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경건과 고난의 영성
이환봉 교수 (개혁주의학술원장)
교회의 “영성”(spirituality)은 현대 목회 실천의 주요한 관심사중 하나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목회 현장의 다양한 현실적 요청에 따라 개인의 신앙 성장과 목회자의 교회 부흥을 위한 각종 영성 세미나와 영성 훈련 프로그램들이 계속 새롭게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영성에 대한 교과목들이 이미 신학교의 교육과정으로 채택되어 가르쳐지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아직도 개혁주의 영성의 분명한 원리와 구체적인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비성경적인 원리와 전통에 뿌리를 둔 세속적 영성 훈련 프로그램들로 혼란을 겪고 있다. 성경적 반성과 신학적 내용이 없는 개인주의적인 신비적 영성은 오히려 교회의 영적 건강을 해치는 악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시점에 칼빈의 경건 신학에 뿌리를 둔 개혁주의 영성의 성경적 원리들을 확립하고 구체적인 영성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은 오늘 우리 교회와 신학의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종교개혁은 신학과 신앙의 개혁인 동시에 영성과 삶의 개혁이었다. 칼빈은 자신의 영성을 표현하는 말로서 주로 “경건”(pietas)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칼빈 신학의 요체인 『기독교 강요』의 핵심이 경건이기에 그의 신학을 “경건의 신학”(theologia pietatis)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는 『기독교 강요』에서 경건을 “하나님의 은총을 아는 지식으로부터 생겨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결합된 경외” 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사랑하고 경외하며 주로서 순종하고 예배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하면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 경건의 열매인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경외로 나아가게 하며 또한 자발적인 순종과 합당한 예배로 응답하는 삶의 자리에 서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먼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시며 의롭다 하시는 구원의 은혜에 굳건히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칼빈을 위시한 개혁자들의 영성에 대한 공통의 강조는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으로부터 시작되고 항상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행위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혁주의 영성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대한 확신이다. 문제는 경건한 삶을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성령의 은사들을 소유하는가에 있지 않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철저하게 의지하는가에 있다. 경건의 핵심은 우리의 영적 자질과 공덕에 있지 않고 “신비로운 연합”(unio mystica)이 약속하는 그리스도와의 신령한 교제와 교통에 있다. 따라서 칼빈에게 있어 경건한 삶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고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원의 확신 속에서 날마다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고 항상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말한다.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를 참된 영성의 본보기로 제시하면서 땅위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관계를 비교하여 제시한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삶 속에서 고난과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를 찾으려고 한다. 칼빈은 망명자인 자신과 자기 시대의 수많은 시련과 고통을 경험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인이 살아가야할 땅위의 삶의 성격을 고난의 삶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참예하는 자들로서 고난을 통해 자기 육체를 억제하고 자기 중시(重視)를 타파할 수 있게 되며, 고난 중에도 인내와 순종을 배우면서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자리에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칼빈에게 있어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의 징표이고 천국에 오르는 계단이며 그리스도인의 영예이기도 하다.
어떤 학자는 칼빈이 세상 긍정적 영성(world-affirming spirituality)을 가졌다고 하지만 실상 그의 주요한 가르침은 세상 부정적 영성(world-denying spirituality)으로 가득 차있다. 물론 칼빈은 현세의 삶 자체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증거로써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현세의 삶은 내세의 영원한 삶과 비교할 때 실로 무가치할 뿐 아니라 결국은 죄로 얽어매는 죽음의 자리에 이르게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는 그리스도인은 천국의 순례자들로서 항상 땅위의 삶에 대한 경멸과 영원 삶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상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버리고 천국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가질 것을 강조한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을 향한 헛된 야망을 떨치고 감사와 절제 속에 인내하며 고난과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십자가를 지는 자기부인(selfdenial)의 삶을 통해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온전한 헌신과 선한 싸움을 다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영적 전투에로 부름 받은 그리스도의 병사들로서 원수대적 마귀와 더불어 온 힘을 다해 싸워 최고 사령관이신 그리스도의 영원한 승리에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고 격려한다.
칼빈이 강조한 이러한 고난의 영성을 오늘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에서 과연 찾아볼 수 있는가? 한국교회의 성장과 부흥의 뿌리에는 고난의 영성이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순교자들의 수난사는 아득한 옛 이야기처럼 들리고 순교적 고난과 희생은 박물관 전시장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오래된 색 바랜 사진처럼 보인다. 오늘날 소위 “번영의 신학”이 건강과 행복, 출새와 명예를 기독교 신앙의 간판처럼 내세워 참된 신앙과 영성을 변질시키고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 안에 축복과 번영의 길로 달려가는 교인은 많으나 복음을 위한 고난과 희생의 길을 찾아가는 제자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가 물려받은 영성의 유산은 순교적 신앙에 기초한 고난의 영성이며,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그리스도를 위해 죽음의 자리에 까지 나아가는 제자의 길이다.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요체를 『기독교 강요』(3.6-11)에서 종말론적 소망 중에 자기를 부인하여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삶으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그 가르침에 일치한 삶을 살았다.