 턱없이 빈약했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놀라운 주석과 설교를 하였다. 반면에 우리는 너무 좋은 성경 해석 도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고 그리고 게으름에 쫓기느라 성경을 바르게 연구하고 설교하지 못하고 있다. 칼빈만큼 주석하고 설교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그를 본받으려는 노력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163 뉴스 존 칼빈의 인간론 : 일그러진 의지와 탁월한 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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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12   2009-07-08
존 칼빈의 인간론 : 일그러진 의지와 탁월한 이성 [기독교보 2009-05-20 16:42:52]조회 : 74 ■ 하 재 성 교수 / 상담학 인간의 전적 타락을 선언하는 칼빈의 인간관은 과연 부정적이고 염세적인가? 종교 개혁자 칼빈에 따르면 타락으로 인해 인간에게 있던 “하나님의 형상이 전적으로 사라져 버리거나 파괴된 것은 아니라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죄로 인한 그 오염이 너무나도 심하여 이제 남아 있는 것은 끔찍하게 기형적이 된 형상일 뿐”이라고 선언한다. 구원에 관한 한 인간의 의지는 전적으로 일그러졌고, 인간의 이성은 오염되어 완전히 무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타락은 자유 의지의 위대한 권세를 상실하게 하였고, 일그러진 의지는 “더 이상 악에 대항하여 투쟁할 수” 조차 없게 되었다. 자유의지가 건재함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오히려 그들에 의해 자유의지는 더욱 짓밟히고 있다. 인간의 의지는 더 이상 자율성이 없으며, 오직 잔혹한 욕구에 의해 종노릇하게 되었을 뿐이다. 인간의 이성 역시 손상이 되어, 이성과 이해력의 능력이 소실되었고, 잘못된 일을 정당화하는데 이성이 사용되고 있다. 하나님을 알고 그의 진리를 아는데 있어서 인간의 이성이나 오성은 철저히 제한되어 있어서, 비록 그가 “가장 위대한 천재라 하더라도 두더지보다 더 눈이 먼” 이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로 인해 인간이 스스로 고결하다 할 수 있는 자신의 존엄성과 인간의 가치 자체까지도 파괴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부정적으로만 세상을 그리지 않는다. 비록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고, 스스로 의롭게 되는 길을 상실했지만, 인간의 이성과 의지는 최소한 인간을 동물과 구별짓기에 충분할 정도로 존속되어왔다. 타락한 인간의 묘사에서는 칼빈이 절망적이지만, 인간 이성의 탁월함을 말할 때는 매우 밝은 색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타락과 이성의 탁월성이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칼빈은 절망적이고 비참한 인간에게 탁월성의 씨앗을 심으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그 모든 학문과 문명의 탁월함은 원저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거기에는 정치, 정책, 기계, 철학, 교양, 건축, 조각, 회화, 음악 등의 분야를 망라한다. 그것이 곧 오늘날 우리가 믿는 일반 은총론의 시작이며, 그 가치는 당연히 그리스도의 특별한 구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물론 위의 학문 분야들이 구원을 위한 보조도구라고 말한다면 틀린 것이다. 하지만 경탄할만한 인간의 통찰력들을 적그리스도로 거부하는 것은 칼빈의 신학 방법론과 거리가 있다. 왜냐하면 세상 학문의 저자를 칼빈은 하나님이시라 말하기 때문이다. 칼빈의 이러한 태도는 신학에 대한 그의 독특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며, 세상의 여타 학문에 의해 조금도 위협당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경탄 가운데 “즐길 수 있었”던 그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그는 중세 신학자들처럼 “철학을 신학의 시녀”로 만들 필요도 없었다. 세상 학문에 대한 그의 태도는 곧 세상 사람들에 대한 태도로 연결된다. 즉 하나님의 형상이 심겨진 이 세상의 불신자들은, 그들이 어떤 사람이라 하더라도 가치있는 존재로 인정받아야 한다. 비록 다른 종교를 섬기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잘못된 우상숭배와는 상관없이 그들의 인격은 존중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 그들의 악한 의도가 아니라 “그들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쳐다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대하는 칼빈의 사고와 생각은 이처럼 신중하고 정교하였다. 칼빈은 시종 인간을 타락하게 했던 무절제한 자기 사랑과 반드시 싸워야 한다고 말을 한다. 동시에 인간이 자아를 극심히 비하하는 것 역시 타락의 결과이다.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은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져야 한다(후크마). 칼빈의 말처럼 비록 고난과 어려움과 좌절이 있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사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에 참여하는 선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칼빈 자신은 어떤 인간으로 살았는가? 대개 법에 익숙하거나 성공적인 사람들은 감정이나 감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전형적인 강박증의 특징이다. 칼빈이 비록 다른 신학자들처럼 자신의 사적인 삶에 대해 많이 소개하지 않지만, 그는 여전히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다. 파렐이 그의 안식을 저주하며 제네바 사역을 촉구할 때, 그는 심각한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이후 부처(Bucer)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가 얼마나 파렐에게 분노했는지 말하고 있다. 제네바에서 추방될 때 그는 낙심하고 불안에 사로잡혔으며, 스트라스부르그 사역에서는 행복함을 느꼈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쓰라리도록 고통스럽지만, 아직 할 수 있는 한 슬픔을 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슬픔은 특별했다. 물론 그에게는 이성으로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고 믿었던 당시의 시대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슬픔을 통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상처로 끝나지 않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어떤 남성을 대할 때,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그를 목회자로서 위로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에게는 목회자로서 타인의 슬픔을 위로하는 공감의 능력이 분명히 역사하고 있었다. 천주교의 고해성사와 관련하여, 칼빈은 매우 엄중한 태도를 취한다. 어떤 강제적인 형태로 죄를 고백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금하신 양심을 새로운 결박으로 묶어 노예로 삼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임무가 아니다. 왜냐하면 “죄를 완전히 고백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참된 회개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위선자들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날 제이 아담스(Jay Adams)등의 이론 가운데, 상담을 통해 죄를 고백 받으려는 시도에 경고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형태의 상담도 개인의 죄를 억지로 고백하게 하는 것은 그 양심을 결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연약성을 노출하는 것은 강제적이고 유도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발적이고 “상호적인 권고와 위로”의(mutual counsel and consolation) 사건이어야 한다.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유일성을 말함과 동시에 인간의 학문과 문명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자유를 성령 안에서 누린 개혁자였다. 그는 스스로 고난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타인의 고난을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목회자로서 그는 긍휼의 위로자였으며, 무엇보다 기독교 밖에 있는 일반 학문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통찰했던 현대 개혁주의 신학 방법론의 선구자였다.  
162 뉴스 칼빈의 칭의론 :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얻는 의롭다 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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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17   2009-07-08
칼빈의 칭의론 :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얻는 의롭다 하심 [기독교보 2009-05-29 09:13:19]조회 : 77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는 교회의 서고 넘어짐을 결정할 만큼 중대한 교리다. 루터는 이 교리가 없으면 하나님의 교회는 한 시간도 존재할 수 없다고 하였다. 칼빈도 이 교리를 기독교를 떠받치는 주축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이교리가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E. P. 샌더스가 대표하는 소위 ‘새 관점학파’는 이신칭의가 바울 서신의 중심 가르침이 아니며, 처음부터 복음의 진리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새 관점학파의 일원인 톰 라이트는 이신칭의를 구원론이 아니라 교회론과 관련된 교리라고 하였다. 이신칭의를 시대에 뒤떨어진 교리로 생각하거나 신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한 잘못된 교리로 간주하는 학자들도 많다. 길성남 교수 / 신약학 칼빈 당시의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어느 정도의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원죄로 인해 약해지기는 했어도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과 협력하여 의인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칭의를 의화(義化)라고 하는데, 이것은 일종의 신인 협력적 구원론이다. 이에 대해서 칼빈은 인간의 철저한 타락과 부패를 강조하면서 칭의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고 하여 하나님 단독적 구원론을 주장하였다. 칼빈에 따르면, 칭의는 죄인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함으로 죄를 용서하시고, 그를 의인으로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법적 행위다. 죄인들을 위한 칭의는 죄의 용서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로 구성된다. 칼빈의 칭의 이해는 법정적인(forensic) 것이다.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죄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신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의의 선언을 통해서 인간이 받는 것은 본성의 완전함이 아니라, 법적인 의의 신분이다. 반면에 로마 가톨릭 교회의 칭의 개념은 법적인 것이 아니라 죄인의 본성을 실제로 의롭게 만드는 것이다. 칭의는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전 생애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이것은 칭의를 성화와 혼동하는 심각한 오류다. 그러나 로마서 8:33-34에서 볼 수 있는 대로, 성경의 칭의 개념은 법정적인 것이다. 또한 칭의를 본성의 실제적인 변화로 이해한다면,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없고, 따라서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도 없다.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하더라도 신자는 완전한 의의 상태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칼빈의 칭의 이해에서 또 다른 중요한 개념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imputation)이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의가 없는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선언을 받으려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가 전가되어야 한다. 칭의의 은혜가 놀라운 점은, 죄인인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음으로써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받지 않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칼빈은 칭의와 관련해서 믿음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스도가 우리 밖에 계시는 한, 그가 이루신 모든 것이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야만 비로소 그가 죄인을 위해 획득하신 의가 신자의 소유가 되기 때문이다.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는 수단은 믿음이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죄인은 그리스도의 의를 받으며, 그 의에 근거해서 죄 사함과 함께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다. 믿음 자체에는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는 고유한 능력이 없으며, 오직 믿음의 대상인 그리스도와 그의 완전한 의가 죄인을 의롭게 하는 것이다. 칼빈은 칭의와 관련해서 행위를 철저하게 배격하면서도 신자의 선행을 경시하지 않았다. 이신칭의 교리가 선행을 무너뜨리고 사람들을 현혹하여 죄를 짓게 만든다고 공격하는 자들에게 칼빈은 이 교리야말로 선행을 장려하고 죄를 억제한다고 대응하였다. 그는 선행이 없는 믿음이나 선행이 없이 성립되는 칭의는 꿈도 꾸지 않았다. 칭의는 오직 믿음으로만 얻는 것이지만, 그 믿음은 반드시 선행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루터와 비교할 때 칼빈의 독특한 점은, 칭의와 성화가 영원하고 불변하는 띠로 연결되어 있어서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한 데 있다. 칼빈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칭의와 성화의 은혜를 동시에 받는다고 하였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의롭다 하신 사람을 반드시 동시에 거룩하게 하신다. 칭의와 성화는, 칼빈에게 있어서, 구별해야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분리할 수는 없는 이중의 은혜(a double grace)이다. 따라서 칼빈에게는 칭의 없는 성화도, 성화 없는 칭의도 불가능하다. 칭의는 확실한데 성화가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개혁주의가 아니라 반(反)율법주의다. 의롭다 하심을 받은 신자에게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반드시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이 역사하시므로 그의 내면에 온전함과 거룩함을 향한 열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거룩한 행실과 선행이 칭의의 필연적인 증거로 나타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칼빈에게 이신칭의는 복음의 핵심에 속한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근본 문제인 죄와 관련된 교리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히 멸망당해야 할 죄인이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거룩한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으며, 그로 인해 구원의 확신과 양심의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신칭의 교리는 죄인들에게 가장 달콤한 진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오늘날 이신칭의의 교리가 무시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인간은 여전히 죄인이며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이신칭의의 복음이 바르게 선포되는 곳에 교회의 개혁과 부흥이 일어날 것이다. 칼빈의 출생 5백주년을 맞아 그의 칭의론을 바르게 이해하고, 이신칭의의 복음을 충실하게 전함으로써 이 땅의 교회들이 개혁되고, 개인과 교회에 진정한 부흥이 일어나기를 고대한다.  
161 뉴스 구원얻는 믿음의 본질에 대한 칼빈의 견해
[레벨:9]하늘소망
21922   2009-07-08
구원얻는 믿음의 본질에 대한 칼빈의 견해 [기독교보 2009-05-29 09:14:20]조회 : 100 칼빈은 신자들이 자신의 구원 여부를 신중하게 체크할 것을 권한다. “자신을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검토”함으로써 육신적 자만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칼빈은 구원의 확신을 너무 쉽게 말하는 현대의 복음주의권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태도를 가졌다. 칼빈은 택자와 “일시적 믿음”을 가진 자들 사이에 커다란 유사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유기된 자들도 하나님이 자신들을 향해 자비하심을 믿는다고 말한다. 경험적으로 볼 때 유기된 자들도 때로 선택된 자들과 거의 꼭 같은 느낌에 의해 감동을 받는다. 하늘 선물과 그리스도를 한동안 맛본다(히6:4-6; 눅8:13). 그러나 영적 은혜의 힘과 믿음의 확실한 빛을 굳게 잡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이 그들로 죄를 더 확실히 깨닫고 변명할 수 없게 하기 위해 양자의 영이 없이도 그의 선하심을 맛볼 수 있는 정도로 그들 마음에 잠입하시기 때문이다 (3, 2, 11). 양낙흥 교수 / 역사신학 칼빈은 믿음을 이렇게 정의한다.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어진 약속의 진리에 근거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의에 대한 확고하고 확실한 지식cognitio으로, 성령에 의해 우리 정신에 계시되고 우리 마음에 인쳐진 것”이다(3, 2, 7). <기독교 강요>에서 구원얻는 신앙에 대한 칼빈의 논의는 주로 스콜라주의자들의 견해에 대한 반박으로 이루어진다. 거기서 칼빈은 서너 가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신앙론을 비판한다. 첫째, “맹신”에 대한 가르침, 둘째, 신앙을 “동의”assent 정도로 취급하여 “지식에서 나오는 단순한 동의”a bare and simple assent arising out of knowledge를 믿음과 동일시하고 “마음의 확신 confidence and assurance of heart”를 믿음의 본질에 포함시키지 않는 입장(III, ii, 33), 셋째, 구원의 확신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단지 “도덕적 추측”moral conjecture에 의해 구원의 여부를 판단하는 입장이 그것이다. “맹신”은 구원의 진리에 대한 탐구 작업을 교회에 일임해 버리고 교회가 가르쳐 주는 것은 모두 진리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태도이다. 칼빈은 교회에 대한 그러한 맹종의 태도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칼빈이 보기에 스콜라주의 신학이 단지 “도덕적 추측”에 의해 구원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우리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단지 도덕적 추측에 의해 분별할 수 있다는 스콜라주의적 교리는 아주 위험하다. 모든 이가 자신은 그것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에 부적합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3, 2, 38). 사람마다 자신은 중생의 증거로 내세울만한 도덕성이 있다고 여긴다는 것이었다. 도덕적 추측에 의해 구원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잘못된 또 하나의 이유는, 칼빈에 의하면, “추측이나, 의심과 비슷한 어떤 것”보다 믿음과 상극에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었다. 만일 “도덕적 추측”이 우리의 확신의 근거가 된다면 지금은 자신의 모습을 볼 때 자기가 은혜 안에 있는 것처럼 생각되나 내일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게 된다(3, 2, 40). 칼빈은 믿음의 본질적 특성 중에 “확신”(assurance, securitas)을 강조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의에 대한 확고한 지식, 즉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의 “마음에 인쳐 주심”으로써이다. 그러므로 믿음에는 단지 머리만이 아니라 “마음”의 기능이 포함된다. 믿음이 지식이라 할 때 그 지식은 머리로 하는 이해comprehension보다는 마음의 확신 assurance에 더 가깝다(3, 2, 14). 칼빈에게 있어 진리에 대한 “동의”는 “머리보다는 마음, 이해보다는 성향(disposition)”에 관한 것이다(3, 2, 8). 믿음은 지식이지만 단순한 지성적 이성적 기능으로 얻을 수 있는 일반적 세상 지식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지식이다. 그것은 인간 오감으로 파악하는 이해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감각적 지각sense perception에 해당하는 그러한 종류의 이해”는 아니다(3, 2, 14). 그것은 성령의 조명과 인치심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영적 지식이다. 칼빈은 스콜라주의자들이 “하나님 말씀에 대해 나타내는 존경”이 바로 경건 자체라고 오해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그러한 “동의”는 “마음 속으로 파고 들어 거기에 머무르지”않았다. 이러한 믿음의 소유자들은 이 점에서 마귀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3, 2, 10). 스콜라학자들이 믿음을 단지 지성적 동의로 보고 “마음의 확신”을 간과했던 이유는 부분적으로 “마음의 확고하고 꾸준한 지속성”에 대한 존중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칼빈에 의하면, 그것이야말로 “믿음의 으뜸가는 부분”이다(III, ii, 33). 칼빈은 마음으로 믿는 것이 머리로 믿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고 본다. “정신이 생각을 부여받는 것보다 마음이 확신으로 채워지는 것이 더 어렵다”(III, ii, 36) 칼빈은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는 신자가 아니라고 분명히 못박는다. “구원의 확신에 의지해서 악마와 사망에 대해 자신있게 승리하는 그 사람 외에는 아무도 신자가 아니다”(3, 2, 16). 이 점에 대해 칼빈은 단호하다. “천국의 상속을 자신있게 자랑하는 이 외에는 아무도 주 안에서 바른 소망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없다.”(III, ii, 16). 칼빈에 의하면, 확신은 참 믿음의 본질적 요소였다. 신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확실히 안다”(요일3:2). 참된 믿음은 의심이나 추측의 여지를 용납하지 않는다. “. . . 추측 혹은 의심과 비슷한 어떤 다른 것보다 믿음에 더 반대되는 것은 없다”(3, 2, 38). 그러나 칼빈에게 있어 구원의 확신을 얻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3, 2, 15). 그는 인간의 마음은 본래 불신으로 향하는 고질적 경향이 있기 때문에 “힘든 투쟁hard struggle”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는 확신이 생긴다고 주장했다(3, 2, 15). 그는 믿음에는 감정적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믿음에서 비롯된다고 성경에 나와 있는 충만한 확신의 느낌feeling of full assurance이라는 것이 있다(3, 2, 15).” 그러나 친히 “하나님의 선하심”의 “달콤함을 느끼고 체험”truly feeling its sweetness and experiencing it in ourselves 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가질 수 없다(3, 2, 15). 확신은 감정적 체험을 요하는 것이었다. 칼빈은 느낌, 혹은 감정을 신앙의 본질적 요소로 본다(III, ii, 39, 16). 칼빈의 신앙론에 비추어 볼 때 현대 복음전도에는 몇 가지가 결여되어 있다. 즉 현대 복음전도론은 믿음의 본질적 요소로 지적 의지적 동의만을 강조한다. 이것은 칼빈이 비판한 당시 스콜라주의의 신앙론에 더 가깝다. 즉 현대 복음전도론에는 “마음”의 요소, 혹은 “신뢰”fiducia의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칼빈은 믿음의 필수적 요소로서 감정적이고 체험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확신”을 제시했다. 그러나 현대 복음전도론에는 그것이 빠져 있다. 근원적으로 현대 복음전도론에는 인간의 마음에 “인치심”과 “조명”을 주시는 성령의 역할에 대한 강조가 결정적으로 누락되어 있다. “구원얻는 믿음”의 소유를 단지 자연인의 의지적 결단에 달려 있는 것으로 가르침으로써 칼빈이 비판한 바 “스콜라주의적” 믿음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160 뉴스 나그네 칼빈 선생과 우리
[레벨:9]하늘소망
13683   2009-07-08
나그네 칼빈 선생과 우리 [기독교보 2009-06-02 20:37:09]조회 : 52 칼빈 선생은 평생 3번의 시민권을 가졌다. 프랑스인으로 태어나서 30세(1539년)에 스트라스부르크 시민권을 얻었고, 50세(1559년)에는 제네바 시민권을 취득한다. 그 어간의 삶은 방랑과 도피의 연속이었고, 외국인이라는 비난과 멸시를 받으며 살았다. 그렇지만 그 방랑과 망명의 틈바구니에서 종교개혁자로 우뚝 발돋움하였으니, 고난으로 영광의 업적을 이룬 삶이었다. 유 해 무 교수 / 교의학 1. 방랑과 도피의 나그네 14세에 고향을 떠난 선생은 파리에서 예비 과정을 마치고 법학을 두 도시에서 공부한다. 전도유망한 인문주의자의 길을 걷다가 하나님께서 베푸신 ‘홀연한 회심’을 체험하면서 로마교의 미신의 수렁에서 벗어났다. 그때부터 방랑과 도피의 길을 걷는다. 27세(1536년)에 제네바에서 첫 사역을 시작하였으나 2년 후에 추방을 당한다. 스트라스부르크로 가서 3년 동안 훌륭하게 사역하였다. 32세(1541년)에 다시 제네바의 청빙을 받아 두 번째 사역을 시작한다. 그렇지만 첫 14년 동안 토착민들의 괄시 때문에 심한 어려움을 당하였다. 55세(1564년)로 별세할 때까지 마지막 9년 동안 성시(聖市) 제네바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렸다. 2. 나그네 칼빈 선생의 사역 선생은 학창 시절에 너무 과하게 공부한 연고로 평생 허약하였고, 갖가지 질병을 달고 살았다. 그럼에도 새벽 5시에는 일어나 기도하고 일과를 준비하였다. 주일에는 두 차례 설교하였고, 월,수,금에는 교인들에게 성경을 강해하였고, 화,목,토요일에는 공개 강연도 하였다. 목요일에는 당회를 주재하였고, 금요일 오전 7시에는 목사 성경 공부에 참석하고 때로는 인도하였다. 교구의 가정들을 정기적으로 심방하였고, 병자와 죄수를 심방하였다. 게다가 수천 통의 편지를 썼다. 소책자와 논문, 보고서를 작성했고, 속기사가 가져온 설교와 강해를 교정하여 책으로 출판하였다. 게다가 시의회의 요청으로 제네바의 법률까지 교정하여 편찬하였다! 3. 말씀과 성례 선생은 두 번의 제네바 사역에서 교회를 고백교회로 세웠다.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서를 작성하여 성도들이 믿는 바를 바로 알게 하였다. 그리고 교회정치로는 직분을 바로 세우고 예배모범과 권징조례를 만들어 합당한 예배를 드렸다. 선생은 말씀, 곧 설교를 아주 중시하였다. 우리는 성부께서 베푸신 은덕들과 복음인 그리스도를 성령님의 으뜸 사역이신 믿음으로 소유하며 구원과 영복(영생)에 참여한다. 이 믿음을 낳은 것은 설교가, 크게 하는 것은 성례(세례와 성찬)가 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파하고 경청하며, 성례를 그리스도의 제정을 따라 집행하는 곳마다 교회가 있다.” 목사는 말씀을 순수하게 전파해야 하고, 성도는 그 말씀을 순수하게 경청해야 한다. 주일 설교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선생은 아이들에게는 요리문답을, 성인에게는 주중에 성경을 가르쳤다. 믿음을 일으키는 말씀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 나아가 성례를 거룩하게 집행하였다. 세례로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에 가입한다. 성찬은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시는 예식이다. 성찬 참여로써 참 교리와 사랑의 일체성을 증거한다. 선생은 성찬의 거룩성을 보전하기 위하여, 선한 삶을 사는 이들을 여러 지역에 세워 교인들의 삶을 살필 것을 제안한다. 즉 지역 장로가 교인들의 교리와 생활을 살펴 성찬상의 성결을 유지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말씀과 성례를 보호하는 권징의 시행으로 건강한 교회를 세우려던 필생의 사역은 번번이 제네바 시의회의 간섭을 받았다. 시의회 의원이나 이들이 뽑은 행정관들이 권징을 받는 일이 많았다. 이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생을 다시 추방하려 하였다. 4. 공교회주의자 선생은 종교개혁의 많은 지도자들과 교분을 나누었고, 여러 지역을 방문하였다. 비록 나그네로 살았지만 안목만은 공교회적이었다. 첫째는 자신이 등진 조국 프랑스에 남아있는 개혁교인들인 위그노의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큰 관심을 기울였다. 대표작인 ‘기독교강요’를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에게 헌정한 것이나, 독일교회의 지도자들을 만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둘째로 선생은 종교개혁 진영의 일치를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 일을 위하여 열 바다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말을 남겼다. 5. 나그네 칼빈 선생과 우리 아브라함은 나그네의 삶을 살았다(창 17:7, 23:4). 소명에 응하는 삶 자체가 바로 나그네의 삶이다. 하나님께서 불러 세우시는 곳에 서서 일하며 순종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나그네이다. 칼빈 선생도 이런 삶을 살았다. 처음에는 자기의 생각을 따라 나그네의 삶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과 섭리를 깨닫고서는 원하지 않은 자리에 섰다. 엄청난 교회성장이 점차 과거가 되고 있는 한국교회 안에서 우리도 나그네로서 하나님의 섭리를 밝히 보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불러 세우시는 곳에 가서 순종하는 나그네의 계보를 잇는 사역자들이 되기 바란다.  
159 뉴스 칼빈에게 종말론이 있는가?(칼빈의 종말론, 우리의 종말론)
[레벨:9]하늘소망
22185   2009-07-08
칼빈에게 종말론이 있는가?(칼빈의 종말론, 우리의 종말론) [기독교보 2009-06-09 23:21:32]조회 : 54 칼빈출생 500주년 신학포럼 지상중계 (5) 한국의 종말론에서 과거에는 전천년설적인 해석이 우세하였지만 근래에 이르러서는 무천년설이 강력하게 대두됨으로써 신학도들이 매우 혼란스러워 한다. 이때에 칼빈의 종말사상을 통하여 우리의 종말론이 어떠해야할지를 가름해 보기로 하자. 칼빈은 계시록 주석을 쓰지 않았으며, 기독교 강요에서 종말론을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다른 종말적 구절들에서 어떻게 해석하였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그의 종말론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한정건 교수 / 구약학 1. 천년왕국에 대한 개요(계 20장) 요한계시록 20장에 나타나는 천년왕국 구절은 용이 잡혀 천년동안 무저갱에 감금당하며, 그 기간동안 죽은 성도가 살아서(이것을 첫째 부활이라고 함)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한다. 천년 후에는 그 용이 놓여 세상을 미혹하여 곡과 마곡의 전쟁을 일으킨다. 백보좌에 앉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심판할 때에 죽은 자들이 모두 살아나 함께 영원한 불 못에 던지운다(이를 둘째 사망이라 부름). 무천년기설은 이 천년기간은 상징적인 숫자이며,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전기간동안에 있는 상황으로 본다. 후천년설(천년왕국 후에 재림)은 교회시대 어느 시점에 땅위에 평화가 건설된다고 본다. 전천년설(천년왕국 전에 재림)은 재림 후에 이 세상에 천년왕국이 있을 것으로 본다. 그 왕국에 참여하는 사람은 첫째, 부활한 성도(왕으로 통치함)이며, 둘째 세상 나라(통치받는 사람 그리고 나중에 사탄의 미혹으로 배반하는 사람이 있어야 함)이다. 오늘날 후천년설을 지지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따라서 전천년설과 무천년설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성경적이며, 칼빈은 어느 것을 지지하는지 살펴보자. 2. 천년왕국에 연관된 구약의 구절들 ⑴ 사 2:1-5: 메시아의 통치권이 전 세계에 미치며, 열방이 시온에 순례오고, 나라 사이는 전쟁이 없는 평화가 이루어지며, 풍족한 소산을 누린다(미가 4:5을 근거로 하여). 무천년설은 예수님 초림적인 사건, 전천년설은 재림 이후의 천년왕국 모습으로 본다. 칼빈은 이것은 우리시대(교회)로 볼 수 없으며, 예수님의 재림 때에 완전한 통치와 평화가 있을 것으로 주장한다. ⑵ 사 11:6-9: 짐승과 짐승 사이, 그리고 짐승과 사람 사이의 평화가 깃들고, 거기는 해됨과 상함이 없고,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할 것이다. 무천년설은 대체로 교회시대에 영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며, 전천년설은 재림 후 만물의 회복(천년왕국적 모습)으로 본다. 칼빈은 재림이후의 자연의 완전한 회복으로 본다. ⑶ 사 60장: ‘너’라고 불리는 시온 성에 각 나라 왕들이 자기의 특산품들을 가지고 와서 섬긴다. 그 도성은 해와 달이 필요 없으니 하나님이 친히 빛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슬픔과 고통도 없다(60:19-20; 계 21:23과 같은 묘사임). 무천년설은 현재 교회의 모습으로, 전천년설 재림 이후의 새예루살렘, 특히 천년왕국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칼빈은 현 교회로는 볼 수 없으며, 미래의 회복된 교회의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문제의 핵심은 과연 미래의 회복된 새예루살렘에 세속적인 왕들이 존재할 수 있느냐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21장의 그 새예루살렘에도 왕들이 보물들을 가지고 성으로 몰려오는 모습이 꼭 같이 그려져 있다(계 21:24-26). ⑷ 사 65:16-25: 세상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하고, 모든 환란이 없으며, 온 세상엔 하나님 종교밖에 없다. 전쟁이 없는 평화와 풍족한 소산이 있으며, 짐승의 세계까지 평화가 깃든다. 그런데 그곳에 사람이 오래 산다(100살에 죽은 자가 어린아이로 간주됨). 무천년설은 교회의 모습으로 보며, 전천년설은 재림 이후의 천년왕국으로 본다(계 20장의 천년왕국 동안에 죽음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음, 계 21:5). 칼빈은 현 교회의 모습일 수 없으며, 미래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회복될 세상이라고 주장한다. 이상의 모든 구절에서 칼빈은 무천년설 쪽을 한 곳에서도 지지하지 않는다. 모두 재림 이후의 모습으로 보며, 따라서 전천년설의 주장과 거의 일치한다. 3. 다니엘서의 전쟁과 성도의 환란에 관한 구절들 무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니엘서와 그 외에 유사한 종말적 전쟁의 구절들을 세상 마지막 때에 있을 대전쟁과 적그리스도에 의한 성도들의 환란으로 보지 않고 교회시대 전반에 있을 전쟁, 혹은 교회가 영적으로 사탄과 싸우는 투쟁으로 본다. 그러나 칼빈은 다니엘서 구절들을 지나칠 정도로 문자적-역사적으로 해석한다. 다니엘 2장의 신상이 파괴되는 것을 로마 나라의 멸망과 세상 마지막 때에 있을 세상의 심판으로 본다(무천년설은 예수님의 초림적 사건으로 해석함). 다니엘 7장에서 넷째 짐승은 로마제국이며, 열 뿔은 로마 제국의 원로회, 그리고 작은 뿔은 시저와 그 뒤를 잇는 황제들로 본다(기독교강요에서는 다니엘 7장 25절의 적그리스도를 로마 교황으로 단정함). 다니엘 11장 41절-12장 13절의 구절도 ‘그 왕’을 로마 원로원(집단 지도체제)으로 해석하고, 로마에 의해 성도들에게 환란이 있을 것으로 해석한다(단지 같은 묘사가 있는 다니엘 9장 27절은 예수님 초림으로 봄. 이와 관련이 있는 마 24장 15절 이하의 구절도 로마 재림 직전에 있을 적그리스도에 의한 성도들의 대환란으로 본다. 이상의 그의 성경해석원리를 볼 때에 칼빈이 계시록을 주석했으면 분명히 당시 혹은 세상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의 역할과 성도들의 환란으로 해석했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의 해석은 무천년설과 거리가 멀다. 무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계시록 전체에 있는 전쟁과 성도들의 환란을 교회 전기간 동안 있는 일반적인 전쟁 혹은 교회와 사탄의 영적인 투쟁으로 본다(어떤 사람은 주전 70년 사건으로 한정짓기도 함). 이것은 천년왕국과 더불어 계시록과 그와 연관이 있는 다른 모든 성경 구절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원리를 취한 것이다. 반면 전천년설은 철저하게 역사적으로 해석하여, 실제 그런 전쟁과 환란이 마지막 때에 있을 것으로 본다. 칼빈은 성경을 철저하게 문자적-역사적(literal- historical interpretation)으로 해석하였다. 그는 선지서들의 예언을 영해하는 것을 극히 경계했다. 그러한 그의 해석원리는 무천년설과 거기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종말론도 이런 해석원리위에 세워져야 한다.  
158 뉴스 칼빈의 송영으로서의 목회
[레벨:9]하늘소망
16967   2009-07-08
칼빈의 송영으로서의 목회 [기독교보 2009-06-09 23:39:28]조회 : 51 칼빈출생 500주년 신학포럼 지상중계 (5) 종교개혁자, 신학자로 널리 알려진 칼빈은 본래 신학자 이전에 목회자였다. 그는 한평생 목회자로서 살았다. 그의 가장 큰 관심은 사람들의 영혼과 그들의 구원이었다. 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양떼들을 온 힘을 다해 먹이는 영혼의 목자였다. 그의 신학은 목회를 위한 신학이요, 종교개혁은 자신이 목회한 제네바 교회를 중심으로 제네바 시 전체를 향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 즉 설교를 통한 그의 강단목회와 그를 공격하는 반대자들과의 끝없는 투쟁의 산물이었다. 칼빈의 목회여정은 반대와 배척, 고난의 연속이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는 목회자로서뿐 아니라, 당시 교회개혁에 불가능한 모든 조건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김순성 교수 / 실천신학그의 성격은 과묵하고 내성적이면서 급하고 격정적인 기질의 소유자였고, 체격이 가냘프고 치질, 궤양, 관절염, 천식, 결핵 등 온갖 질병을 한 몸에 안고 살았던 병약한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운동 때문에 그는 한평생 카톨릭 교회의 원수, 나그네, 망명자, 외국인으로 살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술과 설교준비 주 5회 이상, 일 년에 286회 설교, 186회의 신학강좌. 시의회의 일, 각 나라의 종교개혁 고문 등 초인적인 사역을 감당했다. 그 유일한 비결은 그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는 목회자가 되기를 원치 않았으나 하나님께서 그 일에 자신을 부르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난 뒤에는 그 일에 그의 전 존재를 헌신했다. 한 마디로 그는 말씀과 성령에 붙들려 한평생 쓰임받은 하나님의 종이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만 의지하며 하나님의 영광만 목적으로 살았던 하나님의 종이었다. 칼빈은 주님을 향한 철저한 헌신에도 불구하고 일생동안 자만하지 않았고, 자기 공로를 드러내거나 자기변호를 하지 않았다. 우리 자신이 주님의 것이며,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임을 늘 인식하며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침해당할 때는 결코 묵과하지 않았다. 칼빈이 지향한 목회의 목표는 모든 성도들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with Christ)을 경험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삶으로 향유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풍성한 구원을 누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구원의 확신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의 열매가 당연히 포함된다. 칼빈은 이 일이 가능하도록 하나님께서 지상에 ‘보이는’ 교회를 세우시고 직분을 세우셨다고 믿는다. 문제는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가 다 참 교회가 아니며, 교회에 속한 성도라고 해서 모두가 참 성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참 교회와 거짓교회, 참 성도와 거짓 성도를 구별하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교회의 표지’(notae ecclesiae)와 ‘성도의 표지’(notae fideliem)를 주장한다. 참 교회의 표지는 두 가지로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와 성례의 정당한 시행이며, 참 성도의 표지는 세 가지로 바른 신앙의 고백과 삶의 모범 그리고 성례전 참여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게 선포되지 않거나, 정당한 성례가 시행되지 않는 교회는 참 교회가 아니라는 칼빈의 주장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구원의 도리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이 있어야 하고, 구원에 합당한 모범적인 삶의 열매가 있어야 하며,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하는 성례전에 올바르게 참여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도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교회에 4가지 직분을 주셨는데, 목사, 교사(신학자), 장로, 집사이다. 칼빈에 의하면 교회 안에 주어진 이 4중 직분과 그 기능의 바른 수행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성경적인 목회의 방법이 된다. 여기서 목사의 직무는 그 어떤 직분보다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기 때문이다. 목사의 말씀사역은 세 가지로 말씀 선포(설교)와 가르침, 말씀에 근거한 훈련과 권징, 성례전의 집행이다.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여 설교하고 가르칠 때, 회중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경험하게 된다. 나아가 성도들이 말씀대로 살도록 하기 위해 훈련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권면하고 징계하는 직무를 감당해야 한다. 설교가 들리는 말씀이라면 성례전에서 성찬은 보이는 말씀이다. 성찬의 의미를 바로 알고 시행하는 것은 교회의 교회됨과 성도의 성도됨을 결정짓는 중요한 직무이다. 교사직은 오늘날의 신학자에 해당되며 교회의 교리를 지키는 중요한 사명을 맡은 자이다. 바른 목회를 위해서는 바른 신학이 필수적인데 신학자들은 목회자들을 위해 이 직무를 성실하게 감당해야 하며 목회자들은 신학자들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칼빈의 목회에 가장 비중을 두었던 부분이 바로 권징인데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모임(consistory, 오늘날의 당회)에서 이 직무를 감당했고, 특별히 장로들의 주된 직무가 바로 이것이었다. 심방을 통해 성도들의 삶을 지속적으로 돌아보고 말씀대로 살지 않을 때, 권면과 징계 그리고 출교(excommunication)를 통해 성도로서의 거룩성을 유지하게 했다. 칼빈은 복음의 가장 큰 적(敵)은 교황이나 이단, 미혹케 하는 자, 독재자가 아니라, ‘나쁜 그리스도인’이라고 했다. 그가 목회에서 성도의 삶의 성화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 점은 특별히 오늘날 한국교회가 귀기울여할 부분이며 사라져 가는 장로의 직무에서 시급히 회복되어야 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집사직은 교회의 헌금과 재산관리 및 교회와 사회의 가난한 자와 병자를 섬기는 직분이다. 당시 칼빈은 제네바 종합병원을 설립해 가난한 자와 약자를 구제하고 섬기는 복지업무를 감당하게 했다. 25년 제네바 교회 목회를 통해 완악했던 제네바 도시 전체가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룩한 도시가 됐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온갖 반대와 고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만 의지하며 한평생 묵묵히 목회자의 길을 걸었던 칼빈의 목회사역은 물론 그의 생애 전체가 하나님을 향한 송영(doxology)이었다.  
157 논문 종교개혁과 스콜라주의의 관계에 대한 연구 현황에 대한 서론(이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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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34   2009-06-27
종교개혁과 스콜라주의의 관계에 대한 연구 현황에 대한 서론 - 이은선  
156 논문 존 칼빈의 정치 사상(권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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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51   2009-06-25
존 칼빈의 정치 사상 - 권태경  
155 논문 존 칼빈의 신학적 해석학(안명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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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3   2009-06-25
존 칼빈의 신학적 해석학 - 안명준  
154 논문 칼빈의 경건 신학(문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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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03   2009-06-25
칼빈의 경건 신학 - 문병호  
153 논문 제9회 논문 발표회 발표 논문 ; 어거스틴과 칼빈(안인섭, 라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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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6   2009-06-25
제9회 논문 발표회 발표 논문 ; 어거스틴과 칼빈; 「신국론」과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교회와 국가 사상 비교 ; 논평 - 안인섭 , 라은성  
152 논문 제11회 논문발표회 논문 ; 칼빈의 제네바 아카데미에 대한 연구(권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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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0   2009-06-25
제11회 논문발표회 논문 ; 칼빈의 제네바 아카데미에 대한 연구 - 권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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