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에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단어가 나온다. ‘샬롬’이라는 단어이다. 히브리어는 우리 눈에는 글자 같지도 않지만 그것은 가나안 방언으로부터 유래한 셈족어인데, 아람어로 기록된 일부를 제외한 구약성경의 전부가 이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히브리어 알파벳은 정방형 문자로서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쓴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알파벳의 어미형이 다르고, 발음부호나 모음기호가 다양하고 복잡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고대 언어를 공부해보면 뭔가 유혹하는 힘이 있고, 때로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언어가 지니는 인간의 삶과 죽음, 살림살이(문화)에 대한 기술적 묘미는 때로 감동을 주기도 한다. 그 한 가지 단어가 ‘샬롬’이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흔히 피-스(peace) 곧 ‘평화’로 번역되지만, 이 ‘평화’라는 의미가 히브리어 샬롬의 의미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샬롬이라는 단어는 전쟁이 없는 상태, 곧 비전(非戰)이나 반전(反戰)만을 의미하지 않고 보다 광범위한 뜻을 지니고 있다. 광범위한 뜻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샬롬은 대립이나 대결이 없는 안전하고 안녕한 상태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평화라는 말은 가장 근접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샬롬이라는 말은 완전, 혹은 완전한 상태를 말하기도 하고, 신체상의 안전 혹은 건전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또 행복, 번영, 육체적 건강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평온, 만족을 의미하기도 하고, 인간관계에서 볼 수 있는 평정, 우정, 혹은 조화로운 삶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샬롬은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갈등과 대립이 없고, 평안과 기쁨,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건강과 안녕, 안전과 복지, 곧 삶의 모든 영역에서 모든 것이 잘되고 안전하고 안락한 행복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샬롬은 완전함(completeness)과 온전함(wholeness)에서 누리는 안녕(well-being)의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것이 히브리어 샬롬의 의미인 샘이다. 단지 평화라고만 번역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수사(修辭)의 뒷면에 숨겨진 심증이 언사(言辭)의 한계를 뛰어 넘게 한다. 그렇다면, 샬롬이란 얼마나 좋은 말인가? 아니 말이라기보다 이 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거리에 난무하는 폭력, 일상에 찌든 우리의 일상은 전쟁에 가깝다. 물고 물리며 험난한 하루를 헤쳐가야 하는 오늘 우리에게 평화는 없다. 긴장과 대립, 갈등과 대치, 그곳이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물리적인 것 보다 더 심한 것이 정신적인 것이다. 이데올로기적 대립이라는 거창한 말은 뒤로하더라도 이념갈등은 심리적 살인에 가깝다. 흑백논리의 재단 앞에서 순연(純然)한 신념은 설자리가 없다. 종교인들마저 별반 다른 것 같지 않다. 세속지사에도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거리를 시위하고, 순교적 각오로 치부하는 사생결단에는 이해나 용서, 관용의 미덕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현실의 이해(利害)에서 한 발짝만 물러서면 우리의 내면을 관조하는 여유를 갖게 될 것이고, 이웃을 향한 작은 배려는 하루의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이해와 배려, 관용은 평화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복되도다. 그 사람, 평화를 만들어가는 자”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