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지난달 한국을 방문했던 일본인 친구 니시보리(西堀則男)목사는 한권의 책을 선물로 가져왔다. 동경에 들리면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저 간다(神田) 거리를 헤집고 다니며 고서에 일상의 피곤을 묻었던 나에 대한 배려였다. 그가 가져온 책은 일본인 나니토 세이추(內藤正中)와 재일 한국인 박병섭(朴病涉)이 공저한《죽도, 독도논쟁》(竹島, 獨島論爭)이라는 책이었다. 역사적 자료에 근거하여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 한국의 영토라는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었다. 제일한국인 독도연구가인 박병섭씨의 경우와는 달리 일본인이 다케시마라고 불리는 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라는 사실을 에도(江戶)시대의 역사적 사료를 통해 논증하고 있다는 사실은 예사롭지 않다. 특히 나이토 세이추교수는 시마네대학 명예교수인데, 시마네(島根)는 독도와 가장 근접한 곳이고, ‘다케시마(竹島)의 날’을 선포한 현인데 바로 이곳에 사는 이가 독도 영유권의 진실을 밝힌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는 자국민들의 엄청난 비난을 감내하며 우익들의 테러위협도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런 책을 썼던 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 곧 역사의 진실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었다. 그는 비난과 욕설, 비국민 혹은 매국노라는 빗발치는 공격을 무릎 쓰고 독도의 일본 고유영토론의 허구를 파헤친 것은 역사의 진실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믿음 때문에 그는 국가라는 조직이 세운 거짓의 누각에서 미련 없이 내려 올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나는 꼭 35년 전의 감동을 기억했다. 삼성문화문고로 역간된 알버트 슈바이쳐의《나의 생애와 사상에서》(Aus meinen Leben und Denken)라는 문고본이 그것이다. 슈바이쳐의 자서전 첫머리에 나오는 한마디가 나를 유혹했다. “우리는 진실을 거슬러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신약성경 고린도후서 13장 8절을 인용하면서,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당시 교회의 비난을 선택했다는 슈바이쳐의 고백은 배움의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나를 인도하는 등불이었다. 역사학을 고작 옛것에 대한 호기심이나 호고주의(好古主義)정도로 생각했던 나에게 역사는 진실을 향한 치열한 토론이며, 거짓에 대한 처절한 저항이자 진리를 향한 거룩한 열정이어야 한다는 점을 깨우쳐 주었다. 역사가가 걸어가야 하는 길은 당대의 찬사에 안주하는 길이 아니라, 비난의 돌팔매를 마다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일 것이다. 종교적 확신에 가까운 이런 신념이 없다면 세인의 찬사나 권력의 유혹으로부터 자유 할 수 없을 것이다. 진실에의 열정은 세류의 가치에 연락(宴樂)을 구하고자 하는 우리를 막아주는 방파제가 될 것이다. 로마인들의 믿음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진리는 모든 것을 이긴다”(Veritas Omnia Vinc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