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城) 쌓기와 성 허물기


성(城)이란 개인이나 집단을 숨기거나 보호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방어적 구축물이다. 그런데 이 성(城)의 역사는 성(性)의 역사만큼이나 긴 인간 본능적인 자기 보위의 수단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을 숨기기 위해 자연 은폐물을 이용했으나 곧 인조 구조물로 대치되었는데, 그것이 성이었다. 유럽에서 성 쌓기는 9세기를 거쳐 가면서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독일 지명에서 흔한 ~bury라는 말이 성 혹은 성곽에서 유래한 말임을 생각해 본다면 사람들은 성을 쌓아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막아내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낯설지 않는 대표적인 성은 만리장성인데, 기원전 700년에 축성을 시작했고, 진나라의 시황제(始皇帝, 247-210 BC)때 완성되었으니 성 쌓기는 무려 5백여 년 간 계속되었다. 이 성의 총 길이가 6,400km이고 지리상으로 총연장은 2,700km로서 인류역사상 최대의 토목공사라고 한다. 높이가 9m, 넓이가 아랫부분은 6.5-9m, 윗부분은 4.5m인데, 120m 간격으로 누(樓)를 만들었으니 이 장성(長城)은 요즘 젊은이들의 표현으로 장난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136년에 축성된 서울의 도성(都城)이 있고, 진주에는 진주성이, 거제도에는 거제성이 있다. 또 부산에는 부산성과 동래산성이 있다. 부르조아라는 말도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이란 의미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제한된 공간에서 인구가 증가하다보면 약자들은 성 밖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으니 부르조아라는 특권층이 생겨남직도 하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을 숨기려는 내면의 의지가 있고, 성 안에서 보호받고자 하는 의식이 있다. 의복도, 외형도, 학력이나 학위도 따지고 보면 자기의 성인 셈이다. 그래서 사람은 날마다 자기의 성을 구축하고 있고, 그 안에서 인정받고 보호받기를 기대한다. 꼭 눈에 보이는 성벽만이 아니라 자신이 의식하던, 의식하지 못하던 자기 내면의 세계에 심리적인 성을 쌓고 있다. 인격(人格)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가면의 성’이다. 인격(person)이라는 말의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가 ‘가면’(musk)이란 뜻에서 왔다는 어의는 이 점을 대변한다. 요즘 회자되는 학력위조도 따지고 보면 자기 보위의 수단이고 학력이라는 성 안에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지일 것이다. 이런 성 쌓기 의식을 포추레스 멘탈리티(fortress mentality)라고 부른다.

  문제는 우리를 보호해 주는 성을 학력이라는 한 가지 사실에 지나치게 기대고 있다는 현실이다. 물론 위조의 본질은 거짓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지만, 학력의 성 만을 지나치게 공인하고 있는 우리 현실도 부분적인 책임이 있다. 실력이나 능력만으로도 충분한 대우와 보호를 받는 다른 나라의 경우 학위의 성은 높지 못하다. 구라파의 경우 학위 없는 저명한 학자들이 있고, 학력이라는 잣대는 효용성이 낳다. 또 한 가지. 비록 어려운 선택일 수 있지만 학위의 성에서 나와 공개된 들판에서 자기를 세워가는 의지만 있다면 위선의 성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자유 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없지 않다는 점은 희망이기도 하다. 이런 의식을 순례자 의식(Pilgrim mentality)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