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사회


건강한 사회를 영어로는 사운드 소사이티(sound society)라고 말한다. ‘사운드’라는 말은 ‘소리,’ ‘음향,’ 혹은 ‘울림’이나 ‘반향’이란 뜻인데, 이 단어가 ‘건실한,’ ‘정상적인,’ 혹은 ‘안정한’이란 뜻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아마도 건실하고 건강하다는 것은 소리가 오고가고 울림이 있는 소통을 의미하는 암시 일 것이다. 요즘 말로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건실하고 건강한 사회라고 볼 수 있다. 대화에 있어서 일방성이나 사고에 있어서 독선, 경제구조에 있어서 독점, 상행위에 있어서 전매 등은 다 ‘사운드’하지 못한 것들이다. 이런 일방적 가치들이 한 사회를 주도한다면 그 사회는 기계적 구조로 양극화되거나 극단적 대립을 가져올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유익하지 못하다. 사실 ‘사회’(society)의 말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소키에타스’(societas)라는 말 자체가 ‘연합,’ ‘동료,’라는 의미 외에도 ‘교류’나 ‘소통’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사회의 건실성은 그 구성원들 간의 약속, 곧 법치성에 바탕을 둔 이성적 소통과 합리적 공공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이 부정되면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집단간의 불신은 깊어진다. 이런 경우는 건강한 사회라고 볼 수 없다. 흔히 부요나 풍요를 건강한 사회의 척도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중동지역 산유국인 카타르나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혹은 브르나이 등은 국민총생산량(GNP)에 있어서 세계 162개 국 중 상위 15% 내에 들지만 이런 나라들을 선진국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무리 부유하다 할지라도 일인 중심의 독제체제나 한 가지 이념만을 절대화하는 사회 또한 건강한 사회로 볼 수 없다. 이런 소통의 단절은 구조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고 경제적으로도 빈곤할 수밖에 없다. 북한 같은 경우가 그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 건강한 사회는 공동체의 합의인 법에 충실하되 합리성과 공공성을 중시한다. 합리성이란 이성적 판단이며, 공공성은 이름 그대로 공동의 유익(usui publico)을 추구하는 법의 기본 정신이다. 이런 점들이 자연스럽게 소통되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이고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법치가 무너지면 사회 기본 질서가 혼란에 빠진다. 합리적 소통마저 단절되면 공공의 유익을 기대할 수 없다.

  최근 우리 사회에 여러 문제가 노출되었다. 촛불시위가 도회지의 밤을 밝히고, 근거도 불확신한 광우병 소송으로 유독 우리나라만 난리다. 독도문제 또한 짜증을 더해 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적 접근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이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fact)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이다. 범람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황된 정보가 감정적 노출을 심화시키고 결국 이성적 접근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소통을 방해하는 독선과 선동, 과장, 허위, 왜곡이 판치는 사회라면 그것은 비이성적인 사회일 수밖에 없다. 특히 과장이나 왜곡, 거짓에 바탕을 둔 감정적 행위가 대중적 척도로 인식된다면 그것은 광기일 수 있다. 사실을 왜곡하고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정치적 탄압 운운하는 독선의 가치는 사회적 건실성을 파괴한다. ‘사실’과 ‘진실’ 앞에 무릎 끊는 자세가 진정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그것은 건실한 사회의 기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