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알게 하라?


지난 4월 초 살구색 재킷에 헐렁한 바지를 입은 할머니가 연세대학교에 찾아와서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을 위해 써 달라며” 1억원을 기부하고는 총총히 사라졌다고 한다. 이름도, 주소도 연락처도 남기지 않았고, 끝내 자신을 숨겼다고 한다. “나는 이름이 없는 사람이에요.”기어이 이름이라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을 때 그가 남긴 한마디 말이었다. 우리 시대에 보기 드믄 무명에의 의지에 감명을 받은 대학 당국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자기를 숨기는 가 싶어 수소문을 했으나 할머니는 끝내 자기를 숨겼다고 한다. 도리어 아들이라도 알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화를 냈다고 한다. 신원추적을 통해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은 그가 기독교 신자라는 점뿐이었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서 1억원은 적지 않는 돈이었지만, 그는 왼손도 모르게 거금을 던지고는 도망가듯 사라진 것이다. 이 이름 모를 할머니의 미담이 신문에 보도되었고, 그것이 장안의 화제가 되는 것은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하고자 했던 은밀성 때문이었다.

  선을 행하고도 자기를 들어내지 말라는 은밀한 덕행은 성경의 가르침만이 아니라 동양의 예모이기도 하다. 동양전통에서는 남에게 공개되지 않는 선행을 ‘음덕’(陰德)이라고 불렀다. 『북사』(北史)라는 책에서 “음덕은 이명(耳鳴)과 같다”고 했는데, ‘이명’이란 귀엣말로 자기 자신만 안다는 뜻이다. 공개되지 않는 선행에 자족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하는, 하늘도 알고(天知) 땅도 알고(地知) 자기도 안다(子知)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는가가 『십팔사략』(十八史略)의 경구가 아니던가?

  예수님은 선행의 경우만이 아니라 종교행위에서도 은밀성을 강조했다. 기도할 때나 금식할 때나 구제할 때에도 ‘은밀성’을 강조했고, “사람에게 보이려고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그래서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심지어는 왼손도 모르게 하라”(마6:3)고 했던 것이다. 이런 예수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나온 말이 “예수(주)의 이름으로...”(in nomine Domini)라는 말이었다. 주의 이름으로 선을 행하고, 주의 이름으로 구제하고, 주의 이름으로 덕을 베풀되 자기는 숨기는 방식이 “주의 이름으로”라는 말이다. 자기를 숨기는  최선의 방법은 주님을 드러내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선을 행하고도 드러내지 않는 음덕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지만 그것이 이례적인 일이 된 것은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도 알게 하는 자기 현시가 우리 시대의 풍조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기부문화는 권장되어야 하고, 공개가 비공개보다 효과적인 방책이라는 점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하더라도,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하는 일이 보다 고상하게 보이는 것은 그것이 더 도덕적이라는 내적인 신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