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이 말하는 신앙에 있어서 말씀의 역할

: 거울을 중심으로

 

칼빈은 자신의 <기독교 강요>에서 널리 알려진 신앙에 대한 다음의 정의를 제공한 바 있다. “신앙이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에 관한 확고하고 확실한 지식으로서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값없이 주시는 약속의 진리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생각에 계시되고 마음에 인쳐진 것이다.” (3.2.7) 여기에 언급된 지식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이는 로마 가톨릭이 주장하는 복음의 역사에 관한 일반적 의미에서 동의 (agreement)를 뜻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렇다면 그가 설명하는 지식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기독교 강요> 32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칼빈은 신앙이 하나님의 말씀의 토대위에 세워져 있으며 말씀이 없이는 신앙도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3.2.6).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이것이 칼빈이 말하는 지식으로서 신앙에 해당된다. 여기에서 특이한 것은 그가 말씀을 거울에 비유하는 것이다 (3.2.6).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만든다는 점에 있어서 신앙에 있어서 말씀은 곧 거울에 해당된다. <기독교 강요> 전반에 나타난 그의 사상을 중심으로 여기에서는 두 가지로 그가 주장하는 거울로서의 말씀의 역할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거울로서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육안으로 발견할 수 없는 초월자 하나님을 바라보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시며 우리의 능력으로 전혀 파악될 수 없는 분이시다. 단지 말씀의 도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보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를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칼빈은 어두운 가운데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치셨느니라라는 고후 4:6을 언급한다 (3.2.1). 신앙이 유일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다른 방법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음을 뜻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정면으로 보지 못하게 된다면 우리는 미로에 빠져서 끝없이 방황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3.2.2).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보는 것, 여기에 신앙에 있어서 말씀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이 발견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춰 주시지 않았다면 멀리 감추인 채 계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3.2.1). 이런 이유에서 말씀이 마치 거울과 같은 것이라는 칼빈의 표현은 아주 적절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좀 더 현대인에 잘 어울리는 방식으로 표현한다면, 우리는 말씀이 마치 망원경 (telescope)과 같은 것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칼빈이 갈릴레오 갈릴레이 (Galileo Galilei, 1564-1642)가 발명했던 망원경에 대해서 알았더라면, 아마도 그는 말씀을 거울에 비유함에 있어서 더욱 정확하게 망원경에 비유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칼빈은 다른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을 이 세상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안경에 비유하기도 했다 (1.6.1). 그러므로 칼빈은 이 거울을 통해 신앙을 지닌 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풍요롭고 놀라운 신비들을 너무나 생생하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밝힌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말씀은 거울이며 더 나아가서 망원경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칼빈이 반복적으로 강조한 바와 같이,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지식인데 인간의 감각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하는 고차원적 지식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3.2.14).

 

둘째, 거울로서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죄악에 물든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자신의 죄악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인간은 말씀을 통해 신앙을 소유하고 이로 인해 하나님을 깨닫게 될 뿐 아니라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더욱 명확하고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특히 자신의 연약함과 추함을 발견하게 되고 이로 인해 회개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이유에서 칼빈은 루터와는 달리 회개를 신앙의 열매 또는 결과로 파악하였던 것이다 (3.3.1). 그는 회개의 두 가지 요소를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3.3.6-7). 첫째,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 칼빈은 이를 모세의 표현대로 마음의 할례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로 인해 먼저 마음 속 깊숙이 자리 잡은 죄악, 특히 자신조차 볼 수 없었던 죄악의 세밀한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발견하고 잘라 버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회개의 핵심적 의미가 발견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거울과 같아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 속에 숨겨져 있는 아주 작은 죄악을 포함한 모든 죄악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깨달을 수 있게 이끈다. 이 점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거울과 같은 것이며 이는 또한 자연과학의 발전 아래서 일종의 현미경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생성된 신앙은 우리 속에 꼭꼭 숨겨진 죄악된 모습, 다른 사람이 전혀 볼 수 없는 추한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영적 현미경과 같은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해 볼 때,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칼빈이 말하는 신앙에 있어서 말씀의 작용은 거울과 같은데 한편으로 멀리 계신 하나님을 보고 깨달을 수 있도록 도우는 영적 망원경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영적 망원경으로서의 말씀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분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사실에 모든 의미가 집중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말씀은 우리 속에 감추어져 있는 미세한 죄악의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발견하고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단으로서 영적 현미경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적 현미경인 말씀을 통해서 우리 죄악의 세밀한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자신의 죄악의 추함을 깨닫고 진정한 회개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